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Fast X)
제작연도 2023
제작국 미국
상영시간 140분
장르 액션, 범죄
감독 루이스 리터리어
출연 빈 디젤, 제이슨 모모아, 제이슨 스타뎀, 샤를리즈 테론, 브리 라슨, 미셸 로드리게즈, 성 강 외
개봉 2023년 5월 17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이게 CG 없이 연출됐다고? 그럴 리가. 악당 단테(제이슨 모모아 분)가 돔패밀리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만든 ‘폭탄공’은 패키지여행 같은 걸 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씩 방문했음 직한 이탈리아 로마 시내의 주요 관광명소를 질주한다. 족히 수t은 됨직한 육중한 철제 공이 주요 명소의 돌계단이나 석상 따위를 다 부수며 굴러가는데 실제 문화재들을 부쉈을 리는 없고. 폭탄공의 최종목적지는 바티칸이다. 바티칸을 날려버리는 것이 단테의 계획이다. 물론 빌런의 계획은 저지된다. 어떻게? 우리의 주인공 ‘돔’(풀네임은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 분)이 모는 자동차가 공의 진로를 끊임없이 막아선다. 결국 폭탄은 바티칸 바로 목전의 하천에 떨어져 수중 폭발하고 만다.
영화적으로 연출된 거대한 쇼
벌써 10편이다. 영화 부제는 ‘라이드 오어 다이(Ride or Die)’. 풀이하자면 ‘달리거나 아니면 죽거나’다. 영화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카체이싱 액션으로 가득 차 있다. 앞서 로마 추격신에서는 돔의 자동차 추격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돔의 아내 레티는 오토바이를 타고 역시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단테를 추격한다. 첩보 액션물의 필수요소라 할 만한 오토바이 추격신이다. 그뿐인가. 돔의 아들을 데리고 도망치던 삼촌, 그러니까 돔의 동생은 도피수단으로 낡은 구형세단을 택하는데, ‘알고 보니’ 이 구형세단 트렁크에는 첨단장치가 장착돼 있었다. 심지어는 차량 위에 실려 있는 보드도 비상탈출용 초소형 첨단경비행기였다. 눈요깃거리가 풍성하다. 저게 실제 가능한 이야기인가, 라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자. 무술(martial arts) 영화배우들이 합을 맞추듯 자동차와 오토바이, 트럭과 헬리콥터들이 한데 얽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을 감상하기만 하면 된다. 영화적으로 연출된 거대한 서커스, 쇼다.
시리즈의 오랜 팬이야 영화의 사실상 원톱 주인공이 된 돔(원래 이 시리즈는 돔과 형사 출신으로 돔과 우정을 쌓고 합류한 브라이언 오코너의 투톱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였으나, 브라이언 오코너 역을 맡은 폴 워커가 2013년 사망하면서 빈 디젤만 남게 됐다)이나 돔 패밀리로 분류되는 주요인물들의 등장에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조연이자 최강 빌런으로 등장하는 단테다. 시리즈의 5편에 해당하는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2011)의 메인 빌런이자 브라질 악당 헤르난 레예즈가 ‘알고 보니’ 아들이 있었고, 그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나섰다는 것이 이번 편과 다음에 제작될 속편이자 최종편(2025년 개봉 예정이다)의 주요 테마다. 그는 자신의 복수를 완결하기 위해 돔과 그의 패밀리를 죽이지 않고 최대한 고통을 맛보게 할 작정이었다. 앞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난동극뿐 아니라 전 세계를 순회하며 벌이는 ‘스펙터클’도 그런 ‘최종장’을 위해 미리 의도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이 단테를 연기한 배우는? 우리에게 DC 히어로물 <아쿠아맨>으로 유명한 근육질 배우 제이슨 모모아다.
대거 등장하는 할리우드 히어로물 주인공들
이번 작품에 새로 등장하는 또 한명의 인물도 할리우드 히어로물의 대표캐릭터다. 브리 라슨, <어벤져스> 시리즈의 캡틴 마블이다. 돔을 도와주는 미 정부기관 고위관료 ‘미스터 노바디’의 딸이라는 설정이다. 이 외에도 있다. 역시 DC 히어로물인 <블랙 아담>의 주인공 드웨인 존슨은 위 <…언리미티드>부터 루크 홉스역으로 출연하고 있다. <원더우먼> 갤 가돗도 지젤역으로 나온다. 생각해보니 돔역의 빈 디젤도 역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그루트역 목소리를 맡았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상영시간 내내 그동안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 등장한 여러 인물이 총출동해 쫓고 부수고 격투를 벌인다. 종합서커스 무대를 방불케 한다. 뚜렷한 선악 구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축하고 있어 따라가기 어렵진 않지만, 대부분의 캐릭터가 전작들에서 구축된 ‘사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지라 시리즈의 이전 편들을 보고 극장에 가는 것이 좋을 듯싶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1편부터 9편까지 1시간 남짓으로 요약해놓은 영상이 여럿 있다. 대부분 ‘저작권 관련으로 허락을 받았다’는 자막을 덧붙여놨던데, 시리즈의 과거 작품을 미처 못 챙겨본 관객들을 대상으로 영화사가 베푼 서비스일까.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애초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자동차 추격신과 차량 액션을 주제로 만든 저예산 영화였다. 이 저예산 시리즈가 블록버스터로 바뀌게 된 게 앞서 거론한 <언리미티드> 정도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 정보기관과 언더 조직, 국제적 범죄 및 살인청부 조직까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끝 간 데 없이 확장됐다.
시리즈의 첫 작품 <분노의 질주>가 만들어진 것이 2001년이니, 올해로 23년째 제작 중인 프랜차이즈 영화다. 주연을 맡은 빈 디젤의 애착이 강하게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빈 디젤과 함께 투톱 주인공을 맡았던 폴 워커도 ‘머슬카 마니아’로 유명했다(사진). 2013년 11월 30일, 태풍 하이옌 피해를 입은 필리핀 이재민을 돕기 위한 자선행사에 참석하고 친구와 함께 돌아가던 폴 워커는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친구가 운전하던 ‘포르쉐 카레라 GT’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리타공원 인근 도로의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그에 따른 차량 화재와 폭발로 사망했다. 자동차마니아였던 그가 SNS에 남긴 말은 팬들 사이에 꽤 유명한 경구가 됐다. “스피드가 나를 죽게 하더라도 울지 마라. 왜냐면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을 테니까(If one day the speed kills me, do not cry because I was smiling).”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가 자동차 뒷바퀴에 빨려 들어가 목숨을 잃었던 전설의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이 사고당하기 직전 차에 타며 남긴 말 “안녕, 여러분. 전 영광을 향해 갈 거예요(Adieu, mes amis, Je vais la gloire!)”와 함께 아마 꽤 오랫동안 기억되고 회자할 문구일 것이다.
어쨌든 문제는 그가 시리즈 7편 <분노의 질주: 더 세븐>(2015)이 한창 제작 중일 때 갑자기 사망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영화는 1년 후로 개봉이 미뤄졌다. 스토리를 바꿔 그가 은퇴한다는 설정으로 재촬영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편집된, 도미닉이 브라이언과 함께했던 과거를 회고하는 추모 영상은 지금 봐도 진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