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 두 개의 공소장’ 누가 유리?

‘정경심 표창장 위조’ 추가 기소… 결과적으로 재판부가 검찰을 도와줬다?

“재판부가 검찰의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검찰을 도와준 것인데 왜 재판부를 욕하는 걸까요.”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의 말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고형곤 부장검사)는 2019년 9월 6일 조국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57)를 전격 기소했다. 검찰은 이날 열린 조국 전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자정을 넘어 종료한 지 약 15분 뒤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정 교수에게 적용된 혐의는 사문서위조였다. 조 후보자 딸의 ‘동양대 총장상’ 의혹과 관련된 사문서 위조혐의다. 한밤중에 벌어진 기소 발표는 ‘공소시효’로 인한 해프닝이라는 것이 검찰 측 설명이다. 위조 의혹이 제기된 동양대 총장 표창장은 2012년 9월 7일에 발급된 것으로 검찰이 봤기 때문이다. 사문서위조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기소는 공소시효를 약 1시간 남겨둔 2019년 9월 6일 오후 10시 50분에 이뤄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2019년 10월 23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공소시효가 임박한 수사였기 때문이었을까. 검찰은 정경심 교수에 대한 소환조사를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통상 검찰은 기소 전 피의자 소환조사를 필수적으로 거친다. 명백해 보이는 증거물이 있더라도 예상치 못한 약점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의 해명 또는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기존의 공소사실은 변경되기도 하고, 일부 사실이 추가되거나 빠지기도 한다.

1차 기소 내용 5가지 사실관계 변경

흔들림 없는 공소사실이 재판부에 제출돼야 하는 이유는 법원의 판단이 공소사실에 기초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피고인도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라 반박 가능한 증인과 증거 등을 수집한다. 때문에 범행 일시, 장소, 범행동기, 공범의 특정 등이 명확하지 않은 공소사실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도 심각한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

어쨌든 검찰은 정 교수가 ▲2012년 9월 7일 ▲동양대에서 ▲딸의 유명대학 진학 목적을 위해 ▲불상자와 공모해 ▲임의 날인 방식으로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했다. 사문서 위조죄에 대한 ‘1차 기소’ 내용이다. 그러나 기소 이후 검찰은 공소사실 가운데 이 다섯 가지 사실관계를 모두 변경했다.

범행날짜인 ‘2012년 9월 7일’은 ‘2013년 6월’로 변경됐으며, 범행 장소인 ‘동양대’는 ‘정 교수의 주거지’로 특정됐다. 범행 목적 역시 ‘딸의 유명대학 진학 목적’에서 ‘서울대에 제출할 목적’으로 변경했다. 공범인 ‘불상자’ 역시 ‘정 교수의 딸’로 특정했다. 범행방식은 ‘임의 날인’에서 ‘동양대 총장 직인 이미지 캡처’로 바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관 송인권 부장판사)는 2019년 12월 10일 정 교수에 대한 세 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공범과 범행 일시, 장소, 방법, 행사목적 등이 모두 중대하게 변경됐다”며 “동일성 인정이 어려워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즉각 반발하고, 공소장을 변경해 공소유지를 하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바꾼 공소사실을 가지고 추가기소를 했다(2차 기소). 하나의 실체에 두 개의 공소장이 존재하게 된 셈이다. 물론 정경심 교수가 자녀를 위해 총장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본류’는 바뀌지 않았다.

일선 법관들은 “유례가 없는 사안이라 모두들 관심 있게 해당 사건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경심 교수의 유·무죄 판단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공소장을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관심이란 뜻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은 이중기소라는 선택을 하게 해준 송인권 부장판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유는 이렇다. 만약 1심 재판부가 1차 기소와 2차 기소에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공소장 변경을 허가한 뒤 판결을 내렸는데 정작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은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릴 경우 검찰이 재기소할 길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유는 ‘공소시효’에 있다. 2차 기소에 적시된 범행 날짜를 기준으로 하면 2차 기소의 공소시효는 2020년 6월까지다. 정 교수에 대한 재판은 2019년 10월 18일 1차 공판준비기일 이후 현재까지 공판준비기일만 4차례 가졌다. 공소시효 만료 전까지 항소심의 판단을 받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항소심이 공소사실 동일성을 인정했지만 대법원에서 “동일성 불인정” 취지로 파기환송할 경우에도 검찰은 재기소할 기회를 잃는다. 물론 이럴 가능성은 이미 사라진 상태다. 1심 재판부가 이미 공소사실 동일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검찰의 재기소 기회 사라질 뻔해

대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기본적 사실 동일설’ 입장을 취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전혀 다른 사실이 아니라면 공소사실 변경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전혀 다른 사실’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데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이론적으로는 동일성 안에 들어오더라도 공소장 변경 시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에 심대한 침해가 발생한다고 판단될 경우 공소장 변경을 허가하지 않는 게 실무의 관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공소사실 동일성 여부는 재판부도, 검찰도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중기소’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문서위조 혐의에 대한 추가기소(2차 기소)를 했기 때문에 동일성 여부 판단에 있어 ‘공소시효’ 문제는 발생하지 않게 됐다. 검찰이 재판부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은 1심 재판부의 공소장 변경신청 불허의 적절성 여부를 상급심에서 판단받겠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밝힌 바 있다. 법원은 1차 기소와 2차 기소(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을 별론으로 한다)에 대해 각각의 판결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검찰이 변경된 공소사실로 2차 기소를 했기 때문에 재판부는 1차 기소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1심 재판부가 1차 기소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고, 2차 기소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다. 검찰은 유·무죄 여부와 관계없이 무죄판결이 내려진 1차 기소에 대해서도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항소심 재판부가 공소사실 동일성을 인정할지 여부가 또 다른 관건이다. 만약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달리 공소사실 동일성을 인정할 경우 추가기소한 내용은 이중기소가 돼 공소기각 결정이 내려진다. 다만 1차 공소장에 대한 변경을 허가한 뒤 판단을 내린다면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유죄 판결문이 작성될 수 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공소사실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항소심에서도 하나의 사건에 대해 두 개의 재판, 두 개의 판단이 이뤄지게 된다.

결국 최종 판단은 대법원으로 넘어간다. 원심과 같이 공소사실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수 있지만 동일성을 인정할 경우 사건은 파기환송심으로 넘어간다. 이때 역시 2차 기소는 이중기소가 돼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진다. 1·2차 공소사실 모두 무죄가 나왔을 경우도 가정할 수 있지만 이 경우 공소사실 동일성 여부는 크게 중요치 않게 된다(물론 대법원의 판단은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그 많은 특수부 인원이 모여 수사한 건데 2차 기소는 허투루 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2차 기소가 무죄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만약 1· 2차 공소사실에 대해 모두 무죄판단이 내려진다면 (그 많은 특수부 인력을 동원한) 검찰은 우스운 꼴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