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세계적 건축가는 ‘한국을 좋아해’

자하 하디드·리처드 로저스 건축물 2011년 서울서 선보여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DDP 조감도

'한국에 국제적 건축 명품 어떤 것들이 있을까.’
라파엘 비뇰리, 벤 판 베르켈, 렘 쿨하우스, 이타미 준, 리카르도 레고레타, 안도 다다오…
세계적인 건축 거장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에 자신이 설계한 크고 작은 건축물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들이 한국에 남긴 건축물은 건물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품이자 언어임을 실감케 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우루과이 출신 라파엘 비뇰리는 서울 종로 한복판에 3개의 기둥이 비행접시를 떠받들고 있는 듯한 특이한 모양의 종로타워를 설계했다. 1999년 완공된 종로타워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최상층, 유리를 이용한 표면 처리 등 이채로운 모습으로 완공 이래 서울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강남 교보타워는 스위스 건축가 작품
색색의 LED조명이 4500개에 달하는 플라스틱 원반형 디스크를 통해 무려 24가지의 장면을 연출하는 서울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의 외부 디자인은 세계적인 건축가 벤 판 베르켈 등이 소속된 네덜란드의 ‘유엔스튜디오’가 했다. 건물 자체가 저해상도 스크린이 되며 특히 야간에는 시시각각 색상과 모양이 변하면서 시선을 사로잡는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은 세계 유수 건축잡지에 빼놓지 않고 언급될 만큼 유명하다. 유엔스튜디오는 현대산업개발에서 짓는 수원 아이파크 시티 설계도 맡았다. 대표적인 해외 작품으로는 독일 벤츠전시장과 일본의 루이비통 플래그쉽 스토어 등이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건축 거장 렘 쿨하우스가 소속된 OMA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서울대 미술관에 이어 요즘 서울 경희궁 앞마당에서 볼 수 있는 변신하는 건축물 프라다 트랜스포머까지 설계해 한국과 인연이 깊다. 렘 쿨하우스가 설계한 서울대 미술관은 반투명 유리에 기하학적 무늬가 겉으로 드러난 건축물로, 건물 안에 기둥이 하나도 없이 철골 H빔만으로 지탱하는 건축공법을 사용했고, 나선형 계단으로 지하 3층과 지상 3층이 통으로 트인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끊임없이 도시에 대한 철학을 사유하는 건축가로 알려진 렘 쿨하우스는 중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우뚝 선 관영 중국중앙(CC)TV 본사건물도 설계했는데, 이 건물은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가 뽑은 ‘세계 10대 건축의 기적’에 포함됐다. 200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다.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파크원 조감도

서울 강남역 부근에 두 개의 쌍둥이 빌딩으로 이루어진 교보타워는 스위스 루가노 출신의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마리오 보타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 프랑스 파리의 에브리 성당 등을 지은 건축가다. 교보타워에 대해 그는 “두 개의 벽돌 타워가 안쪽 유리 브릿지를 보호하고 있는 형태로, 이는 인간의 단단한 육체가 그 속의 심장을 보호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 인터뷰에서 설명했다. 마리오 보타는 제주 섭지코지의 억새 사이에 세워진 투명한 유리 피라미드 건축물 ‘아고라’도 남겼다. 그는 바닷가에 놓인 이 건물을 등대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마리오 보타 외에도 제주에는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존의 물 미술관, 프리츠커건축상 수상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지니어스 로사이 명상센터, 그리고 멕시코 출신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까사 델 아구아 갤러리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세계적 건축가들의 한국행은 최근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 추세다. 각각 2004년과 2007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영국 태생의 리처드 로저스도 비슷한 시기 서울 한복판에 건축물을 선보인다.

산업디자인 분야에서 지난 30년간 혁명적 실험과 연구로 국제적 주목을 받은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은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40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짓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이하 DDP)다. DDP는 총 부지면적 6만532㎡에 지하 3층~위치에 따라 지상 2~4층으로 들어서며 총 면적 8만5533㎡의 플라자와 총 면적 3만7398㎡의 공원으로 구성된다. 플라자 내부는 컨벤션홀과 디자인미래관, 디자인체험관, 도서관, 트렌드정보관, 교육관, 미디어랩이, 공원에는 디자인갤러리, 이벤트관, 동대문운동장기념과, 유물전시관 등이 들어선다.

가구와 제품 디자이너로도 유명한 론 아라드가 설계한 문신아뜰리에 조감도.

자하 하디드는 DDP 설계 제목을 ‘환유의 풍경’이라 밝혔다. 환유의 풍경이란 한국의 자연적 풍경이나 지형과 구분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건물과 공원을 만듦으로써 옛 서울의 모습을 되찾아준다는 의미다. 즉, 산과 구릉이 많고, 길도 구불구불한 한국적 특성에 맞도록 DDP를 디자인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DDP의 건물은 땅 위에 납작하게 엎드린 것 같은 모양새고, 플라자 남측에는 걸어서 올라갈 수 있는 잔디 지붕이 조성되며 북측 컨벤션홀과 전시관 상부 지붕에는 계절에 따라 색상이 변하는 세덤이란 사막 식물이 심어진다. 2011년 11월 말 완공 예정이다.

동대문운동장 재개발 ‘환유의 풍경’
리처드 로저스는 건물의 구조적 특징과 내부 설비가 밖으로 모두 드러난 파리 퐁피두센터로 유명하다. 런던의 명물 밀레니엄돔도 그의 작품이다. 그가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작품도 얼마 전 착공했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옆 통일주차장 부지에 들어서는 72층짜리 건물과 54층짜리 호텔, 그리고 가운데 쇼핑공간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인 파크원이다. 2조2000억 원을 투입해 DDP와 마찬가지로 2011년 완공될 예정이다. 72층짜리가 포함되므로 완공되면 한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된다. 리처드 로저스는 파크원을 설계하면서 “공원의 이미지를 살리는 친환경 디자인을 했다”고 밝혔다. 전력생산 방식에서 친환경 발전방식을 사용하고, 주변 지역의 열섬 효과를 줄이기 위해 지붕에 식물정원을 설치한다는 것이다. 또 72층과 53층짜리 건물은 하늘로 치솟는 느낌으로 표현되며 건물의 모서리는 투명 유리로 처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크원은 리처드 로저스와 그의 파트너들로 이루어진 건축사무소 ‘RSHP’가 설계를 맡는 것인데, 이 회사의 지분은 대표 건축가들이 가지지 않고, 자선단체가 소유하도록 정관에 명시하고 있다. 또 최고 디렉터는 급여를 가장 적게 받는 건축가의 6배를 받고, 회장인 리처드 로저스는 9배를 받도록 한 것도 이 회사의 원칙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벤 판 베르켈의 갤러리아백화점, 라파엘 비뇰리의 종로타워, 렘 쿨하우스의 서울대 미술관.

세계적인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론 아라드도 경기 양주시에 세워지는 문신아뜰리에 설계를 맡았다. 이스라엘 텔 아비브 출신의 론 아라드는 런던의 AA스쿨(런던 건축협회)에서 자하 하디드와 함께 학교를 다녔으며 1960년대 급진적 건축의 대가인 피터 쿡, 베르나르 추미 밑에서 수학했다. 지난해 가나아트센터에서 제품 디자인으로 첫 개인전을 가진 그는 같은 해 10월 파리 퐁피두센터에서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올 7월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개인전을 연다.

론 아라드의 대표적 건축물은 일본 도쿄 롯본기힐스에 위치한 요지 야마모토 스토어, 이탈리아 두오모 호텔, 텔 아비브 오페라하우스, 이스라엘의 디자인뮤지엄 홀론 등이다. 문신아뜰리에 대해 론 아라드는 “항공기에 사용되는 장엄한 캔틸레버(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식 날개의 지붕이 땅에서 솟아올라 상공에서 날고 있는 듯한 건물을 설계했다”며 “시각적으로 웅장하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광택이 있는 이 투명한 박스형 전시관은 방문객과 주의를 필요로 하는 문신의 조각작품, 그리고 그의 그림들이 한데 잘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밝혔다. 문신(1923~1995)은 1970년대부터 유럽을 중심으로 추상조각가로 명성을 날렸으며 대표작으로 현재 올림픽공원에 있는 25m 높이의 ‘올림픽의 조화’ 등이 있다.

“비싼 설계비만 챙긴다” 지적도
그렇다면 세계적 건축 거장들은 왜 이렇게 한국행을 이어가고 있는 것일까. 건축전문월간지 <컨셉>의 윤성철 편집장은 “특히 최근 3~4년 간 한국에서 대형 프로젝트가 부쩍 많이 진행되면서 해외 유명 건축가나 설계사무소에게 한국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 것”이라며 “문제는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가 디자인한 건물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기본 디자인만 잡아주고 정작 나머지 세부적 설계는 국내 설계사무소가 진행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겉모습만 그럴 듯하다고 좋은 게 아니라 구조, 전기, 기계 등을 망라하고 상황에 따라 설계 변경도 있을 수 있는 게 건축물인데, 많은 비용을 받아가는 세계적 스타 건축가들은 정작 끝까지 책임을 지는 설계를 한국에서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서울디자인재단에 따르면 자하 하디드만 해도 순수 디자인료로 136억 원을 받았다.

지자체나 민간이 마케팅 효과 등의 이유로 해외 스타 건축가의 지명도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지자, 대규모 프로젝트가 있을 때 국내 설계사무소도 수주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 유명 건축가와 손을 잡는 경우가 상당수다. 국내 대표적인 건축사무소인 DA그룹의 김현호 소장은 “국내 설계사무소가 일을 따내기 위해 해외와 손을 잡고 공모에 응하는 게 일반화되면서 설계 비용이 크게 올라갔다”며 “실제 경쟁하면 한국의 건축가들의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외국의 유명 건축가에게 프로젝트를 주는 식이 아니라 국내 건축가와 해외 건축가가 공개적으로 경쟁활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