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성 식품 줄이고 식물성 식품 늘려야
기상이변이 지구 곳곳을 할퀴고 있다. 우리가 폭우로 홍수 피해를 입는 동안 유럽과 미국은 가뭄으로 고통받았다. 강이 말라 독일에선 라인강을 이용한 물류 운송이 제한되고, 프랑스에선 원전 가동이 중단됐다. 노르웨이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수력발전소의 수위가 줄면서 가동률이 떨어졌다. 프랑스 지롱드 지방에선 가뭄 속에 산불까지 번져 인근 국가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동아프리카 일대에선 40여년 만의 가뭄으로 농업과 목축이 큰 타격을 입었다. 내전 중인 에티오피아에선 가뭄에 이은 기근으로 반군이 휴전을 제의할 정도였다.
기후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다. 각국이 탄소중립 목표를 밝히고,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과 운송수단의 전동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방책들이지만, 한번 방출되면 대기 중에 150년 이상 머무는 이산화탄소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 효과를 체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 못지않게, 현재 대기 중에 있는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두 방향 모두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을 우리 식탁에서 찾을 수 있다. 동물성 식품의 소비를 줄이고, 식물성 식단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음식으로 지구를 구한다
온실가스의 대표 3종은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이다. 이산화탄소가 전체 온실가스의 74.4%,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각각 17.3%와 6.2%를 차지한다. 양은 작지만 메탄의 지구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34배로 강력하다. 대신 메탄의 대기 중 잔류시간은 12.4년으로 짧아 감축했을 때의 효과가 이산화탄소나 아산화질소(잔류시간 121년)보다 빠르게 나타난다. 아산화질소 역시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298배라 작은 양이라도 줄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온실가스와 축산업은 관련이 깊다. 식량 생산 과정에서 전체 온실가스의 4분의 1이 나오는데 그 안에서도 축산업이 80%를 차지한다. 메탄은 소나 양, 염소 같은 반추 동물의 소화과정에서 나오는데 2살 이상 암컷 젖소의 경우 1년에 139㎏을 배출한다.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4.73t에 달한다. 2021년 현재 전 세계에서 사육되는 소는 10억마리다. 메탄은 가축분뇨 발효과정에서도 나온다. 한해 약 1140만t의 메탄이 가축분뇨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산화질소는 가축분뇨를 처리할 때, 토양에 뿌린 축분 비료와 화학비료 등에서 나온다.
기후위기 시대에 축산업이 지금처럼 지속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를 가져오는데, 축산업이 피해를 키울 수 있다. 곡식의 3분의 1을 가축사료로 쓰는데, 여러 저개발 국가는 사람이 먹을 곡식이 없어 기아에 허덕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로 곡물 가격이 높아진 지금, 축산업은 불평등 구조를 키운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식물성 식단은 기후위기 대응에 효과적인데 건강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흔히 서구식 식단으로 변하면서 한국인의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하는데 동물성 단백질 소비가 서구식 식단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동물성 단백질에 집착하는 식습관을 버리고, 우리의 식단을 녹색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런 주장을 구체적인 근거로 설득력 있게 소개하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인 이의철 작가(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부속의원 원장)의 <기후미식>(위즈덤하우스)이다. <기후미식>은 ‘우리가 먹는 것이 지구의 미래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는 ‘기후미식(Klimagourmet)’을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식,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염두에 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동을 뜻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류에 대한 책임감 있는 음식 선택과 소비를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동물성 식단 줄여야 탄소 배출 줄인다
책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보건·건강상의 위험을 먼저 짚는다. 기온상승은 미생물의 활동을 왕성하게 만들어 상수원의 녹조현상을 심화시킨다. 최근 집중호우로 낙동강 보와 하굿둑을 개방했는데 여기 갇혀 있던 녹조가 바다로 유입되면서 부산 다대포 해수욕장이 폐쇄되기도 했다. 충북 옥천군 대청호도 녹조로 뒤덮였다. 녹조현상을 유발하는 남세균은 매우 강력한 간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틴을 비롯한 다양한 독성물질을 만들 수 있다.
녹조를 정화하려면 고도정수처리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수백억원을 들여 설치한다고 해도 지금 같은 수준에서는 처리 한계 농도를 넘기 쉽다. 그래서 저자는 기후위기가 심화되면 식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미 2022년 2월 녹조에 오염된 낙동강과 금강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한 논과 밭에서 재배한 쌀과 배추, 무에서 정자 수 감소와 난소 독성을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됐다.
녹조는 물론 바다에서 발생하는 데드존(물속 산소가 고갈된 지역)도 축산 분뇨와 관련이 깊다. 데드존을 일으키는 적조는 질소와 인이 과잉 유입되면서 식물성 플랑크톤이 과잉증식해 발생한다. 증식된 식물성 플랑크톤이 분해되면서 바닷속 산소가 고갈돼 수많은 해양 생물이 죽게 된다. 한국은 서남해 중심으로 매년 적조 현상이 반복되는데 바다의 데드존을 줄이려면 육지의 사육 가축 수를 줄여야 한다.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탄소배출량 감소만이 아니라 흡수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먹는 식단을 바꾸면 간단히 효과를 볼 수 있다. 육류와 어류 소비를 줄여 육지와 바다의 탄소흡수 능력을 보존하면 된다. 동물성 식품은 인류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단 18%만 제공하지만 농지의 77%를 사용한다. 인간을 위한 식물성 작물 재배에 쓰는 농지 면적을 23%에서 28%로 늘리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모두 충당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농지의 72%를 숲으로 되돌릴 수 있게 되고, 그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 수 있다.
어류도 남획하지 않고 섭취를 줄여야 한다. 해양에 저장되는 탄소(블루카본)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성 플랑크톤과 해초가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유기물로 변환돼 동물성 플랑크톤을 거쳐 먹이사슬을 따라 상위 동물의 양분으로 섭취된다. 이후 이들 동물의 사체와 배설물이 바다에 가라앉으면서 탄소가 퇴적된다. 이런 식으로 2011년 이후 10년간 바다가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인간이 배출한 양의 26%에 달한다. 하지만 바다의 어류를 꺼내 육지에서 죽게 하면 결국 블루카본이 대기로 방출되게 된다. 바다 바닥을 긁는 저인망어업은 해저에 저장된 이산화탄소를 꺼내 바다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을 떨어뜨린다.
이의철 원장은 통화에서 “2022년 서울에서 사람들이 홍수로 익사하는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유럽은 자동차 타이어가 녹아내릴 정도로 폭염을 겪고 있다. 누구도 예상 못 한 정도로 재앙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문제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면 탄소흡수를 증가하는 쪽의 논의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 굳이 탄소포집 같은 거창한 신기술이 필요한 게 아니라 숲을 늘리고, 바다에 더 많은 생명이 살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멸종저항 영양학’이 필요하다
이 원장은 “생명을 위협하는 비만, 심뇌혈관질환, 암, 자가면역질환, 치매 등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이 동물성 단백질을 끊는 것”이라면서 “대기 중 온실가스 감소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도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제안한다. 인간을 빠르게 살찌우는 동물성 단백질이 좋은 단백질로 추앙받지만, 사실은 건강을 해치는 잘못된 믿음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동물성 단백질이 당뇨병, 심혈관질환 발생과 사망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는 최근 20년간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0년 발표된 ‘로테르담 연구’는 탄수화물을 적게 먹고,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을수록 인슐린 저항성과 당뇨병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또 다른 로테르담 연구에선 동물성 단백질 섭취 증가로 사망위험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아미노산의 조성이 다른 식물성 단백질에선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콩류·견과류, 채소와 과일 등의 음식으로 단백질을 더 많이 섭취할수록 사망위험이 감소했다.
한국인의 녹말 음식 섭취량이 줄고, 육류 소비가 늘어나는 동안 비만과 당뇨병 유병률이 증가한 수십년간의 추세도 이를 뒷받침한다. 체중 감량을 위해 탄수화물을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리는 요즘의 다이어트는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볼 수 있다. 성장기엔 고기와 우유를 먹어야 한다는 믿음이 크지만, 과속 성장은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초경 연령을 낮추면서 여성호르몬 노출 시기가 길어져 유방암을 비롯한 여성호르몬 관련 질환을 겪을 위험성도 커진다.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할 이유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선 ‘고기만이 고기를 만든다’는 믿음에서 고기 중심 정책을 펼쳤고, 덴마크는 오히려 동물성 단백질을 적게 섭취하고 통곡물 위주로 먹는 것이 최고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전쟁으로 국경이 봉쇄돼 식량위기가 커지는 속에서도 독일은 군인과 육체 노동자들에게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민간에 돌아갈 곡식을 사료로 사용했고, 그 결과 40만~70만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숨졌다.
반면 통곡물 중심 정책을 편 덴마크에서는 1917~1918년 식량위기 상황임에도 사망률이 이전 17년간 평균보다 34%나 감소했고, 당뇨병은 아예 사라졌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과 덴마크의 경험은 식량위기 시기에 동물성 단백질에 대한 집착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내려놓지 못하면 수십,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기아로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고 이 원장은 설명했다. 기후위기로 인해 식량위기가 예상되는 지금 시점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기후미식은 ‘멸종저항 영양학’ 논의로 이어진다. “지금처럼 전체 농지의 77%를 인간이 아닌 가축을 위해 사용하고, 곡물 대부분을 인간이 아닌 가축에게 먹이는 관행을 정당화하는 영양학은 인류의 멸망을 촉진하는 영양학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식량위기 시대에 걸맞게 영양학도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영양학적으로 부족하지 않게 먹으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식이 관행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영양학이 필요하다. 인류가 멸종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도록 돕는 영양학, 우리는 이 영양학을 ‘멸종저항 영양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기후미식> 중)
기후악당에서 기후미식 선도국으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는 2019년 8월 ‘기후변화와 토지’라는 특별보고서를 발표했다. 전 세계 모든 인류가 고기, 생선, 달걀, 우유 등 동물성 식품을 전혀 섭취하지 않고 식단을 순(純)식물성으로 바꾸면 2050년까지 매년 약 80억t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8년 배출한 전체 온실가스는 459억t인데 그중 17.4%를 순식물성 식단으로 바꿔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운송수단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는 16.2%다.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것보다 식단을 순식물성으로 바꾸는 효과가 크다. 특히 사는 곳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나는 곡물과 제철 과일, 채소를 최소한으로 조리해 먹는 순식물성 식단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미 일부 국가는 기후미식의 관점을 국가 식이지침과 교육과정에 반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영양센터는 2016년 육류 섭취를 일주일에 최대 2회 500g 미만으로 제한하는 식이지침을 발표했다. 붉은 육류는 일주일에 최대 300g으로 제한하고, 달걀은 일주일에 최대 3개 150g, 어류는 일주일에 1회 125g, 유제품은 하루 2~3회를 권고했다. 대신 견과류, 콩류 등 식물성 식품 위주로 단백질을 섭취할 것을 권했다. 네덜란드 교육부는 2018년 교육부 주관 모든 행사의 만찬에 채식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고기와 해산물은 요청 시에만 제공하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시(市)도 똑같은 선언을 했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회간담회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식물 단백질로의 전환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주요 이행 방안의 하나로 꼽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낙농 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캐나다도 2019년 발표한 식이지침에서 인간의 식품 선택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단백질 섭취를 식물성 위주로 할 것을 권했다. 포르투갈 의회는 2017년 국가의료기관, 요양시설, 초중등 교육기관, 대학교와 사회복지시설, 교도소 등의 구내식당에서 영양학적으로 잘 갖춰진 순식물성 식단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안을 제정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채식을 기본으로’ 운동이 활발하다. 행사에 제공하는 식사의 기본값을 순식물성으로 하면서 육류나 해산물 옵션을 제공하고, 뷔페 식사일 경우 순식물성 음식을 전면에 배치하고, 동물성 음식보다 3배 많이 제공할 것을 제안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음식물의 3분의 1이 버려진다. 버려진 음식물을 생산하는 데 중국 전체 면적 정도의 농지가 필요하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8%가 여기서 나온다. 채식을 기본으로 하면 음식 쓰레기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채식 김밥을 기본으로 하고, 추가로 돈을 내면 고기나 어묵, 달걀을 넣어주는 식이다.
각국에서 기후미식이 새로운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아직 한국은 잠잠하다. 한국은 2020년 12월 발표한 식이지침에서도 동물 단백질 섭취를 우선으로 권하고 있다. 동물 단백질을 섭취할 때 당뇨병 발병 위험성이 커진다는 연구결과를 처음 인용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이긴 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으로 조롱받는 한국으로선 더 분발해야 한다. 한국은 기후미식 국가로서의 잠재력이 크다. 김치와 나물, 쌈 문화를 가진 식물성 위주의 한식 전통에 상상력을 더하면 된다.
요즘처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진 상황을 잘 이용하면 ‘K자연식물식’으로 기후미식을 선도하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이의철 원장은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한식 박람회가 열렸는데, 한 참가자가 비빔밥 재료만 조금씩 바꾸면 한 달 동안이라도 먹겠다고 말한 걸 들었다. 들어가는 재료만 조금 바꾸면 굉장히 다양한 비빔밥이 가능하다. 이미 채식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은 비트 김치나 양배추 김치, 브로콜리 김치 등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순식물성 김치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기후미식을 실천하는 이들이 늘면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펴기도 쉽다. 탄소중립에 우호적인 정치적 지지 세력을 키우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이 원장은 “기후미식이나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굉장한 불편을 초래하는 정책도 기꺼이 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기업은 소비자, 정부는 국민의 눈치를 보는데 기후미식을 실천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정부나 기업도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시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