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김성근의 야구 변화가 필요하다

김 감독으로서도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실패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김 감독의 야구는 ‘투고타저’일 때 강하지만, ‘타고투저’일 때는 잘 통하지 않았다. 2015시즌 리그 방어율이 4.88로 만만치 않았다. 김 감독의 야구가 잘 통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KBO리그 2015시즌 정규시즌이 모두 끝났다. 포스트시즌 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4위 넥센이 5위 SK를 이겼다. 포스트시즌 사상 세 번째 나온 끝내기 실책이었다. 이어 열린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더 극적인 승리가 나왔다. 2승1패로 앞서던 두산은 10월 14일 목동에서 열린 4차전에서 2-9로 뒤져 있던 경기를 끝내 뒤집어 11-9로 잡았다. 포스트시즌 사상 가장 큰 점수차 역전승이었다.

치열한 가을야구가 펼쳐지는 가운데, 한화의 움직임은 여전히 관심을 모은다. 2015시즌을 앞두고 ‘야신’으로 추앙 받던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모든 야구뉴스의 상당 부분을 한화가 끌어모았다.

한화 김성근 감독 / 김기남 기자

한화는 2015시즌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다. 전반기 상위권을 위협하며 돌풍을 일으키자 관중 수와 시청률이 폭등했다. 짜릿한 역전승, 끝내기 승리가 반복되자 ‘마리한화’라는 별명이 다시 회자됐다. 원래 ‘마리한화’라는 별명은 꼴찌만 거듭하던 과거, ‘자꾸만 져도 보게 된다’는 뜻의 자조섞인 단어였지만 올 시즌 매 경기 치열한 승부를 펼치면서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라는 뜻으로 재탄생했다.

열광과 찬사는 오래가지 않았다. 후반기 성적이 추락하자 거친 비난이 쏟아졌다. ‘야신’이라 불렸던 김성근 감독에 대한 기대와 실망, 환호와 비난이 얽히고설켰다. 한화는 전반기를 44승40패로 마쳤지만 최종 성적은 68승76패에 머물렀다. 후반기 성적은 24승36패. 후반기 승률 0.400은 막내구단 KT(24승1무33패, 0.421)보다 뒤진 꼴찌였다. 결국 한화는 막판 분전을 이어갔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김 감독의 고집, 성적으로 보면 실패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는 김 감독의 지론 속에 ‘5강 실패’라는 성적표는 최근 수년간 꼴찌를 거듭했던 한화 성적의 상승과 관계없이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한화가 올 시즌 거둔 68승은 한화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1999년(72승) 이후 최다 승리였다. 승률 0.472역시 2008년(0.508) 이후 7년 만에 거둔 높은 승률이지만, 가을야구 실패는 김 감독 스스로도 실패로 여기는 성적이다.

김 감독으로서도 부임 첫해 포스트시즌 실패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팀을 맡을 때마다 첫 해 승률 5할 이상을 기록했고,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한화의 포스트시즌 실패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뒤따랐다. 성적에 대한 욕심과 압박이 마운드 운영에 대한 무리수로 이어졌다는 지적과 고양 원더스 3년의 시절이 프로야구 경기감각을 무디게 했다는 해석도 따랐다. 실제 김 감독은 SK 시절, 치밀하게 월 단위로 예상 승수를 설정하고 이를 맞춰가는 스타일의 경기운영을 했지만 올 시즌 이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설득력이 있는 지적 중 하나는 ‘김성근식 야구’를 증명하려는 고집에 대한 평가였다. 혹사에 가까운 마운드 운영, 특타로 대표되는 지나친 훈련량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김 감독은 보란 듯이 권혁과 박정진을 마운드에 올렸고, 경기 전 특타와 야간 특타를 강행했다. 때로는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지만 시즌 최종 성적표로 따지자면 결국 실패였다. 감정적 비난도 이어졌다. ‘김성근 감독’을 둘러싼 논란은 ‘시비(是非)’의 문제를 넘어 ‘호오(好惡)’의 영역으로 확대됐다.

지금까지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화려한 성공만 기억되지만, 씁쓸한 실패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리그의 환경 변화와 맥이 닿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 감독의 야구는 ‘투고타저’일 때 강하지만, ‘타고투저’일 때는 잘 통하지 않았다. 1988년 OB 감독일 때 순위가 5위로 떨어졌다. 그해 리그 전체 방어율 3.80은 리그 출범 첫해(3.82)를 제외하고 가장 높았다. 1991년과 92년 삼성 감독일 때 역시 팀 전력에 비해 낮은 순위(3위, 4위)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때 리그 방어율은 3.96, 4.32로 프로야구 출범 이후 가장 높았다.

리그 환경이 ‘타고투저’일 때 김 감독의 야구는 힘이 떨어졌다. 반면 ‘투고타저’일 때 김 감독의 야구는 힘을 발휘했다. 1996년 쌍방울 돌풍을 일으켰을 때 리그 방어율은 3.68로 떨어졌다. 1999년 김 감독 최악의 승률 0.224는 쌍방울의 자금난과 함께 리그에 몰아닥친 충격적 타고투저(4.98)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2002년 LG를 이끌고 한국시리즈에 올랐을 때 리그 방어율은 전년(4.71) 대비 0.5가 줄어든 4.24였다. 2007년 SK를 우승시켰을 때 리그 방어율은 모처럼 4점대 이하로 내려간 3.91이었다. 우승을 놓쳤던 2009년 리그 방어율 4.80은 타고투저를 뜻하는 숫자였다. 리그에서 홈런이 펑펑 터져나왔다.

KBO리그 2014시즌은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였다. 리그 방어율이 5.21이나 됐다. 2015시즌 역시 4.88로 만만치 않았다. 김 감독의 야구가 잘 통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압박의 야구’가 잘 통하지 않아
김 감독의 야구는 ‘압박’의 야구다. 1점을 짜내 그 리드를 바탕으로 상대를 조여들어간다. 번트는 김 감독의 강력한 압박용 무기였다. 다양한 투수를 마운드에 올리는 ‘벌떼 불펜’ 역시 1점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시키는 운영방식이었다. 문제가 됐던 큰 점수차 마무리 등판 역시 3연전의 첫 판,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였다. 상대팀으로 하여금 ‘점수 내기가 어렵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장치였다. 시즌 내내 여러 차례 나왔던, 무리해 보였던 홈 주루사 역시 투고타저의 ‘저득점 환경’에서 효과를 보는 스타일이다. 1점의 크기가 클 때 수비와 중계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타고투저 환경에서는 압박의 효과가 크지 않다. 역대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을 지난해 겪어본 상대팀 선수들은 김 감독의 번트에 흔들리지 않았다. 줄 점수는 주고, 나중에 뽑으면 된다는 식으로 편하게 플레이를 했다. 3연전의 첫 판을 대패하더라도 다음 날 툭툭 털고 다시 경기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졌다. 리그의 타자들은 어떤 불펜 투수도, 어떤 마무리 투수도 두들겨 무너뜨릴 수 있다는 태도로 타석에 들어섰다. 전반기 잘 만들어놓은 권혁, 박정진의 ‘이름값’만으로는 상대에게 압박을 줄 수 없었다. 야수들은 3루를 돌아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의 움직임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정확한 송구를 했다.

2016시즌 역시 타고투저 흐름에 갑작스런 변화가 올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김성근식 야구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시즌 막판, 그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한화는 올 시즌 144경기에서 139개의 희생번트를 기록한 팀이었다. 시즌 마지막 8경기는 더욱 치열한 승부가 필요했지만 오히려 희생번트가 6개로 줄었다. 그 기간 한화는 5승3패를 기록했다. 홈 주루사 몇 개가 없었다면 6승2패, 어쩌면 7승1패가 될 수도 있었다. 후반기 몇 경기, 희생번트의 감소가 곧바로 김 감독의 변신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그 변화의 가능성은 눈여겨 볼 만하다.

시즌 막판 타선을 짜는 데도 변화가 나타났다. 김 감독이 구성하는 라인업의 ‘2번타자’는 ‘작전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2번 타순에 이용규-정근우를 나란히 붙이는 대신 2번에 강경학 등 번트를 댈 수 있는 선수를 기용하는 라인업을 즐겨 썼다. 7월까지 한화의 2번 타자 타율은 0.243, KIA에 겨우 앞선 리그 9위였다.

시즌 막판이 되면서 김 감독은 상위타선 전체를 ‘잘 치는 타자’로 채웠다. 8월 이후 한화 2번 타자의 타율은 0.333으로 리그 1위였다. 현대 야구에서 ‘강한 2번’은 대량 득점을 위한 정석으로 평가받는다. 김 감독 역시 ‘타고투저’라는 리그 환경 변화에 스스로 바뀌어야겠다는 계산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감독은 또 다른 변화의 작은 징조들을 드러내고 있다. 김 감독은 시즌이 끝나자마자 1군 선수들에게 15일의 휴가를 줬다. “감독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스프링캠프 역시 규모를 축소해 ‘정예 멤버’로 꾸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모든 발전은 과감한 변화에서 시작된다. 김 감독 스스로도 “변화를 두려워하면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일흔 셋, 노장의 야구는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또다시 팬들의 눈이 김 감독을 향하고 있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