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에 대해 강경해질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나 핵확산방지, 보건안보 같은 이해관계가 수렴되는 문제들에 대한 협력을 모색하는 동시에 중국의 폭력적 행위와 인권침해에 맞서 동맹국과 단결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올해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3·4월호에 ‘왜 미국이 다시 이끌어야만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의 내용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중국을 ‘특별한 도전’이라고 표현하며 “나는 그 지도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우리가 직면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한다. 중국은 세계적 영향력 확대와 자국 정치모델 홍보, 미래기술에 대한 투자로 장기전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바이든 당선자의 제46대 미국 대통령 취임을 한달가량 앞두고 미중관계에 대한 다양한 전망이 쏟아진다. 일단 ‘바이든 호’가 출범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온 것과 같은 예측 불가능성은 줄어들겠지만, 미국의 대중 강경노선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과 다자주의 복원을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 중국으로서는 국제사회로부터의 더 큰 압력과 고립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기 말 트럼프의 ‘대못 박기’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미중관계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는 임기 초부터 중국과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공언했다. 늘어나는 대중 무역수지 적자와 부상하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배경이 됐다. 임기 첫해인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무역 불균형 해소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100일간 이어진 협상에서 양국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듬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을 포함한 태양광 패널과 철강, 알루미늄 등 수입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 것이 미중 무역갈등의 서막이었다. 2018년 7월 양국은 각각 340억달러 규모 수입 제품에 대한 25% 관세 조치를 주고받으며 본격적인 무역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추가적인 관세 조치를 이어가던 두 나라는 지난해 10월 고위급 무역협상을 갖고 ‘일시 휴전’에 들어갔다. 올해 1월 중국은 2년 동안 농산물과 공산품 등 20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추가 구매하고, 미국은 추가적인 관세 부과 계획을 철회하는 동시에 기존 관세 일부를 완화하기로 합의하고 1단계 무역합의에 공식 서명했다.
하지만 미중갈등은 끝난 게 아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책임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을 둘러싼 미국의 공격, 화웨이·틱톡 등 중국 주요 기술 기업에 대한 제재, 상대국 영사관 폐쇄와 언론인 추방 조치 등 끊임없는 공방이 이어지며 갈등 양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지난 11월 3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한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은 대선 직후인 지난 11월 9일 인권탄압을 이유로 홍콩 관료들을 추가 제재했고, 12일에는 중국군이 소유·통제한다고 판단한 기업 31개에 대해 미국의 투자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이달 들어서도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SMIC 등 중국 기업 4곳을 국방부 블랙리스트에 추가하고, 중국 최고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14명을 제재 명단에 올리는 등 강경 조치가 이어졌다. 임기 말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일종의 ‘대못 박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차기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중 정책을 뒤집지 못하도록 불가역성을 높이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에 반발하며 홍콩·마카오를 방문하는 미국 외교여권 소지자에 대해 비자 면제 대우를 취소하는 등 ‘보복 조치’로 맞불을 놓고 있다.
한달 후면 미중관계의 열쇠는 차기 바이든 행정부에 넘어간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양국관계 개선을 희망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2월 11일 참석한 포럼에서 “양국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우선 대화를 시작해야 하며, 중국은 미국과 모든 영역에서 깊이 있고 건설적인 교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국 대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왕 부장은 코로나19 방역과 세계경제, 기후변화 등을 놓고 소통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바이든 당선자도 코로나19나 기후변화 대응 등에 있어서는 중국과 협력할 의사를 내비쳐왔다.
관계 개선 노리는 중국, 열쇠 쥔 바이든
다만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더라도 당장 대화와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기대는 크지 않다. 바이든 당선자는 취임 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국내 상황 해결을 우선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다자주의와 동맹 복원이 다음 과제다. 미중 무역협상이나 관계 재설정은 그다음 선택지다. 바이든 당선자는 최근 중국과의 무역 합의나 관세 조치를 당장 손볼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 12월 1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과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대중 관세나 1단계 무역 협정에 대해 즉각적 조치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과의 기존 협정을 전면 재검토하고 아시아·유럽의 전통적 동맹국과 협의해야 일관성 있는 전략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고의 중국 전략은 모든 동맹국을 같은 편에 배치하는 것”이라며 “대통령 임기 초 동맹국과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중요한 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당선자의 대중 전략에는 동맹국이나 미국 내 양당의 강경한 입장도 영향을 미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바이든 당선 후 중국을 견제하고 ‘민주국가의 광범위한 연합’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기 위해 EU와 미국이 새로운 글로벌 동맹을 구축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의 보고서 초안을 마련했다. 미국 민주·공화 양당도 연방의회에서 내년도 국방예산안인 2021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태평양 억지구상’ 예산을 신설하는 등 중국에 대해서는 초당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러 여건상 미중갈등은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끝나지 않는 패권경쟁이 될 수 있다. 이를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묘사한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인권·민주주의에 대한 미중 간의 근본적 차이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이 차이를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고, 각각이 수용할 수 있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개념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며 “두 강대국이 공유하는 필수적 국익이 그들을 분열시키는 국익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종섭 국제부 기자 nomad@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