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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입양한 ‘우리 딸’ 별이 / 허진무 기자

지난해 여름 입양한 ‘우리 딸’ 별이 / 허진무 기자

지난해 여름 아내와 함께 찾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유기동물 입양 행사에서 예쁜 개를 만났다. 털이 하얗고 몸집이 작은 암컷 ‘장모(長毛) 치와와’였다. 장애견임을 한눈에 알았다. 두 뒷다리 슬개골이 완전히 빠졌고 뼈까지 심하게 휜 기형이었다. 똥이 마려운 듯한 자세로 엉금엉금 걸었다. 개가 바닥에 납작하게 주저앉아 다 포기한 듯한 눈으로 올려다보자 안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달 뒤 우리 부부는 그 개를 입양해 ‘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별이가 꼬리를 흔들며 뺨을 핥아줄 때 마음은 놀라운 온기로 덥혀진다.

내가 어렸을 때는 다들 개를 ‘애완동물’이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대부분 ‘반려동물’이라고 부른다. 동물보호법도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는 개, 고양이 등”을 반려동물이라고 규정한다. 반려동물은 ‘짝 반(伴)’에 ‘짝 여(侶)’를 써 ‘삶을 함께하는 동물’, 애완동물은 ‘사랑 애(愛)’에 ‘희롱할 완(玩)’을 써 ‘귀여워하며 데리고 노는 동물’이라는 뜻이다. ‘반려’는 대등한 관계, ‘애완’은 종속된 관계가 담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려동물이 일상어이자 법률용어로 자리 잡은 만큼 기사에 그렇게 적지만, 사실 나는 인간과 개의 실존적 관계가 반려가 맞는지 애완이 맞는지 혼란스럽다. 인간은 개에게 반려의 복지를 제공하면서 애완의 질서로 편입시켰다. 개는 야생의 본능을 잃고 인간 문명에 종속돼 생활한다. 별이는 중성화 수술을 받아 발정기가 사라졌다. 목줄을 차고 정해진 길을 산책한다. 똥오줌은 반드시 배변 패드에 싼다. 나는 별이의 조용함, 온순함, 깔끔함을 칭찬하지만 사실 이것들은 지극히 인간 입장에서의 덕목들이다.

많은 반려인 가족처럼 우리 부부도 별이를 ‘딸’이라고 부른다. 이런 의인화(擬人化)가 인간이 동물에 대해 책임지는 방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최근 별이는 다리 수술을 받았다. 수술에 소형차 한 대 값이 들었지만 아깝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별이 밥부터 챙긴다. 두 가지 사료를 따뜻한 물에 불린 뒤 알약을 넣어준다. 밥을 다 먹으면 강아지용 츄르에 가루약을 섞어준다. 뒷다리를 일으켜 세우는 재활 운동도 빼먹지 않는다.

별이를 키우며 개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됐다. 얼마 전 아내가 “지금도 개고기를 먹을 수 있어?” 물었을 때 ‘이제 못 먹겠구나’ 깨달았다. 별이뿐 아니라 개라는 종(種)을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사랑을 타인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이해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양고기를 먹어도 개고기만은 먹지 말아야 문명국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는 인간 가정의 구성원으로 급속히 편입되는 중이다. 개고기를 먹을 수 없는 인간이 점점 많아지리라는 건 자명해 보인다.

지난달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별이 다리뼈가 잘 붙고 있는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동물병원은 ‘개딸’, ‘개아들’, ‘개손녀’, ‘개손자’를 데려온 ‘개엄마’, ‘개아빠’, ‘개할머니’, ‘개할아버지’로 초만원이었다. 어느 개엄마가 별이를 보며 “요정처럼 예쁘다”고 칭찬해 줬다. 개아빠인 나는 “우리 아이는요” 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허진무 문화부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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