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다리]고민이 많은 사람이 좋아요

“저는 고민이 많은 사람이 좋아요.” 함께 식사하던 후배가 말했다. “아, 그래요?” 무심한 척 답했지만, 이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적잖은 위로가 됐다.

게티이미지

나는 고민이 많다. 가깝게는 식사 메뉴부터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을 택하고 행하기까지 여러 선택지 사이를 유랑한다. 물론 많은 에너지를 쓰는 고민은 후자다. 결심했다가도 또 다른 폭력에 휘말리게 될까봐 선뜻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민의 시간은 길어진다. 그때마다 ‘나는 왜 매번 이리도 생각이 많을까. 좀 단순해질 수는 없나’ 하며 자책하곤 했다.

고민의 시간을 지나오며 얻은 것도 있다. 폭력이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깨닫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마음 깊이 새겼다. 고민하는 과정은 그렇게 나를 가다듬고 한발짝 뒤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재정비의 시간이었다.

정작 우리 사회의 ‘고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고(Go!)’만 남은 듯하다. 연세대학교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분에 맞춘 시급 인상,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하며 학교 안에서 시위를 이어가자 앰프에서 나오는 소음을 견디지 못하겠다며 한 학생이 지난 5월 노조를 형사고소한 일이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노조원들이 시위할 때마다 100만원을 배상하도록 하는 소송도 준비 중이다. 공부하는 데 손해를 봤다고 생각해서다. 경찰서를 찾기까지 그 학생 역시 ‘고민’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 구성원인 계약직 노동자들의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학생사회가 함께 고민하는 과정은 사라졌다.

정부 인사와 선거 국면에서도 고민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은 의혹을 막무가내로 제기하며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유튜브 방송으로 돈방석에 앉은 강용석 무소속 경기도지사 후보의 복당을 승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윤재순 대통령비서실 총무비서관은 검찰 재직 중 직장 내 성추행을 한 전력이 있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책임자였다. 폭력을 가한 이들이 공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헤집는 처사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들의 등장이 폭력을 용인하는 신호가 된다는 걸 고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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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장면들을 되짚어보면 고민의 깊이·시간과 사회·정치 자본의 총량이 반비례하는 어떤 법칙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가진 게 적은 사람들, 우리 사회가 ‘소수자’로 통칭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 익숙하고, 더 나은 답을 찾으려 많은 밤을 지새웠으므로. 우리는 모두 고민을 거듭해온 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더 많은 이들이 고민하고 저마다의 고민을 함께 나눠야 한다. “감히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겠어. 다만 배워볼게.” 드라마 <밀회> 속 대사처럼 당장 무언가를 하지 못하더라도 ‘다만 고민해보겠다’는 마음은 쉽게 놓지 않고 애써보겠다는 다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민하고 있을 당신을 응원한다.

<박하얀 사회부 기자 whit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