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의사·환자 떠나고 적자만 남아…정부, 찔끔 지원하고 또 ‘역할’ 떠넘겨
“이런 상황이 너무나 원망스러워요.”
지난 2월 27일 오전 11시 서울시 보라매병원, 보호자 A씨는 응급실로 급히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지쳐 보였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을 경험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그는 대답할 겨를이 없다는 듯 걸음을 재촉했다. 재차 묻자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맞아요. 우리도 그 피해자예요”라고 했다.
A씨는 백혈병으로 쓰러진 가족을 데리고 지난 2월 25일 보라매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원래 백혈병 치료를 받던 병원은 따로 있었다. 소위 ‘빅 5(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라 불리는 상급종합병원. 그러나 중환자실도, 응급실도 환자를 받을 여력이 없다고 했다. A씨는 “의료 대란 때문이라고, 의사가 없다고 하더라고요”라고 했다. 급한 대로 보라매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 응급실은 응급처치를 목적으로 하는 까닭에 특정 환자가 오래 머물 수 없다. 응급실에서는 2월 26일부터 A씨에게 병상을 비워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라도 입원하길 원했다. 그는 “여기도 중환자실 입원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특실이든, 1인실이든 상관없으니 입원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보라매병원은 “해당 환자는 골수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보라매병원이 골수이식을 할 수가 없어 입원 절차를 밟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전공의 이탈 사태와 무관한, 제공할 수 없는 의료서비스였다는 것이다.
원래 치료를 받던 병원에 다시 연락해 입원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A씨는 환자를 데리고 원래 치료를 받던 병원의 응급실로 일단 가기로 했다. 병상이 없다지만 기다리다 보면 자리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 A씨는 “(보라매병원 측이) 다른 병원 응급실로 가려면 자진 퇴원확인서를 써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거 떼서 오는 길이에요. 사람이 쓰러져서, 급박한 상태로 왔어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원망스러워요. 더 말 못 하겠어요”라고 말하고는 급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하죠” 응급실 찾기 난항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전공의들이 집단사직을 하면서 발생한 의료 공백을 가까스로 메우고 있는 공공병원 한켠에서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균열 수준으로 막아내고 있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의료 대란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응급실을 쉬이 찾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오후 3시 무렵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의 권역응급센터 일반병상은 모두 차 있었다(응급의료포털 참고). 오후 들어 한산해진 외래 진료 접수창구와 대조를 이뤘다. 이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10여개 진료과의 오전 외래 진료 접수는 창구를 연지 3시간 만인 오전 10시 무렵 모두 마감됐다.
B씨는 저혈압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가족과 함께 서울의료원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 대란 우려를 알고 있었기에 병원을 찾기 전 119에 연락해 주변 병원 응급실 이용이 가능한지 물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B씨 가족에게 가장 가까운 병원은 같은 노원구에 있는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과 노원을지대학교병원이었다. 그러나 두 병원 모두 응급실에 환자를 받을 여력은 없다고 했다. 결국 B씨는 구급대를 불러 서울의료원을 찾았다.
소방 당국에는 내원이 가능한 응급실을 찾아달라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소방청은 지난 2월 16일부터 26일 사이 구급상황관리센터가 ‘병원을 찾아달라’는 구급대원의 요구에 병원을 지정해준 건수가 66건으로 전년 동월보다 73.7% 증가했다고 밝혔다. 평상시라면 시민들의 문의를 받은 구급대원이 자체적으로 병원을 찾아주지만, 응급실 이용이 어려운 병원이 늘어나면서 구급대원들도 쉽게 답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경기도 양주에 사는 C씨는 지난 2월 26일 폐렴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의료원 응급실을 찾았다. 앞서 아버지는 ‘상급병원으로 가보라’는 진단을 받았고, 다른 종합병원에 진료 날짜를 잡아둔 상태였다. 그런데 이날 갑자기 호흡곤란 증상을 보였다. 큰 병원은 응급실 이용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2차 의료기관 위주로 알아봤다. 다행히 서울의료원이 환자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C씨는 이런 상황이 길어지진 않을지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게 C씨의 건강도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4일 C씨는 갑작스레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출동한 119 구급대원이 대형병원 응급실은 이용이 어렵다며 경기도 양평의 양평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부정맥이 의심됐는데도 심장질환을 다루는 진료과가 없는 양평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C씨의 보호자가 다른 병원으로 갈 수 없는지 물었는데 ‘사설 구급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C씨는 현재 집 근처 병원에서 정확한 병명 진단을 위한 검사를 받고 있다. C씨는 “(의료 대란으로) 지금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흡곤란이나 위험한 상황이 또 발생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이런 일 겪을 줄 몰랐는데, 갑자기 병원들도 이렇게 되고…”라고 했다.
위기 때만 소방수로 투입되는 공공병원
정부는 지난 2월 23일 보건의료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공공의료기관 가동을 최대치로 올리겠다고 했다. 공공병원들은 평일 외래 진료시간을 연장하는 한편, 주말·휴일에도 진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공공병원이 최후 저지선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점증할 환자들의 수요를 앞으로 얼마나 더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단 국내 의료체계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부터가 작다. 기관 수 기준으로 전체 의료기관의 5%에 불과하고, 병상 수 기준으로는 약 10%에 그친다. 코로나19 유행기를 거치면서 공공병원들의 ‘기초체력’이 약화되기도 했다. 공공병원들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2년 넘게 코로나19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됐다. 병상 상당수가 코로나19 환자용으로 전환되니, 일반 환자도, 의료 인력도 떠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료원과 보라매·동부·서남·은평병원 등 시립 공공병원 5곳에 근무하는 의사는 743명으로 정원(846명)보다 100명 이상 부족하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공공병원 의료진은 더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립 공공병원 전공의 총 240여명 중 70%가량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전공의 이탈 후 남겨진 의료진들의 업무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호 보라매병원 간호사는 “기존에도 의사 수 부족으로 의사들의 업무 일부를 간호사가 담당해왔다. 이번 사태로 간호사 업무 부담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환자 몸에 삽입한 관을 제거하는 일을 간호사에게 맡긴다든가, 객담검사 시 채취한 가래를 처치하는 업무도 간호사에게 맡기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불안이나 불편이 가중될 수 있고, 간호사들 입장에서는 ‘실수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가 벌어지면 누가 책임질 수 있나”라고 했다. 서울시는 전공의 공백이 큰 서울의료원, 보라매병원, 은평병원에 대체인력을 충원할 인건비 26억원을 긴급편성했다. 의료진 45명 충원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일단 3개월간 예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공공병원에서는 수술 일정 연기를 통보받고 황망해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 2월 26일 오전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만난 80대 남성 D씨는 “원래는 2월 19일 입원해 21일 수술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전공의라는 사람한테 전화가 왔다. 20일부터 자기들이 없으니까 수술을 어쩔 수 없이 못 한다고 하더라. 죄송하다고 그러면서. 3월 4일 입원해 3월 6일 수술하기로 다시 날짜를 잡아주긴 했는데 또 그때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D씨는 지난해 9월부터 오른손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있다. 넘어지면서 입은 부상으로 인대가 끊어져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젓가락질도 못 하니까 빨리 수술해야 하는데 3월에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D씨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의사들도 욕심이 많지만 정부도 문제가 있다. 차츰차츰 인원수를 늘리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2000명 늘린다고 하니까 의사들도 반발하는 것 아니냐. 괜히 환자들만 피해 보고 있는 것 아니냐. 나도 급하지만 나보다 더 급한 사람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겠냐”고 했다.
서울의료원에서 만난 고령의 여성 환자 E씨도 무릎 수술 날짜가 한 달 뒤인 3월 말로 미뤄졌다고 했다. 그는 “나야 좀 불편하고 마는 거지만 정말 위급한 사람들은 어떡하냐. 의사들이 강하게 나오던데 좀 타협해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기도 안산에서 온 80대 여성 환자 F씨도 지난 2월 26일 약을 받으러 서울의료원에 왔다가 의사로부터 수술이 미뤄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난해 10월에 잡아놓은 일정이었다. F씨는 “수술 날짜가 새로 잡힐 때까지 동네 병원에 다니면서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의료 대란에 코로나19 때의 혼란을 떠올렸다. F씨의 남편은 코로나19 시기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남편은 한밤에 뇌경색 증상을 보여 서울의료원을 찾았는데 수술을 해도 입원 병실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급히 여의도 한 병원을 찾았지만, 그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나야 진통제라도 맞고 견디지만 응급환자는 시간 다툴 건데 어떡할 거냐. 남편 돌아가신 지 2년 됐는데, 그 상처도 안 가셨는데 그런 일이 또 나오게 생겼다”고 했다.
“정부가 아쉬울 때만 공공병원을 찾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태는 의사 인력 부족으로 지방 필수의료체계 붕괴가 가시화한 것이 원인이다. 지역거점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별 의료체계가 갖춰졌더라면 우려의 상당 부분은 불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에 최전선에 투입된 공공병원들이 그 후유증으로 막대한 적자를 떠안았음에도 정부의 지원은 충분치 않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22년 4월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던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실적을 회복하는 데 4.3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다. 코로나19 기간 이들 병원에 발길을 끊은 환자들이 돌아오고 경영이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손실보상금 지원은 6개월 만에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나백주 을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2년 넘게 진행되면서 환자도 떠나고 수술하는 의사들도 공공병원을 떠났다. 2022년 말부터 일반병상을 받기 시작했지만, 새로 개업한 수준이라 환자들도 잘 오지 않았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정부는 크게 신경도 쓰지 않다가 또 위기상황이 오니까 공공병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율배반적이다. 공공병원을 제대로 갖춰놓는 것이 이번 사태의 해법일 수 있다. 5%에 불과한 공공병원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 공공병원은 비교적 옛날 장비와 전통적으로 해왔던 의료 기술을 사용하지만, 치료 성적 자체는 민간병원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의료비 부담이 적어 환자의 선택폭을 다양화할 수 있고, 민간병원의 신기술 도입에 의한 의료비 상승을 견제할 수 있다. 다시 이런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공공병원이 재난상황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면 정부의 협상력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의사를 양성할 공공의대를 만들어 인력을 수급해야 한다. 동네 병·의원 등 1차 의료기관을 활성화하고, 종합병원 등 2차 의료기관은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