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방송 1위·콘서트 매진…버추얼 아이돌의 현실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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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브’ 팬 수만명 추산…실체보다 있는 그대로의 음악성·열정에 집중 ‘역설적’

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열린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행사장 모습/김찬호 기자

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열린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행사장 모습/김찬호 기자

“플레이브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라 버추얼(가상) 아이돌이에요. 정확히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지난 3월 16일 팝업스토어(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임시 매장)의 성지로 떠 오른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만난 A씨의 말이다. 이곳 5층에서는 지난 3월 1일부터 17일까지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의 팝업스토어가 운영됐다. 팬들이 굿즈(스타와 관련된 상품)를 사고, 사진도 찍을 수 있게 기획한 아이돌 팝업스토어는 더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대상이 플레이브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이들은 현실이 아닌 사이버, 즉 가상세계에만 존재하는 아이돌이다.

기술이 만들어낸 세상에 익숙한 10대, 20대 초반에게 ‘버추얼 아이돌’은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반면 기성세대는 이해부터 어렵다.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1998년 데뷔한 사이버 가수 ‘아담’을 떠올리면 개념은 파악할 수 있다. 아담 역시 가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 뒤에 실제 가수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캐릭터 구현과 활동 방향은 20여 년의 간극만큼 다르다.

플레이브는 행위자의 동작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대로 재현하는 ‘모션 캡처’ 기술 기반으로 만들었다. 기존 모션 캡처는 사람의 동작을 녹화해 캐릭터 특성에 맞게 후가공했기에 작업에만 수일이 걸린다. 반면 플레이브는 사람의 행동이 캐릭터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실시간 리타기팅’ 기술을 사용한다. 이 경우 ‘신체 간섭’과 ‘신체 비율 차이’ 등으로 캐릭터가 실제 사람과 가깝게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남는다. 플레이브 소속사 블래스트는 이를 자체 개발한 간섭 회피 기술과 자체 리타기팅 기술 등으로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팬들은 사전 녹화된 영상이 아닌 실시간으로 팬들과 소통하는 플레이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블래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블래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플레이브는 컴백(복귀)과 함께 지난 3월 9일 MBC 가요순위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에서 1위를 차지했다. 소속사 블래스트가 MBC 사내벤처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들의 인기는 무시하기 어렵다. 유튜브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팬덤이 수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대중음악 관계자는 “팬덤으로 보면 세븐틴 정도의 남자 아이돌보다 약간 낮은 정도, 수익으로 보면 최정상급 여자 아이돌보다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플레이브를 향해서는 여전히 ‘오덕후’로 대표되는 서브컬처(하위문화)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은 일본에서 넘어온 사회병리현상이라는 것이다.

플레이브를 둘러싼 각기 다른 반응은 ‘서브컬처의 기준이 무엇인가’, ‘버추얼 아이돌이 지속 가능한가’ 등의 의문을 파생한다. 특히 이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끄는 것은 플레이브의 인기가 일시적 호기심이냐, 문화적 현상이냐다.

일반 아이돌 팬덤과 무엇이 다른가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입장은 예매부터 치열했다. 1차(3월 1~9일 입장) 사전예약은 공개와 동시에 서버가 다운됐다.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긴 했지만 2차(3월 10~17일 입장) 예약도 곧바로 매진됐다. 팝업스토어는 평일 기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30분 단위로 입장할 수 있었다. 회차별로 입장 인원이 제한됐다. 관계자에 따르면 하루 입장 가능 인원은 1000명 정도였다. 팝업스토어 근처에 설치된 부대 장소까지 합치면 하루 방문객 수는 더욱 늘어난다. 행사가 열리는 동안 오직 플레이브를 보기 위해 더현대 서울을 찾은 인원은 적게 잡아도 2만명이 훌쩍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막바지에 이르렀던 지난 3월 16일에도 인기는 그대로였다. 첫 입장 시간인 10시 30분 무렵이 되자 팝업스토어 앞으로 줄이 늘어섰다. 이날 만난 B씨는 지방에서 아침 일찍 올라왔다고 했다. ‘방문 이유와 만족감’을 물었다. “럭드존 오픈런 해서 포카앨범 사고 프로토 홀로그램 대기까지 걸었으니 만족하죠. 팝업 들어가 반팔티랑 키링만 사면 완벽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치 암호 같은 말은 B씨와 함께 서 있던 C씨 도움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플레이브는 버추얼 아이돌인 만큼 팬들과 사진 촬영이 불가능할 것 같지만 기술로 제약을 넘었다. 이른바 ‘프로토 홀로그램’을 통해 플레이브 멤버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다. 팬들에게 홀로그램 사진 촬영은 인기가 높다. 다만 홀로그램 기계 과열 방지를 위해 사진 촬영은 인원 제한을 한다. 주최 측은 플레이브 사진이 인쇄된 카드 앨범(포카앨범) 구매자에 한해 선착순으로 홀로그램 사진을 찍게 해준다. 이 때문에 개장 전부터 줄을 서는 오픈런을 한다는 것이다. 이 포카앨범을 구매할 수 있는 곳이 럭키드로우존(럭드존)이다. 럭드존은 미공포(미공개 포토카드)를 무작위 방식으로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장 관계자는 “10여 일 넘게 운영했지만 여타 아이돌과 플레이브 팬덤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계 방향 순서로 1.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럭드존에서 포카앨범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 2.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럭드존에서 구매할 수 있는 포카앨범 3. 포카앨범을 구매하고 나면 홀로그램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등록을 해야 한다. 오픈 30분이 지난 11시 296팀이 대기 중이다. 4. 럭드존에서 포카앨범을 구매하고 나면 홀로그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기표를 받을 수 있다./김찬호 기자

시계 방향 순서로 1.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럭드존에서 포카앨범을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 2.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럭드존에서 구매할 수 있는 포카앨범 3. 포카앨범을 구매하고 나면 홀로그램 사진을 찍기 위해 대기 등록을 해야 한다. 오픈 30분이 지난 11시 296팀이 대기 중이다. 4. 럭드존에서 포카앨범을 구매하고 나면 홀로그램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대기표를 받을 수 있다./김찬호 기자

굳이 차이를 꼽는다면 플레이브 팬들에겐 암묵적으로 공유된 규칙이 보인다. 핵심은 ‘플레이브’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노아, 밤비, 예준, 하민, 은호라는 멤버 뒤에 있는 ‘사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실체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는 멈춘다. 대신 “플레이브 뒤에 누가 있어서 덕질(팬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것”이란 답이 돌아오는 식이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반드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더 건강한 아이돌 문화인가

플레이브를 둘러싼 논란의 시작도 이들의 익명성에서 시작한다. 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열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조롱과 연결된다. 그런데 지난 주말, 유동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더현대 서울을 찾은 플레이브 팬 중 얼굴을 가리거나 기자와의 대화를 피하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플레이브의 개념, 왜 좋아하는지 등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이는 최근 불거진 아이돌 생태계를 둘러싼 논란과도 대비된다.

인기 아이돌 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는 연애 사실이 공개되자 자필로 사과문을 썼다. 카리나라는 활동명을 쓰지만 그의 또 다른 본질은 2000년생, 24세 유지민씨다. 팬들로부터 받는 사랑의 대가가 사생활 포기여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한국 아이돌은 데뷔와 함께 사생활을 저당 잡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역설적 현상을 만든다. 대중적인 아이돌에게서 찾기 힘든 인간적 면모가 오히려 버추얼 아이돌에게 더 잘 보인다. 현재 아이돌 성공 공식은 대형 기획사에서 각종 지원을 받으며 말투부터 동작 하나하나까지 기획돼 나오는 것이다. 하나의 ‘상품’으로 제작되다 보니 팬들은 구매한 상품의 평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열애설도 용납하기 어렵게 된다.

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열린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행사장 모습/김찬호 기자

지난 3월 16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백화점에서 열린 플레이브 팝업스토어 행사장 모습/김찬호 기자

반면 플레이브는 성공 공식에 충실하게 만든 상품과는 거리가 멀다. 버추얼 아이돌이란 한계로 좋은 곡을 받지 못하자 반강제적으로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 안무까지 ‘자체 해결’하는 아이돌이 됐다. 이것마저 기획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들의 행보는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다. 기존 아이돌과는 분명 다르다. 자연히 팬들이 집중하는 것 역시 이들이 어떤 음악과 춤을 만들고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냐에 쏠린다. 실체가 누구고, 무엇을 했는지 등은 부차적 사안으로 밀린다는 것이다. 김도헌 대중음악 평론가는 “흔히 팬들이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이유가 열애설이나 사생활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본질을 도외시한 분석”이라며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들의 음악과 춤에 대한 태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플레이브를 좋아하는 팬들이야말로 가수를 좋아하는 근본적 이유에 가장 근접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플레이브는 오는 4월 13~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팬 콘서트를 연다. 소속사 블래스트에 따르면 선 예매 시작과 동시에 7만여명이 동시 접속했고, 10분 만에 전석 매진됐다. 버추얼 아이돌은 점점 더 주류 문화에 다가서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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