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대책위 대변인 김성주 변호사
“업계, 영구적·포괄적 사업화 거부 합의를”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 이우영 작가의 죽음이 던진 충격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이 작가의 죽음은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한 계약 때문으로 알려지며 당장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 같았다. 하지만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비판 정서에 올라타 마구잡이로 쏟아낸 대안들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표준계약서’에 대해서는 만화·웹툰 작가들부터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추진 과정이 온통 ‘비밀’이었다는 점, 정작 계약서를 적용받는 만화·웹툰 작가들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이 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가 지난 4월 17일 서울 강남역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조태형 기자
<검정고무신> 사태가 알려진 후 진상과 부합하지도 않는 ‘매절계약’ 비판에 한 세월, 죽음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목된 형설출판그룹을 욕하는 데 또 한 세월을 쏟았다. 불분명한 표적을 향해 화살을 쏘면서 정작 바뀐 건 아무것도 없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중이다. 이제라도 ‘창작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불공정한 계약의 실체는 무엇인지, 왜 작가들은 그 계약에 순순히 서명할 수밖에 없었는지’ 등의 원론적인 부분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 당사자의 주장을 번갈아가며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주간경향은 지난 1522호에서 형설출판그룹 측의 인터뷰를 실었다. ‘가해자’로 비판받는 이들은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 측이 주장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들의 인터뷰를 먼저 실은 것은 대책위의 주장은 이미 상세히 공개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형설 측이 대책위의 주장을 반박한 만큼 이제는 대책위의 재반박을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월 17일 대책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성주 변호사를 서울 강남역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날 그는 “만화·웹툰 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이런 불공정한 계약은 하지 말자는 합의부터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순진한’ 발언 같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법적·제도적 개선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언제 개선이 될지도 알 수 없다. 만화·웹툰 업계가 정말 이 작가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당장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관계자들 간 합의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실천에 옮길 수 있다.
-<검정고무신> 사업을 담당한 형설앤 측은 대책위가 밝힌 내용의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주장한다. 사업 시작 시점부터 사실과 다르다는 것인데.
“2007년 체결된 사업권 설정 계약의 주체가 형설앤이 아니라는 주장은 ‘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당시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한 것은 현재 형설앤의 장모 대표이고, 그가 소유한 개인사업체와의 계약이었다. 결국 형설앤 측이 주장하는 것은 장 대표와 회사는 별개인데 ‘왜 엮느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사업 진행 상황을 보면 결코 그렇게 볼 수 없다. <검정고무신> 관련 사업을 진행한 형설앤을 이끈 것이 장 대표이고, 형설앤과 <검정고무신>을 매개한 것도 장 대표다. 사실상 한 몸처럼 사업을 했다. 실제로 이우영 작가님에게 제기된 소송을 보면 2003년, 2004년 작품들도 있다. 이 책들은 2007년 체결된 사업권 설정 계약보다 시점적으로 이전이다. 이들은 본인들과 관련 없는 저작물에 대한 소송까지 제기하면서 저작권 관리주체가 형설앤인지, 장 대표인지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형설앤이 15년 전에는 사업을 안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작가와 상의없이 77개 사업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근거를 모르겠다’는 입장인데.
“사업 개수가 부정확하다는 것이라면 이유가 있다. 어떤 명목으로 사업을 한 것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형설앤 측에서 이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님들이 자체적으로 검색하고 파악한 것이 77개 사업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미 소송 과정에서 KBS 측에 <검정고무신> 사업 관련 내용에 대한 사실조회를 신청했고 회신 결과가 나왔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200~300개에 달하는 사업을 한 것으로 제출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것만 이 정도다.”
-이 작가에게 1200만원만 지급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수치가 정확하지 않다면 이 역시 같은 이유다. 얼마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지급한 것인지 사업자 측에 공개를 요청했지만 밝히지 않았다. 형설앤 측이 주간경향에 제시했다고 한 정산 내역서도 일부를 제외하고 작가님들은 받아본 적이 없다. 이 때문에 통장에 입금된 액수로 추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이 작가님 통장에 들어온 돈은 약 1200만원, 동생인 이우진 작가는 약 21만원 정도를 입급받았다는 것만 확인했다. 반대로 형설앤 측이 밝힌 액수가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는 우리도 모르겠다. 사업 항목이 약 200개가 넘어감에도 정확한 매출액뿐만 아니라 누가 어떤 형태의 사업을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형설앤 측은 2차 저작물인 애니메이션 사업 등에 대해 원작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상식적인 이야기로 반론 가능하다. 사업권 설정 계약이 체결된 2007년 당시, 만화 <검정고무신>은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이 만화 저작물을 활용해 돈을 벌겠다고 나선 것은 사업자들이다. 사업화가 되면 저작물 권리를 가진 작가들과 이윤을 분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작가에게 어떤 식으로 사업화를 하고, 얼마의 매출이 발생한 것인지 등의 전반적 절차를 알려줘야 한다. 계약서에 이와 관련한 문구가 있든 없든 당연한 과정이고, 작가가 갖는 정당한 권리다. 계약서에 문구가 없다는 이유로 당연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석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나아가 이 작가님 역시 무분별한 사업화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차례 정산 내역, 사업 방향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계약서 내용을 좀더 투명하고 공정한 방식으로 다시 쓰자고 요구했지만 형설앤 측은 거부했다. 대신 작가들의 창작행위는 막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어기고 저작권 침해 소송만 제기했다.”

지난 3월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동제작자인 이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을 마친 뒤 눈물을 닦고 있다. / 연합뉴스
-소송 관련해서는 이 작가 부모님 농장에서 <검정고무신>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며 수익활동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 침해라는 것인데.
“농장에서 상영된 애니메이션은 형설앤 측이 저작권자가 아니다. 실제로 이 사건은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리됐다. 그 이유가 형설앤과 장 대표가 애니메이션의 저작권자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사업자 측에 있다고 해도 해당 영상은 사업권 설정 계약이 체결된 2007년 이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악의적인 것 아닌가.”
-모든 논란의 근원에 <검정고무신> 저작권이 있다. 저작권이 쪼개진 과정에 작가의 동의가 있었던 것 아닌가.
“이 부분은 형설 측 주장과 생전에 이 작가님이 일관되게 주장한 부분이 다르다. 이 작가님 주장을 정리하면, 사업자 측이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가지고 사업을 하고 싶어했고 이 과정에서 창작행위는 방해하지 않겠다고 해서 동의를 해줬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업화를 하려면 자신들도 저작권자가 돼야 한다고 요구를 했고, 또 그게 당연하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저작권 등록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작가님들은 아무런 실익도 얻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업권 설정계약 때도 어떠한 금전적 대가가 없었다.”
-형설앤 측이 사업에서 손을 뗀다고 해도, 분리된 저작권 지분 문제는 별개 아닌가.
“장 대표가 저작자가 아닌데 공동저작자로서 등록한 자체가 허위등록이고 원저작자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보고 있다.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저작자는 저작물을 창작한 자여야 한다. <검정고무신> 캐릭터에 대한 창작은 사업권 설정 계약이 체결된 2007년 이전에 이미 완성됐다. 다시 말해서 장 대표는 시점적으로든 사실관계적으로든 <검정고무신> 캐릭터에 대한 저작자가 될 수 없다. 원인 없는 행위는 그 자체로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 작가가 맺은 계약은 어떤 부분이 가장 불공정하다고 보나.
“세 가지다. 하나는 사업화의 종류, 조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계약했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영구적으로 가져가는 방식의 계약을 작가에게 맺게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런 포괄적 양도 형태의 계약을 체결하면서도 해당 시점에 아무런 대가 지급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양도각서 등을 보면, 작가들이 <검정고무신>으로 어떤 창작행위도 할 수 없게 손발을 묶어 두었다. 법의 맹점을 악용해 불공정한 계약서를 만들고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묶고,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한 결과, 창작자가 죽음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작가는 왜 이 불공정한 계약에 서명했을까 의문이 남는다. 순진했다고만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
“계약환경 자체에 ‘정보 불균형’ 문제가 있다. 저작권을 구성하는 법적 용어 자체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매우 생소하다. 어떤 계약서에는 저작자라는 표현이 들어가고, 또 다른 곳에는 저작권자라는 표현이 들어간다. 또 사업권, 2차적 저작물, 양도, 부여, 행사, 이의 등 각양각색의 법률적 용어가 들어간다. 계약자가 그 의미를 하나하나 파악해 유불리를 따진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이 작가님이 사업권 설정 계약을 체결할 15년 전에는 업계에서 계약서를 쓰는 행위조차 흔치 않던 시절이다. 반면 사업자는 계약서를 만들면서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떻게 매출을 발생시키고, 또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일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 계약서를 만들어 온다. 이미 계약서에 나온 용어의 의미와 권리변동의 효과가 무엇인지 등을 알고 작가와 협상을 한다. 작가가 사업자처럼 계약상 용어 등을 다 파악해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조항을 제시하고 협상까지 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 작가님이 체결한 계약서를 보면, 법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동의하지 않았을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에 대한 정보가 없었을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표준계약서, 법 개선 등을 포함한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사실, 일률적으로 표준을 만들기는 굉장히 어렵다. 법적·제도적 부분도 분명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업계 인식을 바꾸는 일부터 선행돼야 한다. 쉽게 말해 문화콘텐츠 업계 종사자들 간에 ‘영구적이고 포괄적이면서도 어떤 대가도 없이 사업화 가능한 계약은 하지 말자’는 합의를 이루자는 말이다. 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의 비극을 전환점으로 새로운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