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다리]좋음과 옳음…그 사이 어디쯤의 예술

여성 배우 박정자(가운데)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남성인 럭키를 연기하고 있다. 파크컴퍼니 제공

아일랜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는 20세기 부조리극을 대표하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를 썼다. 베케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연극 무대에 올랐다. 베케트는 1988년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려는 네덜란드 극단을 고소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남성인데, 극단이 여성 배우들을 캐스팅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배우의 성별과 상관없이 배역을 정한 ‘젠더 프리’ 공연은 흔하다. 관객의 젠더 감수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베케트의 ‘여성 배제’ 조치는 시대의 변화와 맞선 작가의 고집이었다. 베케트는 “여성에게는 전립선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극 중 블라디미르가 종종 오줌을 싸기 위해 무대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전립선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 전립선 문제가 있다고 명시한 대목은 없다.

베케트가 1989년 사망하자 저작권을 상속받은 조카가 소송을 이어갔다. 1991년 네덜란드 법원은 “베케트의 유산에 과도한 피해를 입히지 않을 것”이라며 극단의 손을 들어줬다. 반면 1992년 프랑스 법원은 “베케트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공연을 금지했다. 베케트 측은 여전히 원작의 큰 변형은 허락하지 않지만, 점점 여성 배우에게 문을 열어갔다. 현재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고도를 기다리며>에도 여성인 박정자가 출연한다.

영국 동화작가 로알드 달은 1990년 사망했다. ‘아동문학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렸지만, 작품이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출판사와 저작권 관리사는 최근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10개 작품에서 젠더·인종·신체와 관련된 표현을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의 기준에 따라 고쳤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남자들(men)’을 ‘사람들(people)’로 바꾸는 등 505건을 수정했고, ‘미친(mad)’ 등 78건은 아예 삭제했다.

작가 살만 루슈디는 “터무니없는 검열이다.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루슈디는 소설 <악마의 시>를 썼다가 이슬람권의 사형 선고를 받고 살해 협박과 테러에 시달린 인물이다. 반면 평론가 애슐리 에스퀘다는 엑스(구 트위터)에 “시대에 따른 진화는 좋은 일”이라며 “어린 시절에 갇혀 있으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지친다”고 적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한다. 예술가가 죽어도 예술은 남는다. 예술가에게 자신의 작품은 자식과도 같다. 원래 모습을 애지중지 지키고 싶겠지만 시대의 변화는 피할 수 없다. 더구나 예술가의 사망 후 일정 기간(한국은 70년)이 지나면 작품은 예술가의 사적 소유물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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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화하면서 작품의 좋음(good)은 옳음(right)의 끊임없는 도전을 받을 것이다. 옳은 작품이 곧 좋은 작품일 수도 있겠지만 문화부 기자로 일해보니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다. 옳기만 하고 좋지 않으면, 좋기만 하고 옳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다. 좋음과 옳음이 칼로 자르듯 나눠지는지도 의문이다. 좋음과 옳음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재하는 것이 예술의 운명 아닌가 싶다. 나는 베케트가 여성 배우를 배제한 것도, 출판사가 달의 작품을 수정한 것도 반대한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