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로봇랜드 선정의혹 ‘잡음’ 확산

예비사업자 복수 추천·평가자료 미공개·청와대 개입설 등 논란 증폭

김태호 경남지사가 11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로봇랜드 예비사업자로 경남 마산이 선정됐다고 발표하고 있다.

국책사업인 로봇랜드 선정과 관련해 ‘정치적 선정’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 홀대론’까지 나오는 등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산업자원부는 11월 13일 “로봇랜드 조성 사업 추진을 위한 예비사업자로 인천과 경남(마산)을 최종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산자부는 지난 4월 ‘로봇랜드 조성 사업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예비사업자 선정공고(4. 30)를 한 데 이어, 예비사업자추천위원회(11.6~8)와 산업발전심의회 심의(11.13)를 거쳐 예비사업자를 최종 선정했다. 이번에 예비사업자로 선정된 인천과 경남(마산)은 기획예산처 등의 예비 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2008년 5~6월 이후에 조성 사업을 착수할 예정이다. 정부가 해당 지자체에 지원하는 로봇랜드 조성 사업의 총사업비는 500억 원 이상이며, 국가 재정지원 규모는 300억 원 이상이다(뉴스메이커 744호 참조).

추천위 정부 공고 번복 결정
하지만 로봇랜드 선정과 관련해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첫째, 예비사업자에 대한 복수 추천 관련 의혹이다. 당초 산자부는 예비사업자로 1곳을 선정해 예산처에 예비 타당성 조사를 의뢰할 계획이었으나 최종 발표는 2곳을 발표했다. 산자부의 로봇랜드 조성 사업 예비사업자 선정 공고(산자부 공고 제2007-158호)에 따르면 “(선정 절차) 선정의 객관성·공정성 및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립적인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로봇랜드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의 평가와 ‘산업발전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예비사업자 1개 기관을 최종 선정한다”고 돼 있다. 이번 로봇랜드 조성 사업에는 인천·경남(마산)·대전 등 10개 지방자치단체가 예비사업계획서를 접수하는 등 경쟁이 치열했다.

산자부의 설명에 따르면 추천위는 11월 6일부터 2박 3일 동안 예비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워크숍·서류심사·프레젠테이션·평가를 진행했다. 그러나 추천위(위원장 한민구 서울대 교수)는 평가 첫날인 11월 6일 워크숍에서 1, 2위 간의 점수 차이가 2.5% 이하의 근소한 차이일 경우 복수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추천위는 평가와 평가점수를 채점하기도 전에 이미 정부의 공고를 번복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추천위의 최종 평가 결과는 1000점 만점에 1위인 인천이 929점, 2위 경남(마산)은 904.55점, 3위 대전은 848.64점이었다. 공교롭게도 1위와 2위의 점수 차이는 24.45점(2.445%)으로 근소했다. 이는 추천위에서 사전에 결정한 2.5% 안에 절묘하게 든 수치다.

“청와대 회의서 사전 결정” 주장

뉴스메이커가 단독 입수한 로봇랜드 선정 관련 제보.

이와 관련, 이진옥 대전시 경제과학국장은 “이는 입학 시험 문제 내놓고 점수가 비슷하면 둘 다 합격시키자는 것과 같다”며 “만약 이런 것이 필요했으면 사전에 10개 시도 다 모아놓고 결정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추천위원장인 한민구 서울대 교수는 “막상 평가해보니 (1, 2위 간) 점수 차이를 보고 놀랐다”며 “지자체의 로봇 관련 기술, 민간 투자 가능성, 관광객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으며 결코 외부의 압력은 없었다”고 밝혔다.

둘째, 일개 민간위원회가 정부의 방침을 바꿀 수 있느냐도 논란거리다. 산자부에 따르면 추천위원은 로봇, 경영·경제, 국토계획, 관광·레저, 미래학 5개 분야에서 150여 명의 전문가 풀을 구성해, 최종 13명을 선정했다. 이후 추천위는 워크숍과 평가 결과에 따라 산업발전심의회의(위원장 오연천 서울대 교수)에 복수 추천을 제시했다. 산업발전심의회의는 30명의 위원 중 18명이 참여해 추천위의 의견을 승인했다. 첨예한 의견 대립을 유발할 수 있는 정부 방침을 민간위원회에서 바꾸는 것은 정부정책의 신뢰성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업발전심의회의 위원장인 오연천 서울대 교수는 “추천위의 설명을 들으니까 (복수 추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런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셋째, 세부 평가 자료와 추천위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의혹을 사고 있다. 산자부는 추천위원 13명 중 위원장(한민구 서울대 교수)을 제외하고는 일체 밝히고 있지 않고 있으며, 42개 항목에 걸쳐 평가한 세부 평가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회법에 따른 국회의원의 자료 요구에도 산자부는 자료를 제출(11월 30일 현재)하지 않고 있다. 국민중심당 권선택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11월 20일 국회산업자원위 전체회의에서 관련 자료를 요구했으나 산자부에서는 어떤 자료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산자부는 “국책사업의 경우 평가위원 및 구체적 점수, 평가위원에 대해서는 평가위원 보호 및 향후 유사한 국책사업에 대한 평가위 구성의 어려움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다만 지자체의 요구가 있을 경우 직접 방문해 열람하는 방법으로 대략적 평가 결과에 한해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등 정부의 개입설도 끊이지 않는다. 권선택 의원은 제보를 근거로 “지난 10월 31일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실 회의에서 로봇랜드가 사전에 (특정지역으로) 결정됐다”고 주장했다. 뉴스메이커가 단독으로 입수한 A4 1장 분량의 제보에 따르면 ▲청와대 경제수석실 회의 내용 ▲인천·경남(마산) 결정 경위 ▲마산시장과 청와대 경제수석의 면담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10월 31일 청와대 경제수석실 회의에는 김대유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해 오영호 산자부 차관, 박항식 과학기술부 연구개발 조정관, 설정선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본부장, 김화동 기획예산처 산업재정 단장이 참석했다. 황철곤 마산시장과 김대유 청와대 경제수석은 행정고시(18회) 동기다. 하지만 오영호 차관 등 참석자들은 “로봇법(지능형 로봇개발 및 보급촉진법안)과 관련해 의견을 조율하는 자리였지 다른 것은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권선택 의원은 ‘김태호 경남지사가 로봇랜드를 마산에 들어서도록 흔쾌히 결정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깊은 뜻이 들어 있다’는 보도 내용을 예로 들며, ‘사전 내정설’을 제기했다. 이를 보도한 지역신문 기자는 “김태호 지사가 경남(마산)이 로봇랜드 예비사업자로 결정됐다는 것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로봇랜드 결정에는 정책 결정자의 의중이 담겨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며 “정책 결정자를 노무현 대통령으로 해석해서 해설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7월 25일 경남 진주에서 열린 제2단계 균형발전정책 선포식 직전, 마산을 방문해 김태호 경남지사에게 마산 발전 5개 대안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차질 없이 수행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산 발전 5개 대안은 ▲마산 구관광단지 및 로봇랜드 조성 ▲마산 회성동 일대 자족형 행정복합타운 조성 ▲거마대교 건설 ▲난포 조선산업단지 조성 ▲임해산업단지 조성 등의 대형 프로젝트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