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사도광산…끝나지 않은 역사전쟁

충남 논산 출신의 21세 청년 임태호씨는 1940년 11월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임씨를 비롯해 ‘모집’이라는 명목으로 모인 조선인들은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佐渡)섬에 도착했다. 숙소는 산꼭대기에 있었고, 작업장인 탄광은 걸어서 1시간 반이나 더 산을 타야 닿을 수 있었다. 그는 갱도 안으로 들어가 광석을 캐내는 일을 맡았다. 매일 발생하는 낙반 사고 때문에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 역시 작업 중 발판이 떨어지는 바람에 사고를 당했다. 열흘간 꼼짝도 못 한 채 숙소에서 누워만 있어야 할 정도였지만 병원엔 가보지도 못했다. 애초부터 누군가 죽어도 누구도 조의를 표하지 않는 그야말로 삶의 막장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일했던 곳, 사도광산이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은산의 갱도 / 연합뉴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추천한 일본 “전후 반세기 이상이 지났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 정부로부터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들은 적이 없다. 나와 같은 경우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에 성의 있는 진정한 사죄를 받길 원한다.” 임태호씨는 사도광산에서 입은 두 번째 사고로 손을 심하게 다친 뒤 탈출을 결심했다. 다행히 탈출에 성공한 그는 일본 가와사키에 머물다 조국의 해방 소식을 들었다. 50여년이 지난 1997년 5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사도광산에서 겪은 일을 짧게 구술로 남겼다. 그가 남긴 마지막 바람은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사과였지만 끝내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일본 정부가 지난 2월 1일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추천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열린 각의(閣議)에서 2023년 세계유산 등록을 위한 일본 후보로 사도광산을 추천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날 오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추천서를 제출해 세계유산 등재를 목적으로 실사·평가를 받기 위한 사전작업을 마무리했다. 만일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일본이라는 한 국가의 유산을 넘어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임을 증명받는 셈이다.

일본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인정받고자 ‘전통 수공업 유산’임을 내세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추천 결정이 공식화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사도광산은) 에도시대 일본 고유의 전통적인 수공업을 활용해 장기간 대규모로 지속된 보기 드문 산업유산”이라며 “사도광산의 가치가 문화유산으로서 훌륭히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한국을 포함한 관계국들과 냉정하고 정중하게 논의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또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방침이라고도 밝혔다.

사도광산이 일본 측의 주장대로 근대 이전 수공업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산업유산이기만 했다면 한국 등 주변국이 세계유산 지정에 제동을 걸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8일 일본보다 먼저 TF를 설치해 본격 대응에 나섰다. 가장 큰 이유는 사도광산이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기간에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동원해 자유를 빼앗으며 노역에 투입한 비극적 역사를 품은 곳이기 때문이다.

“조선인들, 위험한 작업에 투입” 일본의 사도광산 연구자인 히로세 데이조 후쿠오카대학 명예교수가 지난해 10월 23일 온라인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사도광산은 조선인에게든 일본인에게든 ‘죽음의 작업장’이었다. 히로세 교수는 1930년대 당시 일본 신문 기사를 인용해 “1935년 7월에는 하루 평균 1명꼴로 사고가 빈발했다”며 “조선인은 특히 바위에 구멍을 뚫는 ‘착암부’ 등 갱도 내에서도 위험한 작업에 투입되는 비율이 높았다”고 밝혔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본격 투입 시기가 1939년 무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일본인 노동자들이 무수한 희생을 겪고 있었고, 뒤이어 조선인 노동자들도 사지로 몰리는 신세가 됐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해산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강제동원위원회)의 조사결과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됐다고 판정한 피해자는 148명이었다. 하지만 강제동원위원회 조사과장을 맡은 바 있는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는 가장 최근에 나온 자료를 토대로 사도광산에는 적어도 1519명의 조선인이 동원됐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일본의 자국민 노동자들이 주로 이 광산에서 일했지만, 조선인 강제동원을 시작한 1939년부터 조선인 노동자들이 크게 늘기 시작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들을 주로 투입한 착암부와 운반부는 분진이 많이 발생해 진폐증에 걸릴 위험이 컸다. 정 대표는 “사도광산 피해 생존자를 유독 찾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진폐증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니가타현에서 1988년 발간한 <니가타현사(新潟縣史) 통사편8 근대3>에 수록된 표.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니가타현 소재 강제동원 사업장별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징용 또는 고용한 현황을 조사했다. 가장 아래 항목인 사도광산에 조선인 노동자 1250명이 징용돼 일했다고 추계했다. / 일본 강제동원진상규명 네트워크·허광무 박사 제공

일본 측도 사도광산이 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동원한 산업현장임을 알고 있다. 146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사도광산의 역사 중 센고쿠시대(1467~1590년)와 에도시대(1603~1867년)만을 한정해 세계유산 등재 대상 기간으로 올린 것도 관계국의 반대를 피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광산이 현재의 모습을 띠며 본격적인 근대 광산으로 떠오른 시기는 오히려 그 이후부터다.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풍경인 V자형 산봉우리는 1885년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한 발파작업 이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생산 측면에서 효율을 높인 획기적인 개선이 일어난 시기도 부유선광장을 설치한 1938년부터였다. 사실 현재의 사도광산에서 일본이 내세우는 선구적 광업 기술과 자연풍광 등 문화적 유산은 찾기 어렵다. 근대 광산으로 개선한 이후의 산업경관만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작 등재를 피하려는 시기의 유산만 즐비한 역설적 현실이다.

어두운 역사는 꼭꼭 숨겼다 일본의 시도는 유네스코가 등재 신청지의 모든 역사를 포함해 기술하라고 권고하는 원칙과도 배치된다. 애초에 일본은 1년 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정식 신청하기 전 단계인 잠정목록 등재 단계에서부터 한국의 반발을 예상해 대상기간을 한정했다. 등재기간만이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조명받고자 하는 내용까지 현재의 정치적 논리만을 반영한 모습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광산은 본격적으로 광물을 캐내기 시작한 에도시대부터 매일 작업자들이 죽어나가던 노역지였는데도 일본 측은 이런 어두운 역사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을 강제동원한 사실을 부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혜경 대표는 “일본 측은 사도광산이 집 없는 무숙인과 죄수들의 노역지였고, 이들이 목숨을 걸며 작업에 투입됐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고 숨기고 있다”면서 “‘아름다운 일본’이라는 신우익 세력의 정치적 구호를 뒷받침하는 데에만 사도광산의 유산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앞장서 사도광산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모습 역시 정치적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측이 강제동원의 어두운 역사와 결부되는 제국주의 시기를 교묘히 피해가려고 대상 시기를 한정했으나, 자국 내 우익세력은 오히려 강제동원은 아예 없었다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공식 추천 결정을 내리기 전 광산 소재지인 니가타현은 “한반도 출신자가 일한 사실은 있지만, 강제동원이었는지 어떤지 자료나 기록이 없고 파악하지도 않았다”는 입장까지 내며 중앙정부를 압박했다.

니가타현이 앞서 1988년 손수 편찬한 <니가타현사(新潟縣史) 통사편8 근대3>을 보면 강제동원을 자인한 기록이 또렷이 나온다. ‘강제연행된 조선인’이라는 항목에는 “1939년에 시작된 노무동원 계획은 명칭이 ‘모집’에서 ‘관 알선’, ‘징용’으로 바뀌지만 조선인을 강제로 연행한 사실은 동질하다”고 적혀 있다. 또 태평양전쟁 동안 니가타현 내 군수공장 등에서 니가타현이 기록한 대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는 총 5753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고, 사도광산은 이 가운데 1250명이 강제동원돼 가장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투입된 곳으로 확인됐다.

2월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상화 외교부 공공외교대사(오른쪽) 주재로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추천 관련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열리고 있다. / 외교부 제공

강제동원 인정한 일본 사법부의 판결문 사도광산만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동아시아 각 지역에 걸쳐 강제동원됐던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어 배상을 요구해왔다. 일본 사법부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한 판결문도 여러건 찾을 수 있다. 강제동원위원회 조사과장·심사과장을 역임한 허광무 박사(일본 근현대사회경제사 전공)는 “당시 조선인만이 아니라 중국인과 대만인 등 각국의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낸 소송이 상당수 기각당하긴 했으나 대부분 소송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법리적 이유에서였다”며 “일본 정부의 일관된 강제동원 부정 논리와 달리 사법부의 판결문에서는 오히려 강제동원 사실은 인정된다고 기술한 대목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에 동원된 김순길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일본 법원은 1997년 12월 “거의 절반 정도는 감금에 가까운 상태에서 노동에 종사시했다. 국민징용령에 토대를 둔 징용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위법적인 것”이라고 판시했다. 다만 전쟁 당시의 미쓰비시중공업과 전후의 미쓰비시중공업이 별개라는 논리로 김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허 박사는 “일본 측의 논리 중에 ‘모집’에만 초점을 맞춰 조선인 노동자들이 돈 벌기 위해 제 발로 일하러 가지 않았냐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실제 작업환경이 감금과 착취로 점철된 사실을 가리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사도광산 역시 제대로 된 급료를 받지 못하면서 이동의 자유도 제한해 감금에 가까운 합숙노동을 자행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여럿 존재한다.

애초에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일본 내부의 움직임은 2015년 일명 ‘군함도’라 불리는 하시마섬이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으로 묶여 세계유산에 오를 때부터 감지됐다. 정혜경 대표와 허광무 박사 등 강제동원위원회에서 활동한 연구자들을 비롯해 민간에서 더 강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유네스코 무대에서의 외교를 통해 결국 일본이 강제노역을 자행했음을 인정하는 내용까지 포함한 협상안을 수용하게 만드는 성과는 냈다. 유네스코도 일본이 스스로 강제노동 사실을 명시하는 조치를 이행하도록 결의했다.

실제로는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 이후 했던 당시의 약속과 달리 적극적으로 강제노동 사실을 표명하기는커녕 상당 부분 왜곡된 자료를 버젓이 전시하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불행하고 어두운 비극적 역사나 부정적인 성격의 역사 유산까지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 대비된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가 지난 1월 27일 온라인으로 연 ‘사도광산 강제동원 역사 왜곡’ 세미나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부정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역사적 교훈을 내포하고 있어 등재된 세계유산만 전 세계에 걸쳐 60여곳에 달한다.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가 가장 대표적인 곳으로, 나치 독일의 집단 학살을 증거하는 장소로 인간의 야만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강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근대 국제사회를 주도했던 국가들의 과열경쟁이 반영돼 제국주의 국가들이 저질렀던 부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는 모습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식민지 개척이나 노예 수송, 침략전쟁 등의 부정적 역사를 합리화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며 “한편으로는 부정적 역사와 연관된 유산들을 교훈의 대상으로 삼자는 논리도 대두되면서 아시아 근대화와 관련해 일본이 왜곡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유네스코 등재 반대”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등재 노력에 맞서기 위해 다방면의 대응책을 모색 중이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6월 말부터 7월 사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를 거쳐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내년 5월쯤에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권고를 통해 결과를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이 현재로선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유네스코가 양국의 협의를 촉구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한일 외교 수뇌가 사도광산을 두고 논전을 벌였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하는 등 접점을 찾기가 요원한 상태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가족들이 2021년 10월 28일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들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지난 2월 3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의 통화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인 강제노역의 아픈 역사를 외면한 채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추진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함께 항의의 뜻을 표했다. 일주일 뒤인 10일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과거사 문제해결과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같은 날 주변국 가운데서는 러시아가 일본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국 측 반응을 이해한다”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도자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를 인류 기억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일관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네스코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세계유산 등재 기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라는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긍정적 역사뿐 아니라 부정적 역사까지도 등재 대상에 포함될 여지가 크다. 일본 측이 전향적으로 입장을 바꿔 사도광산에 서린 강제노동의 역사와 근현대 노동자의 희생을 조명하면 오히려 이론의 여지가 줄어드는 셈이다. 허광무 박사는 “유네스코 등재 추진은 해당 국가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개인적으로는 타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놓고 찬성·반대 등의 의견을 내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그 유적에 국민이 핍박받고 피해를 입은 사실이 있었다면”이란 단서를 달고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그런 역사적 사실이 있었다는 걸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