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AI가 예술가를 대체? 예술가의 도구 될 수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요즘 과학뿐 아니라 인문, 의료,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AI)이 눈부시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시, 소설, 작곡, 그림 등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 능력이 너무 뛰어나고 정교해 두려울 정도입니다. 미술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떤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얘기해볼까 합니다.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제이슨 앨런이 AI ‘미드저니’로 생성한 작품이다. / 제이슨 앨런 트위터

미국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 제이슨 앨런이 AI ‘미드저니’로 생성한 작품이다. / 제이슨 앨런 트위터

오픈AI 챗봇 ‘챗GPT’(ChatGPT) 인기가 대단합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지 단 5일 만에 사용자 100만명을 모았습니다. 넷플릭스는 40개월, 페이스북은 10개월 동안 해낸 일을 단 5일 만에 해낸 것입니다. 그리고 공개된 지 두 달이 지난 올 2월 기준 챗GPT는 월 사용자 1억명이 넘는 서비스가 됐습니다. 이렇게 AI의 사용 빈도가 커짐에 따라 챗GPT 활용을 두고 찬반이 엇갈립니다. 실험, 디자인 등에 활용해 연구 시간을 크게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견과 연구의 핵심인 정확성을 담기 어려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짜 정보가 생성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반론이 대립 중인 과학계의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챗GPT를 논문 작성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생기자 ‘사이언스’와 ‘네이처’ 등 국제학술지들은 챗GPT로 작성된 논문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까지 했습니다.

미술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AI의 ‘그림 시장’ 공략은 이제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달(DALL)-E, 미드저니(Midjourney), 노벨(Novel) AI 등 인공지능 사이트를 통해 제작한 그림을 자랑하는 AI 커뮤니티 채널들이 요즘 인기라고 합니다. 실제로 미드저니를 활용해 “자작나무 숲을 세잔 스타일로 수채화로 그려줘”라는 식으로 명령어를 입력하면 순식간에 멋진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제이슨 앨런은 미드저니를 통해 생성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출품해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문 1등을 차지했습니다. 미드저니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바꿔주는 AI 프로그램입니다. 사람이 개입한 부분은 텍스트 입력과 결과물 선별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사람이 그린 예술작품으로 봐줘야 하느냐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저작물을 창작자의 동의 없이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작가들이 미드저니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AI의 제작사가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 캘리포니아의 불공정 경쟁법 등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제기하며 생성 AI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창작자들에게 보상하고, 추가적인 피해를 막기 위한 가처분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해당 미술전의 디지털 아트 부문 규정에 따르면,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거나 색 보정을 하는 등의 디지털 방식 편집은 허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AI 그림과 손 그림의 경계가 모호해져 판별 자체가 어려워질 거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란 인간 고유의 창조활동으로 간주하지요. AI가 과연 어떻게 사람을 뛰어넘을 정도의 멋진 그림을 그려낼 수 있는 걸까요. AI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대한 정보, 즉 빅데이터를 끊임없이 학습함으로써 발전합니다. 사람이 공부를 많이 할수록 똑똑해지는 것처럼 AI도 많은 정보를 학습하고 분석할수록 더욱 고도화됩니다. 고도화된 AI는 인간의 요청을 정확하게 수행하고 뛰어난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AI의 학습 분야는 날로 다양해지는 추세입니다. 수많은 예술작품과 유명 화가들의 화풍, 기법 등을 학습하고 분석해온 AI는 사용자의 필요에 맞춘 이미지를 즉시 생성해내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술은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리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지만, 착각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인간이 문명을 발전시키고 역사를 이어오며 만든 수많은 예술작품 역시 빅데이터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게임 원화업계의 움직임이 특히 활발합니다. 이들은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업으로서는 제작비를 낮추기 위해 상업적으로 인정받는 소수의 작가만 남기고 게임 속 하늘이나 간단한 소품을 그리는 잔일들은 AI에게 넘길 겁니다. 인건비, 단가가 떨어지고 출혈 경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게임 원화 작가들은 일자리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실제로, 노벨 AI는 인물을 거의 원화 수준의 만화체 그림으로 그려냅니다. 창의성으로 승부하지 않는 한, 기교만 가지고선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는 거죠.

‘미드저니’에 AI 관련 이미지를 주문해 생성한 작품들 / 미드저니

‘미드저니’에 AI 관련 이미지를 주문해 생성한 작품들 / 미드저니

AI가 그린 그림, 저작권은?

AI가 생성한 그림이나 음악 등을 과연 예술작품으로 인정해야 하는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AI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인류의 진통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우선 저작권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생성한 그림은 결국 기존의 예술작품들을 짜깁기해 만들어진 표절의 결과물’이라는 문제 제기에서 시작됩니다.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요즘 작가들의 수많은 콘텐츠는 결국 무분별하게 빅데이터로 습득되는 AI의 학습 도구쯤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거지요. 예술가가 AI를 이용해 독창적인 키워드와 문장을 떠올리고 이미지를 추출한 뒤, 이를 편집해 새로운 결과물을 선보였다면 창의적인 작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AI로 그린 만화가 저작권 등록을 승인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AI가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 기존 예술가의 입지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걸까요. 일부 온라인 예술 커뮤니티에서는 AI가 생성한 예술작품 게시를 금지하거나 AI를 활용한 작품임을 밝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개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데서 그치고 맙니다. 앞으로 발전되는 기술에 따른 분별의 어려움과 임의의 리터칭 작업만 거쳐 판매되는 AI 작품들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되지는 못하는 상태입니다. AI로 그린 그림임을 밝히지 않은 작품들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여전합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제도상의 허점을 막기 위해 작업 파일이나 원본 그림 파일(psd 파일) 등을 같이 제출하도록 해 AI로 만든 그림이 아님을 증명하게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AI 그림의 범람 문제는 올해 들어 다양한 AI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기술이 업그레이드되면서 판별이 더 부정확해지는 등 심화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AI 일러스트의 난립이 우려됩니다.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제대로 그리는 작가들도 오롯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피한다고 능사는 아닙니다. 부작용에 대한 대응은 계속해 나가되, 두려워하고 거부하기보다는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미드저니’에 AI 관련 이미지를 주문해 생성한 작품들 / 미드저니

‘미드저니’에 AI 관련 이미지를 주문해 생성한 작품들 / 미드저니

그런 점에서 AI가 생성하는 그림 저작권을 누가 갖는지 못지않게, AI가 학습 데이터로 삼는 예술작품의 저작권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상당수의 AI 프로그램에서 예술가 이름을 입력하면, 그 예술가의 화풍과 유사한 그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술가 입장에서는 자신이 그리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스타일을 흉내 낸 그림이 나오는 셈입니다. 과연 이러한 작품의 저작권은 차용한 그림 원작자, 해당 AI 프로그램을 만든 개발자, AI 그 자체, AI에 텍스트를 입력해 이미지를 생성하도록 명령을 내린 사용자 중에서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요. 당사자의 허락을 구하거나 보상을 하지 않고 특정 예술가의 스타일을 데이터로 학습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해당 예술가와 유사한 작업물을 생성한다면 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따라서 새롭게 만들어진 예술작품의 저작권과 수익 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은 논란이 분분하지만, 앞으로는 데이터의 라이선스화와 예술가에게 정당한 보상을 하는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미국 저작권청이 이미지 생성 AI인 ‘미드저니’로 만들어진 만화 이미지에 대해 저작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고 지난 2월 22일 보도했습니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도 AI가 만든 ‘작품’의 저작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2월 24일 ‘AI-저작권법 제도개선 워킹그룹’을 발족했습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은 학습 과정에서 그림을 스캔하고 복제한 작품은 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다만 이미 관련법으로 저작권법을 비롯해 데이터기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AI의 학습에 대응해 저작물을 보호하는 법이 이미 있으므로 과도한 추가 입법에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참여한 2022 콘텐츠분쟁조정 포럼이 서울에서 열리는 등 콘텐츠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분쟁조정의 발전 방향에 대한 전문가들의 논의가 활발합니다. AI 윤리 분야의 석학인 매튜 리아오 미국 뉴욕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인공지능 윤리>라는 단행본을 출간했습니다. 전 세계가 AI를 활용한 작품에 대한 윤리적·법적 제재와 실효성에 관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육기관 내에서도 AI 기술의 사용과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대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병행해야 합니다. 이미 스탠퍼드대를 비롯해 카네기멜런대, 워싱턴대 등 주요 학교에서 AI 관련 윤리적 이슈를 다루는 커리큘럼을 제공 중입니다.

이를 통해 인류가 AI 프로그램을 유용하게 쓴다면 예술가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예술가가 사용 가능한 도구가 다양해지게 됩니다. 사실 인간이 창의성을 표현하는 방법과 도구는 늘 다양하게 발전해 왔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포토샵을 사용하고 앱으로 그림을 편집하거나,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터 앱에서 다른 사람들이 만든 브러쉬를 다운받아 버튼 한 번으로 간단하게 채색을 하는 것은 모두 예술의 영역으로 허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AI 프로그램만 제동을 거는 일이 과연 합리적일 수 있을까요.

마르셀 뒤샹의 ‘샘’ / christies.com

마르셀 뒤샹의 ‘샘’ / christies.com

사진도 처음엔 예술이 아니었다

과학 발전의 산물인 사진이 처음 나왔을 때, 당시의 예술가들은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사진을 당연히 예술이라고 봅니다. 예술에 관한 정의와 관점은 고정불변이 아닙니다. 1917년에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샘’)를 미술관에 가져왔을 때, 한 평론가는 비록 “뒤샹이 ‘샘’을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선택한 것은 그였다”라며 그의 작업이 창조적인 예술작품이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 작품은 예술의 정의를 바꿔버린,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AI 예술도 다르지 않습니다. 웹툰 등 1인 창작자나 개발자들한테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림 실력이 부족한 사람도 AI를 이용해 창의력만으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력과 환경이 열악한 1인 게임 개발자도 활로를 뚫을 수 있습니다. 웹툰은 고전적 만화와 달리 작화보다는 줄거리나 아이디어가 중요한 매체이기 때문입니다. 만화 어시스턴트를 구하기 어려운 작가들이 AI를 통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기계적인 과정은 AI가 처리하도록 맡겨놓고 인간 예술가는 더 높은 창조성의 영역에 매진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사진이 등장했다고 회화가 죽지는 않았습니다. 외려 회화는 정확한 기계적 모사의 과제를 카메라에 맡기고, 기계가 할 수 없는 더 높은 창조의 단계로 비약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 회화는 바로 그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이제 예술업계는 AI를 사용한 창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에 관한 아이디어는 작가가 구상하고, 스케치와 채색은 AI가 담당하면 됩니다. 어떤 키워드와 내용으로 텍스트를 입력할지, 어떤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생성할지를 의도하고 떠올리는 일은 인간 고유의 영역입니다. 이렇게 생성된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세상에 무엇을 시사할 것인지도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래를 살아갈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이제 AI가 갖지 못하는 ‘창조성’이 될 것입니다. 다만 작가는 AI 이미지 선택, 디자인, 데이터 수집, 모델 학습 및 분석의 모든 과정에서 자신이 만들고 발전시키는 기술에 대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원작품의 이미지를 차용할 경우, 저작권에 대한 윤리적·법적 기준 확립을 포함한 관련 이슈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심도 있고 실효성 있는 논의를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공상소설 속에서 존재하던 AI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미래는 더 가까운 곳에 존재합니다. AI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됩니다.

<윤여선 갤러리가이아 대표 한국화랑협회 홍보이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