[오늘을 생각한다]저물어가는 신파정치

6·1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당선 덕분에 체면치레를 했다. 김동연은 어떻게 민주당의 무덤이었던 선거에서 살아남았을까. 그가 가장 덜 민주당스러운 후보였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그룹인 민주당 ‘처럼회’ 의원들이 부상하게 된 과정을 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친민주당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자극적인 ‘말’로 팬덤에 아부하며 명망을 쌓은 뒤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다. 반면 김동연이라는 사람이 지난 대선에서 대중적 지명도를 이끌어낸 힘은 ‘말’이 아닌 ‘책’이었다. 많은 대권주자가 출간을 하지만 저서의 내용이 회자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해 여름 김동연이 자신의 정책 구상을 담은 책을 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의 공약을 지지하거나 비판하거나 토론하는 방식으로 그의 이름 석 자를 언급했다. 김동연은 근래 민주당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논리형 비신파성 정치인이다.

지난달 국회 예결위, 고민정 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했다. 고 의원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등을 거론하며 15분간 맹공을 쏟아부었지만 ‘내용’이 손에 잡히는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정작 헤드라인을 장식한 고 의원의 발언은 “어떻게 이렇게 공감력이 없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날의 질의에서 ‘공감력’이란 단어가 왜 나와야 했는지 알 길이 없다. 한동훈이 정말 나쁜 인사라면 실력으로 그걸 증명해내는 게 본인들의 역할일 텐데 공감능력 타령으로 무엇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상대가 뭐라 답하든 어차피 계량도 되지 않는 공허한 질문이 아닌가. 인사청문회부터 거듭된 민주당 의원들의 한동훈 공략은 논리 대 감성의 대결로 비쳤다. 그 무능한 질문들은 쌓이고 쌓여 ‘한동훈 현상’을 만들어냈다.

‘한동훈 현상’과 김동연의 당선에서 감지되는 것은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선호 변화다. 지지층을 격동시켜 좌표를 찍어 상대를 공격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막상 실력을 증명해야 할 무대에서는 ‘금치산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근래 민주당이 보여준 정치다. 한동훈과 김동연은 민주당 신파정치의 대척점에 있는 논리형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5년을 지배한 무논리 신파정치에 대한 대중의 환멸이 논리형 정치인에 대한 선호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5년 전 촛불시위는 강렬한 파토스의 분출이었다. 그 추상적 열망을 구체화해 새 시대의 청사진을 제시했어야 했던 집권세력은 촛불의 정념을 고작 상대 정파를 공격하는 데 동원했다. 실력의 빈곤은 팬덤을 동원한 우격다짐으로 채웠다. ‘처럼회’류 신파정치의 득세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퇴장과 함께 신파정치도 저물어간다. 신파의 자리를 채운 건 검사와 관료들이다. 윤석열 정부는 사시 출신 검사들과 행시 출신 관료들을 앞세우고 있다. 검사와 관료의 시대에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더 나은 내일의 기대는 사라지고 세상이 더 나빠지지만 않기를 바라는 시대가 됐다. 한편의 신파극 같았던 문재인 정부 5년의 결말이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