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도 아닌데…내 얼굴이 왜 거기서 나와

국가기관들, 얼굴 정보 수집·활용 움직임

“기본권 침해 정도 매우 크다” 목소리도

“아이들과 역할놀이를 하며 괴물 역할을 하다가도 ‘내가 아이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학대처럼 보이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정부서울청사로 들어가는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얼굴인식 출입기에 얼굴을 인식시키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장은 어린이집에 달려 있는 CCTV가 보육교사들을 위축시킨다고 말했다. “아동학대로 보일 수 있는 이러한 오해와 의심 때문에 교사들이 아이들을 사랑으로 더 보듬는다거나 친밀한 표현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론 보육교사들도 아동학대를 염려하는 학부모들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현재 설치된 CCTV가 자신과 아이들의 얼굴을 찍는 것은 묵묵히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 안산시가 인공지능 CCTV를 도입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더 참을 수 없었다. 함 지부장은 “교사들을 강력 성범죄자와 똑같이 취급하겠다는 이야기로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CCTV로 안심보육?

안산시는 지난해 10월 13일 ‘안심보육시스템’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CCTV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새롭게 문을 여는 어린이집 한곳을 시범실시기관으로 정해 인공지능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안산시의 발표에 따르면 “AI 기술이 접목된 CCTV가 아동의 부정적 감정 표현 및 아동학대 징후 등을 포착해 사고를 사전에 발견·예방”하기 위한 사업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는 물론 아동의 얼굴을 포함한 개인 생체정보를 법적 근거도 없이 수집·활용한다는 것이어서 발표 즉시 반발이 일었다.

2021년이 저물기 전인 12월 14일 안산시의회는 해당 사업에 대한 예산 41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일단 2022년 한해 동안은 안산시가 관내 어린이집에 인공지능 CCTV 설치를 추진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는 안산시가 여전히 해당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이 사업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 수준으로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애초부터 논란이 컸다. 김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미국 심리과학협회에서도 2019년 2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감정인식 인공지능의 정확도가 30%에 불과하고, 동시에 표정 변화와 감정에 대한 이론 자체가 과학적 타당성이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고 말했다.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부위인 얼굴 정보를 수집·활용하겠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생체정보 데이터 사업은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경기도 부천시는 인공지능 안면 인식 기술이 적용된 1만820대 규모의 CCTV에서 확보한 생체정보 데이터를 이용해 코로나19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는 시범사업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예산으로 올 1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법무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인천국제공항 출입국심사장에서 수집한 내·외국인의 얼굴 정보 1억7000만건을 ‘인공지능 식별·추적 시스템 구축 사업’에 활용하는 데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미비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법무부와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0월 비판 여론이 커지자 해명자료를 통해 “복수의 법무법인의 법률자문을 통해 사업추진에 대한 법적 검토를 했다”며 “사업추진에 법률적 요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고 판단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유권해석이나 승인을 요청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밝혔다.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총괄하는 관계 당국의 해석보다 민간 법무법인의 판단을 우선했다는 것이다.

생체정보 중 가장 민감한 얼굴 정보를 국가기관들이 앞다퉈 자의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애초에 법무부 등이 내세우는 법적 근거도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제1조 2항에서 심사를 받으려는 국민이 스스로 “지문과 얼굴에 관한 정보를 등록했을 것” 이상의 내용을 찾기 어렵다. 출입국심사장 주변에서 인공지능 CCTV 등의 설비를 구축해 내·외국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정책에 시민사회가 의문을 표하는 이유다. 서채완 민변 디지털정보위원회 변호사는 “출입국관리법상 출입국심사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추상적 규정에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할 목적으로 생체정보를 활용될 수 있다는 목적을 도출해내기 어렵다”면서 “사건의 본질은 국가가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제3자인 기업에 제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정보 그대로 노출될 수도

인공지능 기술을 바탕으로 얼굴 등 생체정보를 수집하고 보다 넓은 범위에 활용하는 흐름은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정부가 이미 수집해 구축해둔 데이터를 민간 기업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지원하는 것 전부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앞장서 시행하는 각종 사업에서 아직 법적 권한과 책임의 경계가 모호한 생체정보 관련 내용을 무분별하게 밀어붙이는 현실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높다.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3월부터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두는 이른바 ‘데이터 댐’을 세우기 위해 기업과 대학 등에 지원하는 ‘2021년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지원사업’에도 우려되는 지점들은 다수 나타난다. 해당 사업의 공고문을 보면 ‘가족관계가 알려진 얼굴 이미지 데이터’를 구축하는 목적 중 하나로 ‘범죄자 얼굴 예측’을 들고 있다. 직계가족 구성원 2인 이상의 얼굴 이미지를 3000건 이상 모아 가족 간 얼굴 생김새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인공지능이 범죄자 얼굴을 학습·판단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 해당 사업에 포함된 80여 분야의 프로젝트 중 개별 과제를 맡은 단체가 담당 과제 중 일부를 다시 용역을 주면서 우려되는 문제도 있다. 이 경우 수집한 데이터 가운데 민감한 개인정보가 있는지 찾아낸 뒤, 해당 정보에서 특정인을 가리키는 부분을 지워버리는 ‘비식별화’ 작업을 하청에 맡긴 셈이다. 개인정보 데이터가 과제를 수탁한 기관이나 단체의 손을 벗어나는 것은 물론, 비식별화 이전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 개인정보 보호 임무를 오히려 방기한다는 지적이 높아지면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022년 업무계획 중 첫 번째 과제로 ‘공공기관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제시하며 진화에 나섰다. 개인정보 ‘최소수집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 법령들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얼굴 영상 등 민감정보를 활용한 사업들은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한 현장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이 포함됐다.

유엔인권이사회(UNHR)는 지난해 10월 7일 공개한 결의안 초안에서 “불법적이고 임의적인 생체기술 사용은 고도로 위협적인 행위”로 “사생활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유럽의회도 같은 달 6일 “생체정보를 활용해 국경에서 개인을 자동 원격 식별하는 통제는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을 채택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