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설혹 민주당을 겨눈다 해도

2009년 7월 22일. 김형오 의장을 대신해 한나라당 소속의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몇개의 법을 직권상정했습니다. 이 부의장은 “오늘 장내가 소란해 정상적인 회의 진행이 어렵다”며 심사보고서와 제안설명을 생략했고, 질의와 토론도 받지 않았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단상을 점거하자 여당 의원들은 단독으로 표결를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당장 그만둬. 역사의 죄인이 되는 거야!”라며 막아섰지만, 법안은 30분 만에 모두 통과됐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법이 신문법·방송법·IPTV법 등 이른바 미디어 3법입니다. 이 법으로 대형신문사가 종합편성채널에 진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JTBC·TV조선·채널A 등은 이때 태어났습니다.

당시 여당이 미디어법을 밀어붙인 것은 보수 TV채널의 탄생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거대 보수언론이 소유한 TV는 향후 보수 여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이끌어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보수 정권의 막을 내리게 한 것은 종편이었습니다. 종편은 최순실의 존재를 집요하게 추적했고, 마침내 박근혜 정부를 탄핵으로 내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미디어법 통과 9년 만이었습니다.

정권은 무한한 것 같지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지금까지 한 이념성향의 정부가 10년을 넘긴 적은 없습니다. 그 말은 자신들의 집권 때 만든 법이나 행위가 언제든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2012년 새누리당이 밀어붙인 ‘국회선진화법’은 소수 야당이 된 지금 거대 여당의 독주를 몸으로 막지 못하는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2004년 한나라당 등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2018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성사되기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2004년의 경험은 국민에게 ‘대통령도 탄핵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일명 공수처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본회의를 통과됐습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법안이 처리된 뒤 “이런 막무가내 권력을 국민이 용서할 것 같냐”고 분노했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집권당은 공수처장을 한층 쉽게 임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야당의 의도적인 발목잡기로 공수처 출범이 지연되던 문제도 해결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여당으로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야당의 비토권(반대권)이 사실상 무력화된 것은 향후 정권이 교체된다면 더불어민주당에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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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처법 개정안을 지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이 법이 한국사회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3법은 우리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데 보약이 됐고,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에서 고질적인 몸싸움이 사라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공수처법은 한국사회에 ‘견제와 균형’을 되찾아 오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요? 설혹 민주당을 겨누는 날이 온다고 해도 말입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