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 법 개정 움직임… 정경유착 ‘공포마케팅’ 반복
“정부와 기업은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16일 경기도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 발표 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지원부 장관이 정책도 이제 기업과 논의해야 한다고 했는데 백번 맞는 얘기다. 정부와 기업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이날 발표된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는 기업이 요구했던 정책들이 대폭 반영됐다. 중대재해처벌법 개정도 그중 하나다.
지난 1월 시행에 들어간 중대재해처벌법은 반복되는 산업재해를 멈춰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밀어올린 법안이다. 2020년 8월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은 한 달 동안 10만명이 넘는 국민의 동의를 받아 국회법에 따라 심사절차를 거친 후, 본회의에 회부됐고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사고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안전과 관련한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방향에 대해 “행정제재 전환, 형량 합리화 등을 추진하고, 경영책임자 의무 명확화를 위한 시행령 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감경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시사한 셈이다. 지난 6월 17일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좀더 구체적인 방안이 담겼다. 기업이 법무부가 지정한 안전관리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으면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감경 또는 면책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개정 방향과 여당의 발의안은 그간 재계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주장과 맞닿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통과 이후, 재계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웠던 부분은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관리의 의무를 다했을 경우, 사고가 일어나도 면책될 수 있다는 해석이 보편적이지만, 재계는 의무사항을 구체화해달라며 불만을 표해왔다. 지난 5월 1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명확한 의무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한 경영책임자에 대해 면책하는 등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잇따른 정부·여당의 법 개정움직임은 재계의 요구에 대한 화답 성격이 짙다.
죽이 잘 맞는 권력과 재계
노동법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재계의 이러한 주장은 법의 체계에도 맞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인 산재 예방에도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여당의 개정안에 대해 “에둘러 경영책임자의 법정형을 감경하려는 입법”이라며 형법 체계와 행정법 체계를 구분하지 못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또 “중대재해처벌법은 형법 규정이다.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사후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찾고, 이에 따라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아 마땅한지 판단하면 된다. 국민의힘이 낸 개정안처럼 사전에 안전보건관리 인증을 받았으니, 사고가 발생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형법 체계상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전형배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인증제 도입은 산재 예방에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외부기관에서 안전보건관리 인증을 받는 제도는 지금도 있다. 그러나 서류심사에 불과해 산재 예방에 실효성이 적다”며 “인증제를 도입하게 되면 경영책임자의 각성을 통해 산재를 예방하겠다는 법의 기본 취지가 없어져 버린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그칠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기업들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인증시스템을 서류상으로 대충해왔다면 이제는 이를 성실히 이행하면 된다. 기업들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그간 대충 해오던 걸 제대로 하려고 하니까 답답하고 어떻게든 면책을 받고 싶다 보니 포괄적이고 명확하지 않아 못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반영된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법체계를 훼손하면서까지 정부·여당이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경제위기 우려’와 ‘투자 위축’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기업인들을 만난 자리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내국인들의 투자는 물론 해외자본의 투자도 어렵게 한다면 국민과 산업계의 의견을 들어 재검토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총수의 형사처벌 가능성이 제기될 때마다 따라붙는 ‘경제위기’ ‘투자 위축’ 논리는 정부와 재계가 실체 없이 반복해 온 ‘공포마케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때다 싶어 야금야금 잠식
2020년 경제개혁연구소는 기업총수의 형사처벌이 리더십 공백으로 이어져 기업가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재계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이터를 발표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000~2018년 사이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총수가 지배하는 35개 재벌, 319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법원의 판결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경제 및 해당 기업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법원이 총수에 대해 집행유예 등의 관대한 판결을 한 경우 주가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경제개혁연구소 부소장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같은 공포마케팅은 재계에서 늘 해왔다. 그러나 기업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기업가치인 주가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명백해지자 재계는 이제 ‘투자 위축’을 앞세워 ‘공포마케팅’을 하고 있다. 주가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투자의사 결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로 기업총수가 사법처리 되거나 재판에 불려다녔을 때 투자의사결정이 왜곡됐다는 증거는 없다. 기업총수가 법원에 불려다닌다고 해서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시스템이면 글로벌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오히려 정부·여당·재계의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ESG에 방점을 찍은 글로벌 투자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다. ESG투자는 투자결정 과정에서 재무적 요소와 함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및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하는 투자를 말한다. 채이배 전 민주당 비대위원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ESG에 근거한 사회책임투자(SRI)가 강화되는 추세다.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로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정부·여당의 인식은 이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도 ESG 관리 실패 시 미국·EU 등으로부터 제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ESG위원회를 구성하고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여는 등 대응 방안에 주의를 기울이고는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ESG의 S(사회)에 해당하는 노동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무력화시키려고 하고 있다. 채 전 위원은 “ESG에서 E(환경)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새롭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여기에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다. 그러나 S(사회)는 소비자, 노동자, 지역사회와의 관계와 연관된 것인데, 새롭게 비용을 들여야 해 여기에는 소홀하다”면서 “사회책임투자(SRI)펀드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들은 여기에 소홀한 기업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신용평가기관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는 홈페이지에 ESG 평가요소와 업종별 평가비율을 공개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S(사회) 부문 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13%(에너지 업종)에 달한다.
물론 ESG는 아직 선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아 여전히 기관투자가들이 산업재해 발생 기업에 투자한다. 연이은 포스코의 산재 사망사고에도 지난해 국민연금은 최정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ESG 투자의 상징처럼 거론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도 잇따른 배달노동자 사망사고로 논란이 된 쿠팡에 투자해 비판을 받았다. 지난 5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에 대해 “한국과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ESG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 요구에는 침묵하는 위선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채 전 위원은 ESG가 장기적으로 투자의 주요 흐름이 될 거라고 진단하면서 “높은 산업재해율은 국가적인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물론 정부 또한 신경써야 할 부분이라는 주장이다. 일례로 지난 1월 11일 준공 중이던 아파트 외벽 붕괴로 7명의 사상자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 사고가 발생해 법 적용을 가까스로 비껴갔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은 지분 1.5%를 보유한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으로부터 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라는 주주제안을 받고 이를 수용했다. 박유경 APG 아시아태평양지역 총괄이사는 당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장기적으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의무 이행이 투자와 직결됨을 강조하며 무엇보다 지배주주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안전경영을 하지 않는 회사는 기업가치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산재가 많은 회사는 공사 수주를 할 때 경쟁업체들에 비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뭔가를 더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산업재해는 결국 지배주주의 책임이다. 지배주주의 의지가 없으면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은 경제적인 비용이 아닌 기업의 가치 제고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장기적인 글로벌 흐름에 역행
기업경영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는 경향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 2월 23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기업 공급망 실사 지침안’을 발표했다. 이 지침안은 EU 역내에서 활동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자신을 포함해 전 공급망에 걸쳐 인권·환경 등을 감시하고 실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토대로 EU 회원국은 문제가 있는 기업을 조사할 수 있고, 결과에 따라 행정 과태료와 수입 금지 처분 등을 내릴 수 있다.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6월 10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Safe and healthy working environment)이 추가로 포함됐다. EU의 기업 공급망 실사법 부속서에도 이에 대한 의무가 포함돼 있다”며 “사용자가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 환경을 마련하고 국가는 이를 감독할 의무가 있다는 게 전제돼 있다. 당연히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슈가 된 것이고, 단순히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조선업계에서는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한 산업재해가 반복해 발생한다. 만약 유럽의 한 국가에서 발주한 선박을 한국 조선업체가 제조하다가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EU 공급망 실사법에 따라 어떤 제재를 받게 될까. EU 기업과 한국 조선업체의 계약관계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수년간에 걸쳐 안정적인 계약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한국에서 발생한 산재에 대해 해당 EU 국가가 공급망 정점에 있는 EU 기업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높다. 남 연구위원은 “과거에 하청업체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국경 밖의 원청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공급망 실사의무가 법제화되면서 공급망 정점에 있는 기업들은 공급망 안에 있는 기업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 위험성 여부 등을 파악해야 하고, 이와 관련해 제보를 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둬야 한다. 하청업체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문제에 대해 공급망 정점에 있는 기업들의 책임을 묻는 게 이 법의 묘미”라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와 기업활동의 방향은 장기적으로 노동자의 인권과 안전을 강화하는 쪽을 가리킨다. 투자위축 논리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고 있는 정부·여당의 움직임은 기업이 적응해야 할 이러한 흐름에 역행한다. 변화하는 시장에서 안전보건관리의무를 다하지 못한 기업은 결국 배제될 수밖에 없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