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 52점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전
흩어진 명작을 모으고, 잇는 작업이 대중의 설득력을 얻을 때 비로소 ‘전시’가 탄생한다. 이를 위해 전시기획자(큐레이터)는 작품과 함께 놓이는 소품, 위치, 전시장에 흘러나오는 음악 등을 바꿔가며 작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나는 왜 전시장을 찾는가”의 해답도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관객들이 이미 익숙한 그림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는 ‘비효율’을 감수하는 것은 기획자가 창조한 ‘생경함’의 마법 덕분에 가능해진다.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스는 1984년 뉴욕의 한 전시장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접한 후 “훌륭한 그림의 특징은 그 작품이 얼마나 많이 복제됐는지와 관계없이, 생경함의 힘을 통해 작품의 표현력이 회복되는 데 있다”고 했다. 문제는 작품을 볼 때마다 생경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만큼 이해가 깊어야 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색, 빛의 방향, 그림자 등의 의미를 알기 위한 노력이다. 전공자거나 그에 버금가는 관심이 없는 한 이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이 수고로움을 덜면서 생경함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바로 ‘전시장’을 찾는 것이다. 각 전시는 같은 작품으로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한 ‘큐레이션(Curation)’의 산물이다. 쉽게 말해 잘 기획된 전시라면 별도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관람객이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2일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명화 52점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작품을 대여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은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라는 전시를 꾸몄다. 애초 이 전시는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라파엘로, 고흐, 고갱, 마네, 모네 등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다는 점에서 부각됐다. 그런데 해외여행 접근성이 올라간 상황에서 과거만큼 ‘최초’가 갖는 의미는 크지 않다. 오히려 그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어디서 본 것 같더니 현지에서 봤던 그것이네”라는 해외 명화전의 단골 감상평이다. ‘봤는데 기억이 안 나는’ 전시가 되지 않으려면 관람객에게 뚜렷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자신들만의 해답을 내놨다. ‘신과 종교에서 인간으로 관심이 전환되는 순간의 포착’이라는 주제다. 미술의 사조, 시대적 흐름에 따라 작품을 배치한 영국 내셔널갤러리,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중국 상해에서 열린 내셔널갤러리전과의 과감한 차별화다.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 위해 지난 6월 12일 전시가 열리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을 찾았다.
평일 오전임에도 전시장에 몰리는 사람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오전 10시에 전시장을 찾은 것은 취재로 인해 관람객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전시장이 열리는 오전 10시 무렵이 되자 매표소와 출입구 쪽으로 줄이 늘어섰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으로 표를 사전 판매했는데 6월 12일 기준, 구매 가능한 마지막 날인 7월 14일까지 이미 모든 표가 매진된 상황이었다. 이날 전시장에는 관람권 예매에 성공해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라인 예매에 익숙지 않거나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 그날그날 현장에서 입장권을 판매하는데, 이를 노린 사람들까지 더해진 인파였다.
박물관 측도 인원 분산 방안을 고민했다. 전시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30분 단위로 회차를 나눠 관람객 입장을 제한했다. 특정 시간대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몰려 관람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별도의 관람 시간제한이 없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그나마 쾌적한 시간을 꼽으라면 오전 10시, 즉 1회차 관람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관람객이 정말 많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가장 적은 시간대였던 셈이다.
관람료는 만 25세 이상 성인 기준 1만8000원이었다. 결코 싸지 않은 금액이다. 이날 눈에 띈 초등학생 아이를 둔 3인 가족이라면 5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단순히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사진 한 장 올리기 위해 선뜻 지불할 만한 금액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날 전시장에는 나 홀로, 가족, 연인 등 다양한 형태의 관람객이 북적였다. 적어도 이들은 입장권 가격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의미를 얻어갈 수 있다고 기대했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는 이 문제를 시대의 전환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예술이 보여주는 시대의 변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의 전환은 ‘인간에 대한 관심’을 특징으로 한다.” 교과서에 담긴 시대 구분법이다. 한 시대의 끝과 또 다른 시대의 시작점은 멈춰 있는 순간이 아닌 흐르는 시간이다.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닌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림의 변화를 보면 이러한 시대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 주제, 즉 대상의 변화다.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는 바로 이 전환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전시에 나온 작품들이 기획단계에서 요청된 것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영국 내셔널갤러리가 제공할 수 있는 작품들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기획자가 ‘신과 종교에서 인간으로의 관심 전환’이라는 주제를 이끌어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는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15세기부터 근대미술이라고 불리는 20세기까지의 작품이 총망라돼 있다. 기획자의 시선에 따라 전시가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전시는 1부, 2부 하는 식으로 모두 4개의 작은 소주제로 다시 분류했다. 각각의 ‘부’에는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이라는 주제를 달았다. 마지막 4부의 인상주의를 다룬 부분은 다소 전시주제와 동떨어져 보였다. 이에 대해 이번 전시를 기획한 선유이 학예연구사는 “인상주의는 근대화된 도시의 변화된 모습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화가가 느낀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며 “무엇보다 이 시기 그림이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수단’에서 평범한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예술’로 변해간다는 점에서 이는 인간에 대한 관심의 확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시대순으로 작품을 배치하는 단조로움에서도 탈피했다. ‘그림이 언제 그려졌느냐’보다 ‘신에서 인간으로’ 관심이 전환되는 과정에 더욱 집중했다. 이 때문에 이번 전시를 단순히 미술사조, 통사적(시간의 흐름)으로 접근하려다가는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왜 이렇게 초상화가 유행했을까” 혹은 “고대 그리스로마신화나 당시의 세계관이 그림에 반영된 이유가 무엇일까” 등을 질문하며 따라가야 한다. 선 학예사는 “큰 틀에서는 통사를 따르지만, 각 부에서 전달하려는 내용에 따라 제작 시기와 관계없이 작품들이 섞여 있다”며 “작품의 수량 자체가 많은 전시는 아니지만 하나하나 시대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게 선정하고 배치했다”고 말했다.
전시 의도를 얼마만큼 받아들이고, 체화해 감동을 배가시키느냐는 이제 관람객들의 몫이다. 아래는 실제 전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들었던 작품들이다. 예술이 주목한 대상을 통해 시간의 흐름, 시대적 변화를 느껴보길 바란다.
1부 ‘르네상스, 사람 곁으로 온 신’에서 주목받는 작품은 르네상스 시대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라파엘로의 ‘성모자와 세례 요한’이다. 일명 ‘가바의 성모’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궁의 ‘아테네 학당’을 그리던 시기 함께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주제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음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그림은 밑변이 넓어지는 안정적 삼각형 구도 속에 인물을 배치했다. 또 인간과 닮은 신, 섬세한 손가락 묘사 등이 사실적이고 과학적인 르네상스 시대 회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주제 측면에서 보면, ‘나르키소스’를 빼놓을 수 없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 특징이 그리스·로마 시대에 대한 희구다. 이 그림은 흔히 ‘나르시스’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이 물그릇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리스신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엄혹한 중세를 빠져나온 시대적 변화를 표상한다.
2부 ‘분열된 교회, 서로 다른 길’에서 관람객 대부분의 발길을 붙드는 것은 카라바조의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다. 전시 포스터를 장식한 작품이기도 하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 몸을 움츠리며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카라바조는 극적인 빛을 사용해 자신만의 독창적 그림을 그렸다. 그런 카라바조가 소년이 도마뱀에게 물리는 순간을 주제로 내세운 것은 그만큼 회화가 인간의 삶으로 한 걸음 더 들어왔음을 체감하게 한다.
3부 ‘새로운 시대, 나에 대한 관심’에서는 토머스 로렌스의 ‘찰스 윌리엄 램튼’, 이른바 ‘레드보이’가 기다리고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년으로도 잘 알려진 이 작품은 1967년 영국 우표에 최초로 실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아이의 흰 피부와 강렬한 빨간색 옷의 색감 대조가 자연스레 관람객을 잡아끈다. 1825년 1대 더럼 백작인 존 조지 램튼이 의뢰해 아들 찰스의 예닐곱 살 무렵을 그리게 한 작품이다. 개인의 삶을 기록한 초상화의 유행은 그림이 신을 찬양하기 위한 도구에서 탈피한 모습을 보여준다.
4부 ‘인상주의, 빛나는 순간’에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등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서양 미술작품이 쏟아진다. 사진의 등장과 함께 묘사만으로는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 그림은 빛과 색채를 활용해 대상에 대한 인간의 주관적 시각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의미 측면에서 보면 단연 에두아르 마네의 ‘카페 콩세르의 한구석’이 백미다. 소수의 부유층이 향유하던 예술이 시대 변화와 함께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알리는 작품이다. 카페 콩세르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모여 공연을 감상하는 공간이었다. 특권층의 예술이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다시 일상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상징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