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보다 가족의 의무 우선…법이 변화한 사회 관점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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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종언 변호사 “구하라법은 상속제도 이전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 묻는 법”

구하라씨 유족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던 노종언 변호사가 지난 3월 1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구하라씨 유족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던 노종언 변호사가 지난 3월 1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법률은 그 결과만을 고려해 만드는 게 아니다. 법에 내포된 이념도 중요하다. 법 제정의 배경이 되는 국민적 공감대가 반영돼야 한다.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가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이 법을 통해 드러내야 한다.”

노종언 변호사(46·법무법인 존재)는 2019년 11월 세상을 떠난 구하라씨의 유족을 대리했다. 20년 전에 집을 나간 구씨의 친모가 갑자기 나타나 상속재산을 챙긴 상황을 모두 지켜봤다. 노 변호사는 2020년 3월 민법을 개정해 달라는 취지의 입법청원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권을 배제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청원은 충족 동의인원 10만명(현재 기준은 5만명)을 채웠다.

그는 “혈연이라고 해서 무조건 권리를 가지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서 기본 의무를 이행해야 권리도 인정한다는 방향으로 인식이 변하고 있다”라며 “그러나 현행 민법은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사회의 보편적 정의와 상식을 구현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 들어서도 여야 의원과 정부가 민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4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부양의무 위반을 결격사유에 추가하는 방안과 법원의 선고를 통해 상속권을 상실케 하는 방안이 대립하고 있다. 노 변호사는 “국회 통과가 지연되는 사이에도 안타까운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라며 “국회가 조율을 통해 조속히 처리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 3월 11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노 변호사를 만났다.

“어리고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에 없었던 부모가 자녀의 불행한 죽음을 계기로 돈 달라고 쫓아오는 상황은 지옥 그 자체…. 부양의무 위반 즉시 자격을 박탈하는 상속결격제도 채택으로 ‘핏줄이 다가 아니다’라는 메시지 줘야.”

-구하라씨와 비슷한 일을 당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종종 있나.

“상당히 많다. 대부분 보험을 들지 않나. 젊은 나이에 사망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엄마나 아빠가 등장해 법정 상속권자라면서 보험금을 요구한다. 하지만 소송까지 가지는 못한다. 현행 법제 아래에서는 승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기본적으로 소급 입법이 금지되기 때문에 민법이 개정돼도 그 전에 발생한 일은 보호받을 수 없다. 하루빨리 법이 개정돼야 하는 이유다.”

-어릴 때 자녀를 두고 떠난 부모가 상속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이론적으로 부모가 상속을 포기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그런데 자식을 버렸던 부모에게 상속 포기라는 책임감을 기대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어리고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에 없었던 부모가 자녀의 불행한 죽음을 계기로 돈을 달라고 쫓아오는 상황은 피해자들에겐 지옥 그 자체다. 유족들은 이게 과연 정의인가, 상식인가, 인륜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유족들 처지에선 이런 부모를 가족으로 여길 수 없겠다.

“그렇다. 구하라씨 사건은 단순히 상속자격에 관련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법이 과연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가,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을 묻는 것이다. 가족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1960년대 산업화 시절 이전의 가족형태를 기초로 한다. 현재까지 큰 틀의 변화가 거의 없다.”

-국회에서 민법 개정안을 논의 중인데, ‘결격사유’와 ‘상실선고’ 방안을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차이는 무엇인가.

“상속결격제도는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행위가 발생한 시점에 상속권자로서 자격을 잃게 한다. 기본적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을 필요가 없이 자동으로 상속권은 ‘무효’가 된다. 반면 상실선고제도는 부양의무를 하지 않았다고 해도, 일단은 상속권을 인정한 상태에서 법원의 판단을 거쳐 상속권을 ‘취소’한다. 다만 결격사유가 담긴 법안 중에는 필요하면 법원이 결격사유를 확인할 수 있게 한 내용도 있다. 그러면 두 방안이 실무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상속을 받지 못하는 효과는 동일한가.

“기술적인 측면에서 결과만 놓고 보면 법적 효과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 그러나 법은 기술적이고 결과만 생각하면 안 된다. 법에 내포된 이념도 중요하다. 법을 만들거나 바꾸는 이유, 즉 가족을 바라보는 변화된 우리의 관점을 법을 통해서 현출하는 것이다.”

-이념적인 차이를 설명하자면.

“본질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차이점이다. 우선 상속결격제도는 자식을 버리고 떠나면 당연히 가족으로서 자격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형식적인 혈연관계보다 가족으로서 실질적인 도리와 의무를 다했는지를 중시하는 관점이다. 그래서 시대 변화에 따른 보편적 상식과 정의에 더 부합한다고 본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도 상속결격제도를 지지한다. 반면 상실선고제도는 일단 핏줄이기 때문에 가족의 자격은 유지한 채로 시작한다. 피상속인 등이 법원에 부모의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면, 법원이 선고한 시점에 상속권을 잃도록 예외를 두는 방안이다. 가치관의 출발점이 다르다.”

-상실선고제도가 더 법적 안정성이 있다는 평가도 있는데.

“상실선고제도는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해서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는 더 우월하고 타당성은 있다. 법적 안정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하지만 법은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정서와 시대정신을 담고 있어야 한다. 법은 공동체의 기본 원칙이고, 국민이 가진 이념과 사상을 규율화한 게 법이다. 이 때문에 부양의무 위반 즉시 자격을 박탈하는 상속결격제도가 정의와 상식의 관점에서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상속결격제도는 경고 효과가 있다. 상속결격제도를 도입하면, 민법은 자식을 버리고 떠나면 상속자격 자체가 없는 것으로 규정하게 된다. ‘피가 섞였다고 다 가족은 아니다’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메시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상속제도 중에서 상속인에게 의무적으로 할당해야 하는 몫을 규정하는 유류분제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유류분제도도 가족의 진정한 의미 문제와 맥이 닿아 있다. 자유주의를 중시하는 영미법은 기본적으로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고인이 생전 재산을 누구한테 상속하거나 증여하던지 간에 국가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유류분제도는 유족의 생계를 최소한도로 보호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는데, 이런 측면에서 직계존비속의 유류분은 존속시키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형제자매 유류분은 폐지하는 게 맞다. 과거 동족촌이나 대가족 사회에선 형제자매도 교류가 많았겠지만, 지금은 결혼하면 자주 볼 일이 없지 않나.”

-변화하는 가족관계에 발맞춰 개선해야 할 다른 제도는 뭐가 있을지.

“사실혼 배우자의 상속권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혼 배우자가 이혼했을 때는 재산분할 청구권을 인정하지만, 상속권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인과 함께 20~30년을 살면서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가족은 사실혼 배우자다. 그런데 고인과 연락도 없이 지내던 형제자매가 나타나 고인의 재산을 가져가는 일이 발생한다. 이는 상식과 형평에 반한다. 그리고 형법상 친족상도례 제도도 폐지해야 한다. 친족 간 벌어진 횡령, 배임, 사기, 절도, 권리행사방해 등은 처벌할 수 없다. 그런데 존속살해는 일반살인죄보다 더 엄중하게 처벌하면서 친족 사이 재산범죄는 형을 면제하는 게 옳은가. 돈은 생계 등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오히려 친족 간의 재산범죄는 은밀하고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고, 가해자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범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가중해 처벌해야 한다. 적어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범죄는 친족상도례에서 제외해야 한다. 친족 간 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것도 개선해야 한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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