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다리] 몸과 잘 지내고 계시나요?

드래그 아티스트이자 트랜스 여성으로 정체화한 호소가 지난해 12월 23일 드래그 공연 전 분장을 하고 있다. 그는 “트랜스젠더가 주변에 존재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며 “트랜스젠더들이 각자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유명 모델의 말이 명언으로 회자한 적이 있다. “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밖에 없더라고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을 게을리한 자신을 자책했다. 두 달여간 몸에 얽힌 이야기를 취재하면서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명제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정말 몸은 자신의 마음대로 될까?

기획 ‘내 몸과 잘살고 있습니다’는 여태껏 해왔던 취재 가운데 어려운 축에 속했다. 기사에 모든 몸을 포괄할 수 없을 뿐더러 몸 자체가 워낙 개별적이라 이를 유형화하는 것이 가능할지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몸에 관한 이야기를 펼친 건 몸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적 영역이기도 해서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기업 정규직만큼 건강 관리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할 수 있을까. 같은 살찐 몸이어도 성별, 연령 등에 따라 돌아오는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어떠한 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극복 서사만이 요구돼온 몸들도 있다. 사회가 표준으로 설정한 몸이 청년층, 비장애인, 중산층, 시스젠더, 대중매체가 부각한 몸 등으로 협소해서다. 사회적 기준, ‘표준’에서 벗어난 여러 몸을 조명했다. 5회차에 걸쳐 나이 든 몸, 살찐 몸, 장애가 있는 몸, 아픈 몸, 트랜스젠더의 몸을 다뤘다.

몸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 주저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이야기는 차별과 배제, 이로 인한 자기혐오, 이후 적응 과정을 거치며 자기 몸을 수용하고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삶으로 뻗어 나갔다. 기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은 배제된 몸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몸이 뒤섞일 때, 특정한 몸을 타자화하는 사회 장벽이 점차 허물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물리쳐야 하는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함께 살아가되 이에 잠식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할 때, 몸과의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나의 몸도 돌아보게 됐다. 한창 힘들었던 시기 내 몸은 스트레스가 쌓여 굳어진 상태와도 같았다. 몸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유독 기억나는 건 한 선배가 일러준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방식이다. 두 손을 교차해 날개 모양으로 만들어 심장 근처에 갖다 대 살살 토닥인다. 일상에서 자기 몸 상태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소소한 팁 같은 것이었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지인은 주변에 진단 사실을 알리며 공황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이 하는 일들을 말했다. 몸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은 자기 돌봄, 나아가 상호 돌봄의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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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어떤 환경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다른 몸이 되기도 한다. 지체장애인 조미경씨는 나이가 들면서 장애 정도가 심화하고 유형도 늘어났다. 그는 경증 장애였던 유년기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달라진 건 방에 갇힌 무료한 생활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일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의 몸을 ‘장애’로 만드는 건 사회 구조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주요국보다 엄격한 성별 정정 요건에 자신답게 사는 데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들도 마찬가지다. 소외된 몸들에 쏟아지는 차별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몸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져 사회 변화로 이뤄지길 바란다. 어떠한 몸이든 온전히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박하얀 기자 whit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