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모님, 돌봄 재난 구원투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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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 인구구조상 이주노동자 의존 불가피

공적 돌봄 강화·이주노동자 편입 함께 논의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2차, 경제 분야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2차, 경제 분야 점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매번 뒷전에 밀렸던 돌봄노동이 최근 주요 정책 화두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유학생과 이민자 가족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지난해 말 목표로 시행하려 했던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이 늦어지면서 우회로를 택한 것이라는 해설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4일 민생토론회에서 “내국인 가사도우미와 간병인의 임금 수준은 맞벌이 부부가 감당하기에 부담이 크다”며 “국내 거주 중인 16만3000명의 외국인 유학생과 3만9000명의 결혼 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그러면 가정 내 (사적) 고용으로 최저임금 제한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활용해 돌봄 업계에서 외국인을 최저임금 미만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법무부와 고용노동부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앞서 지난달에는 한국은행이 외국인 돌봄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윤 대통령이 2025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사실상 ‘지침’을 줬으며 차별적이고 반인권적인 방법으로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돌봄 시장의 인력난이 심해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문턱을 낮춰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선택권을 넓혀주려는 취지”라며 “최저임금 미만을 강제하는 게 아닌 만큼 서비스 가격은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노동부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을 위해 국내에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송출국가인 필리핀과 논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논의는 지난해 5월 윤 대통령의 주문으로 본격화했다. 이어 서울시와 정부가 협의해 지난해 말 100명을 도입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했으나, 임금 등 문제로 협의가 진척되지 않아 해를 넘겼다. 노동부 관계자는 “(협의가) 거의 끝나 조만간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발표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 한은 “돌봄서비스, 공적 확대는 재정 부담”

필리핀 가사노동자가 서비스 제공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한국에 오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한국 노동자와 같은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그런데 가사사용인(개별 가정에 직접 고용된 가사도우미)은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대상이다. 윤 대통령이 제안한 대로 가정 내 외국인 노동자를 사적으로 고용하면 최저임금 등 근기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번 논란은 한국은행이 지난달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돌봄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낮게 설정하자고 제안하면서 불이 붙었다. 한은은 요양병원 등에서 개인 간병인을 고용하면 월 370만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65세 이상 고령 가구 중위소득의 1.7배, 40~50대 가구 소득의 60%를 웃돈다. 육아도우미 비용(264만원)도 30대 가구 중위소득의 50%를 넘어섰다.

돌봄서비스 공급은 좀처럼 늘지 않는 데 수요는 급속한 고령화로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19%를 차지해 내년이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돌봄서비스 인력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명에서 2032년 38만~71만명, 2042년 61만~155만명으로 많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돌봄 인력 부족에 대한 한은의 문제의식에는 전문가 대부분이 동의한다. 한은 보고서 외에도 미래 돌봄 수요의 폭증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돌봄노동을 ‘저생산 노동’으로 정의하고, 공적 돌봄서비스 확대가 ‘재정 부담 증가를 가중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이에 따라 “타 산업에 비해 돌봄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반영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중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낸다.

돌봄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은이 제시한 방식은 외국인 노동자의 사적 계약과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다.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면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는 2022년부터 시행 중인 가사근로자법 취지와 배치된다. 가사근로자법은 정부로부터 인증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인증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노동자에게 최저임금과 사회보험 등을 보장하는 법으로 현재 극소수만 적용을 받고 있다.

■ 인구 감소 역습 몰려오는데 ‘저임금’ 논의만

간병인의 노동환경은 가사노동자보다 열악하다. 지난해 기준 간병인이 하루 24시간 일해 받는 일당은 평균 12만원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5000원이다. 대다수 간병인은 알선업체에 소속돼 일을 받으면서도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다. 감염병 전염 가능성도 크고, 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를 적용받지 못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일하다 보니 성추행 등의 폭력을 겪는 일도 빈번하다. 석션(가래 제거)은 의료법상 의료인이 해야 하지만 ‘업계 관행’이라며 간병인이 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병인 중 60% 이상이 중국동포다. 유사한 직종인 요양보호사도 자격증 보유자가 250만명에 달하지만 실제 일하는 사람은 60만명이 채 안 된다. 한은과 정부는 왜 돌봄노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떠나는지에 대해선 외면하고, 오직 비용으로만 접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한은이 제시한 모델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며 국내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숙식을 별도로 제공한다. 또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으로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늘었지만 출생률은 올라가지 않아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한국에 이미 정착해 사는 이주노동자와 가족, 돌봄노동에 대한 낙인 효과를 줄 수 있다.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시범사업 저지 공동행동’은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발언은 여러 층위의 차별을 조장하는 명백한 혐오 발언”이라며 “이주 가사·돌봄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내뱉을 말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이주 가사·돌봄노동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발언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이 지난 4월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이주 가사·돌봄노동 최저임금 차등 적용 발언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들과 당사자들은 정부가 논의의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돌봄노동이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공공적 특수성이 있는 점을 감안해 사회적 해법부터 먼저 찾아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저출생에 따른 생산인구 부족과 급격한 고령화 등을 고려하면 돌봄서비스 영역을 이주노동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은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면서도 “돌봄노동은 질을 높여 중요한 사회서비스 분야로 자리 잡게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와 한은은) 사적인 문제로 치환해 사회적 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안 좋은 방식을 택했다”고 지적했다.

■ “저출생 고령화·이주노동자 정책 함께 논의 해야”

저출생과 고령화, 이주노동자 문제를 함께 묶어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이상헌 국장은 “선진국이 경험했듯 인구 구조상 내국인 노동자들로 돌봄노동을 모두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국도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내 돌봄 시장을 전문적인 직업으로 활성화하는 것과 동시에 이주노동자가 해당 시스템 안에 정착할 수 있도록 큰 틀의 정책 논의가 시급하다”고 했다. 공적 돌봄을 강화하는 것과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배타적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당부이기도 하다.

최영미 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서비스지부장도 이주노동자 인력 수급에 대한 논의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지부장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 등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당사자인 내국 노동자들과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부가 돌봄노동을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서 필요한 외국인 인력 수급을 추계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6년간 부모님 간병 돌봄을 하다가 시민운동(간병시민연대)에 뛰어든 김인규씨(49)는 돌봄노동을 평가절하하는 정부를 향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돌봄을 위한 각종 공적 시스템이 파편적으로 운영되고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는 걸 방치한 채 값싼 노동력으로 사회적 돌봄을 가정에 떠넘기고 있다”며 “공적 서비스를 비용으로 접근하면 간병 문제는 앞으로 돌봄 재난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간병 파산, 간병 살인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간병 돌봄은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 모두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재원 조달 계획은 내놓지 못했다. 간병비 급여화 관련 법안도 발의됐지만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정부가 지원하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간호사가 간호조무사, 보조인력 등과 팀을 이뤄 간호·간병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는 제한적으로 운영돼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김인규씨는 2019년 어머니가 생을 마감하기까지 6년 동안 부모님을 간병했다. 김씨는 정부에 이런 당부를 남겼다. “외국인 데려와 시장가격을 낮춰줄 테니, 개별적으로 알아서 돌봄 문제를 해결하라는 현 정부의 방식으로는 간병 살인 같은 사회적 재난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공적 시스템에 대한 논의 없이 비용을 깎는 것만으로는 국민이 바라는 질 좋은 돌봄도, 지속 가능한 사회도 불가능합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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