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사퇴·정책 폐기 ‘상처뿐인 학제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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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사회적 비용 치르고 원래의 길로 돌아간 셈

폭풍 같은 열흘이었다. 예고없이 돌출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고, 운을 띄운 교육부 장관이 사퇴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에 ‘아마추어리즘’의 그림자는 한층 짙어졌고, 국정 철학이 부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보다 커졌다. 정책 추진의 배경은 무엇인지, 그간 입장차를 보이던 이해관계자들이 왜 한목소리로 반대했는지, 남은 쟁점은 무엇인지를 되짚어 봤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 추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 추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 문재원 기자

교육정책은 100 대 0이 없다. 정책의 영향이 광범위한데다 이해관계도 난마처럼 얽혀 모두가 찬성하는 정책, 모두가 반대하는 정책을 좀처럼 찾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 어려운 것을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해냈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29일 윤 대통령에게 첫 업무보고를 하면서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현행 만 6세에서 만 5세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향은 즉각적이었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정책 철회”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다. 이해당사자인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물론, 초등학교 교사들도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이 학생·학부모·교원 13만명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설문에서는 97.9%가 이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위를 시민 전반으로 넓힌 여론조사에서는 76.8%가 반대 의견을 냈다(TBS·한국사회여론연구소 8월 8일 여론조사).

과정 없는 정책에 여론 폭발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정책의 옳고 그름은 둘째 문제고 정책 추진 과정이 잘못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접근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낸 송현석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일반적인 정책 결정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육정책은 보통 3년 예고제를 한다. 정책 대상자, 이해관계자가 많으니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먼저 교육부 내부 논의를 거친다. 이 정도 규모 정책이면 대통령보고 전에 수차례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 시민들을 설득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유치원부터 초·중등교육 정책을 수행하는 시·도 교육청의 의견도 수렴해야 한다. 국회와 당정 협의를 하고, 교원단체 등 이해관계자 의견도 청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던진다?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것.”

이번 정책은 과정 상당수가 생략됐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 8월 4일 국회 토론회에서 “저를 비롯한 17개 시·도 교육감들은 언론보도를 보고야 취학연령 하향 학제개편안에 대해 알게 됐다”며 “무거운 과정이 너무 가볍게 이뤄졌다”고 했다. 교원단체나 영유아 교육기관, 학부모 등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도 없었다. 물론 이 지난한 과정을 축약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도 존재한다. 대선 등 주요 선거에서 대표적인 공약으로 등장해 첨예한 논쟁과 검증을 거친 경우다. 그러나 만 5세 취학 정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도, 국정과제도 아니었다. 파급력 큰 정책이 어디서 갑자기 돌출했을까.

적어도 교육부 내부 논의 과정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8월 9일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교육부 업무보고에 만 5세 입학 방안이 들어가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업무보고 내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가교육책임제를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취학연령 1년 하향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판단했다)”며 “관련된 실국하고 다 토의를 했다”고 말했다.

교육부 설명에도 의문은 꼬리를 문다. 취학연령 하향 정책은 김영삼 정부 때 시작해 거의 모든 정부에서 한 번 이상 검토됐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고위 당정회의에서 초등학교 취학연령 하향안을 내놨지만, 교육계는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당시 한국교육개발원은 효과보다 혼란이 더 크다는 취지의 연구보고서를 내놨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도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취학연령 하향안을 검토했지만, 학제 개편에 따른 혼란 등을 이유로 교육부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논의는 시작도 전에 중단됐다. 2019년 취학연령 하향 등 학제개편 관련 연구보고서를 냈던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은 “교육부 관료들이 교육 문제는 민감해서 한 번 던져보고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대통령 첫 업무보고에 포함되게 그냥 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당국의 뚜렷한 설명이 없다 보니 추측만 무성하다. 교육계에서는 3~4가지 추정이 떠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단계에서 논의됐던 안을 박순애 장관이 다시 꺼내들었다는 가설이 대표적이다. 실제 박 장관은 지난 7월 29일 정책 추진 배경에 대해 “내용들이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니고, 실질적으로 인수위에서 우리 대통령께서도 학제 개편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라고 했다.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2017년 대선에서 취학연령 하향을 포함한 학제 개편을 공약했다는 점도 이 같은 추정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인수위 과학기술교육분과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제가 아는 한 공식 안건으로 논의된 바는 없다”고 했다. 안철수 의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개혁에 대해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다음에 교육개혁 전체와 핵심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나갔다면 소모적 논란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의 학제개편안과 거리를 뒀다.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주최로 지난 8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종이비행기에 요구사항을 적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만 5세 초등취학 저지를 위한 범국민연대’ 주최로 지난 8월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종이비행기에 요구사항을 적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교육부의 아이디어 수준 보고에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의 의지가 더해지면서 수습 불가의 상황으로 치달았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교육부의 업무보고 직후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박 장관의 우왕좌왕 대응도 이 같은 추정에 무게를 싣는다. 박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 앞서 실시한 사전브리핑에서 2025년부터 4개년도에 걸쳐 순차적으로 만 5세 아동을 입학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3월생이 입학하고, 이듬해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이 입학하는 식이다. 학령인구가 늘어 입시경쟁이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박 장관은 해마다 만 5세 아동의 진학 시기를 12년에 걸쳐 1개월씩 앞당겨 입학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교육부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지도, 정책을 철회하지도 못하는 사이 논란은 급격히 확산됐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전문성 부재가 결합돼 빚어진 논란이라 데는 이견이 없다. “교육에 관해서는 온 국민이 전문가”라는 교육정책의 파급력을 간과한데다 정책에 대한 이해도도 높지 않아 불거진 문제라는 지적이다. 박순애 장관은 행정학자 출신으로 교육정책 관련 경험이 없고, 장상윤 차관과 이상원 차관보는 각각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대통령도 교육 분야 전문성이 없는데다, 대통령실의 안상훈 사회수석은 복지 전문가다.

그러다 보니 이번 사달을 두고 비전문가들의 ‘소통 착오’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 장관은 지난 8월 1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께서 돌봄센터를 다녀오셨는데 학교보다 낙후된 시설에서 조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게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이런 아이들을 더 나은 시설을 가진 학교가 담당하는 게 더 낫다고 보신 것 같다”며 “(대통령이) ‘입학연령 하향이라는 것이 그런 취지에서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것을 조금 빨리 집행해볼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돌봄센터나, 윤 대통령이 방문한 지역아동센터는 방과후 돌봄이 필요한 초·중학생들이 다니는 곳으로 만 5세 돌봄과는 관련이 없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정말 많은 변수가 얽힌 것이 교육정책이다. 경제부처 장관에 경제 전문가를 앉히고, 국방부 장관에 국방 전문가를 앉히듯이 교육정책도 전문가가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김기식 소장은 “대통령이 국정운영 경험이 없더라도 옆에서 고언하고 검토보고서를 내면서 말렸어야 하는데 사회수석실이 제 역할을 못 했다. 백번 양보해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라 해도 공론화를 거쳐 추진할 사안이다. 교육 관련 사안은 일방적으로 추진해 된 예가 없다”고 했다.

윤 정부 출범 후 첫 장관 사퇴

윤석열 대통령이 휴가에서 복귀한 지난 8월 8일 박순애 장관은 “학제 개편 등 모든 논란의 책임은 저에게 있고 제 불찰”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장관에 정식 취임한 지 34일 만, 대통령 업무보고를 한 지 9일 만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현직 국무위원이 사퇴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사퇴한 것은 박 장관이었지만 윤 대통령이 받은 타격이 더 컸다. 박 장관은 인사 검증 단계에서 만취 음주운전, 갑질 논란, 논문 중복게재 등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느냐. 다른 정권 때하고 한 번 비교해보라. 자질이나 이런 것을”이라며 박 장관 임명을 비호했다. 자질과 능력에 맞는 인사를 했다는 취지다. 그런 박 장관이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잘못된 정책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매끄럽지 못했던 인선 과정과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 추진 과정을 연결 짓는 시각도 있다. 송현석 소장은 “집권 초기이다 보니 임명 과정 자체가 교육부 관료들에게 안 좋은 시그널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의혹이 연일 제기되는 사람을 대통령이 임명 강행했다면 ‘실세 장관이구나’ 하는 암묵적 메시지를 관료들이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저러한 의견이 있어도 (장관에게) 강하게 전달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장관’ 발언에 실적압박을 느낀 박 장관이 ‘한방’을 노리고 무리수를 뒀다는 해석도 나온다. 박 장관은 지난 7월 19일 ‘반도체 관련 인재 양성 방안’을 내놓으며 윤 대통령의 지시에 발을 맞췄다. 윤 대통령은 앞서 지난 6월 “반도체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부처가 나서야 한다”고 지시한 바 있다. 이 정책 역시 수도권 대학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는 정책으로 지방대 총장들의 반발을 샀다.

박남기 교수는 청와대의 조정을 받는 동시에, 위기의 순간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역대 교육부 장관들의 수난사가 재연됐다고 봤다. 박남기 교수와 임수진 광주교대 교수는 2018년 김영삼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역대 정부의 교육부 장관 1명씩을 면담해 교육부 장관의 특성을 분석한 ‘교육부 장관 리더십 탐색 연구’ 논문을 내놨다. 이 논문은 교육부 장관을 “대통령의 아바타”로 규정하고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희생 제물로 활용하면서 위기를 넘기곤 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역대 교육부 장관은 대통령실이 해달라는 대로 해야 하고 책임은 본인이 졌다”며 “학제 개편 의제를 다루는 권한은 국가교육위원회에 있는데, 교육부 장관은 매일 터지는 현안에 대응하고, 교육정책 의제 설정 권한은 국가교육위에 맡기는 방안이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박 장관에게 “언론의, 또 야당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이했다”고 했다. / 강윤중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월 5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박 장관에게 “언론의, 또 야당의 공격을 받느라 고생 많이했다”고 했다. / 강윤중 기자

정책은 사실상 폐기 수순

취학연령 개편안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 8월 9일 국회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이제는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은 드리지 못한다”면서도 “계속 고집을 하거나 추진하겠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추진 과정 못지않게 정책 자체의 허점이 컸다. 학제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취학연령 하향을 검토했던 역대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취학연령 하향만 따로 떼 검토했다. 그러면서도 추진 근거는 정교하지 못했고, 과거의 찬성론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학제가 1950년대 확정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입학연령 하향으로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점, 영유아 시기부터 나타나는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교육을 영유아의 관점에서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병설유치원에서 6년간 유아들을 가르친 박다솜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 노조위원장은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공간 자체가 다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책상에 앉아 40분간 수업을 듣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유치원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만 5세 아이들이 적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장 유치원에는 아이들이 변을 보고 뒤처리를 못 할 때 누르는 벨이 있다. 1인당 담당하는 아이들이 적고 보조강사도 있는 유치원에서는 처리가 가능하겠지만, 한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매번 그럴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생일이 1~2개월만 차이 나도 격차가 큰 아이들의 발달상황을 간과했다는 얘기다.

현행법상으로도 부모가 원한다면 아이를 만 6세가 아닌 만 5세나, 만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수 있다. 발달격차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 조기입학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연도별 초등학교 조기입학자는 2009년 9707명으로 고점을 찍은 이후 지속 감소해 2020년에는 521명까지 줄어들었다. 반면 유예입학자는 2020년 812명으로 조기입학자보다 많았다.

교육격차를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했다. 진짜 사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은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만 5세로 취학연령을 하향할 경우 교육격차만 1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사정도 있다. 아이를 저녁시간까지 돌봐줄 수 있는 유치원과 달리, 초등학교는 늦어도 오후 1시에는 아이들을 하교시킨다. 방과후 교육이 있지만 도심 지역의 경우 수요자가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게 되는 셈이다. ‘8세(한국나이) 경단녀’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A씨는 “직장을 다니는 여성에게는 3번의 고민할 때가 찾아온다. 결혼할 때, 아이를 낳을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다. 첫아이가 학교 입학할 때 일을 쉬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B씨는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아내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학제 개편 찬성론자들 사이에서는 취학연령 하향과 맞물려 학제 개편 논의까지 이대로 공론장에서 퇴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학제 개편과 9월 학기제 개편은 지난 30년간 정부가 추진한 교육혁신의 단골 메뉴였다. 매번 너른 공감대를 얻지 못해 좌초했지만, 정책을 추진해야 할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구조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초등학교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10년간 400개가 넘는 초·중·고교가 문을 닫았고, 전체 학생 수가 60명이 안 되는 초등학교가 전국적으로 1500개 존재한다. 아이들의 수는 점차 감소해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교원 자격을 갖춘 이들은 지속적으로 배출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유치원·어린이집도 대대적 구조조정 위기에 처했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정책에 유치원·어린이집이 격렬하게 반발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립유치원 비율이 75%에 달하는 유아교육기관보다 공립학교가 대부분인 초등학교를 살리겠다는 시그널로 본 것이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선생님 중에는 잘하면 교원을 늘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이 정책에 아무리 논의할 가치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달이 나서 앞으로 얘기나 꺼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나온 대안이 원안… 실현가능성 미지수

이번 사태는 만 5세 아동 교육에서 국가가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남겼다. 교육계 대다수가 동의하는 대안은 만 5세에 대한 ‘국가 책임 교육’이다.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저마다 차이가 있는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부터, 유아 무상교육, 유아 의무교육, 유아학급 등의 제안이 나온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미래교육연구팀장은 “사실 새로운 대안이 아니고 오랫동안 논의된 내용들이다. 유보통합의 경우에는 윤석열 정부의 대선 공약으로 국정과제에도 포함됐다. 만 5세 취학연령 하향 문제가 나오면서 기존 논의가 퇴보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사실상 만 5세 취학 폐기 방침을 밝힌 지난 8월 9일 국회에서 유보통합과 전일제학교 시범사업 방안 마련 등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극심한 사회적 비용을 치른 끝에 원래의 길로 돌아가는 셈이다.

대안은 제시됐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교육부가 관리하는 유치원과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어린이집의 통합 논의는 수십년간 이어졌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자격 양성 체계가 다른 두 기관을 통합할 경우 교육의 질이 하락할 것을 우려한다.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우려하는 사립유치원의 목소리도 있다. 대선 때마다 거의 모든 후보의 공약에 포함되고도 아직까지 정책이 실현되지 않은 배경이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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