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들 스스로 뭉쳤다

권리 옹호 당사자 단체 결성…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이 계기

특성화고 학생들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해결하려는 당사자 단체가 드디어 결성된다. 특성화고등학교 권리 연합회(이하 연합회)는 오는 11월 11일 서울시 중구 평화시장에서 정식 출범한다. 연합회는 평화시장에서 특성화고 학생 10만 권리선언을 낭독하고 거리 선언을 한 뒤 창립식을 가질 예정이다. 권리선언은 “우리는 특성화고 학생·출신이라는 이유로 성별·나이·학력 차이를 이유로 차별받고 무시당하지 않아야 하며 부당한 사회적 편견을 바꿀 권리가 있습니다”로 시작한다.

연합회 회원들은 지난해 일어난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직원 사망사건과 콜센터 실습생 자살사건이 연합회 결성의 이유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지난해 6월 김모군은 현장실습을 나갔던 서울메트로의 한 하청업체에 취업했다.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김군은 현장에 출동했고, 스크린도어 안쪽에서 작업하다가 진입하는 열차를 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올해 3월에는 LG유플러스 고객상담센터의 고객 가입 해지를 막는 부서에서 ‘실습’하던 특성화고 3학년 홍모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이상현 연합회 추진위원장(34)은 이전부터 청소년운동 쪽에서 일해오다가 연이은 특성화고 관련 사고를 보고 연합회 결성에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해 구의역에서 사망한 김군 사고 이후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연합회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준비하는 7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7월 26일 연합회 추진위의 첫 기자회견도 구의역 스크린도어 앞에서 열렸다.

지난 7월 26일,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 추진위 소속 학생들이 서울지하철 구의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강윤중 기자

현장실습 작업장 노동착취 개선키로

드러난 수치만 보면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현실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학교알리미 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졸업자들의 취업률은 53.6%다. 언론에서도 특성화고 졸업 이후 꿈을 이룬 사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학생 수도 10만명을 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598개교 10만8190명의 학생들이 3만여개의 기업 현장실습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회 측은 “김군이나 홍양 사건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크고 작은 일들로 특성화고 재학생·졸업생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상적인 차별 외에 특성화고 학생들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것이 바로 현장실습이다. 고등학생 3학년 2학기에 6개월가량 이어지는 현장실습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된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과 맞지 않는 현장실습, 현장실습 작업장의 노동착취 등으로 중간에 ‘실습’을 중단하고 있다. 직업능력평가원에 의하면 소속 학생의 10~30%가 현장실습을 중도에 그만두는 학교가 전체의 38%이며, 학생 30% 이상이 현장실습을 그만두는 학교도 13%에 달한다.

정부에서도 현장실습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8월 25일 ‘직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개선방안의 핵심은 그동안 조기취업이었던 현장실습을 취업준비과정으로 바꾸고, 운영기간도 6개월이 아니라 1개월 내외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장실습에서 학생과 기업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문제로 보고, 근로중심 현장실습이 아니라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바꾸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근로계약 때문에 기업들이 학생들에게 일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만 시키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현장실습에서 학생들은 노동자 신분을 가질 수 있으나, 개선방안에서는 학생 신분만 가능하게 됐다. 학생들에게도 ‘임금’이 아닌 ‘실습수당’을 주는 방향으로 바뀐다. 실습수당에 대해 정부의 개선안은 “독일은 해당 산업분야 정규인력 임금의 약 3분의 1 수준을 지급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습수당은 그동안 학생들이 받던 임금보다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발표 후 9월이 되고 일선 특성화고에서 현장실습이 시작됐다. 9월 연합회 추진위의 첫 활동은 정부의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집담회였다. 9월 3일 열린 집담회에서 학생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 연합회 학생들은 현장실습 자체가 줄어드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학생들은 현장실습은 말 그대로 ‘일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 멘토단이 실무 운영 돕기로

고등학교 1학년 우동섭군은 “학습 중심으로 1개월 이내에 체계적인 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기업들이 학생들을 제대로 볼지 잘 모르겠다. 기업도 학생들 뽑기 싫은데 나라에서 하라고 하니까 안 좋게 볼 것 같다. 특성화고의 장점인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을 나갈 수 있다는 것에서 실습기간이 줄어들면서 단점만 부각된다”고 말했다. 같은 나이의 박종웅군은 “회사에서도 학생들에게 진짜 시키려는 일을 가르쳐야 회사도 좋고 학생도 좋다. 그래서 학생 신분보다는 노동자 신분이 좋은 것 같다. 실제 일을 배우면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ㄱ군은 정부가 특성화고 현장의 불만사항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교육청에서 특성화고에 취업률을 몇 %로 만들라고 할 필요가 없다. 지시가 내려오니까 선생님들이 학생을 다 취업시키려고 한다. 진짜로 취업하고 싶은 학생들을 교육해서 좋은 기업에 취업시키고, 현장실습에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은 더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런데 통계자료에 활용하려고 취업을 시키려고 하는 건 잘못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식 창립대회를 앞둔 연합회 추진위는 특성화고 학생들의 평소 고민들을 널리 알리는 활동에 주력했다. 10월 29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성화고 학생들의 일상적인 차별사례들을 발표했다. 여학생의 경우 외모 차별 발언에 대해 이야기했다. 경기도의 한 특성화고에 다닌다는 ㄴ양은 취업을 앞두고 외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는 “한 선생님이 졸업자들의 취업 현황을 보여주며 ‘얘는 삼성에 갔는데 못생기고 뚱뚱하다. 이런 애도 갔으니 너희도 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금융권으로 가고 싶다고 하니 ‘몸무게도 빼야 하고 예뻐야 한다. 키도 165cm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외모가 취업으로 귀결되는 세상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성북구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은 “인문계 학생의 SNS 글을 봤다. 자신은 야자와 대학입시 때문에 너무 힘든데, 특성화고 학생들은 아무 걱정 없이 지내다가 취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했다. 특성화고 학생들도 아무 걱정 없이 취업하는 게 아니다. 특성화고는 목표가 취업이라서 그게 다를 뿐이다. 개인의 목표와 꿈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합회가 고등학생 단체이기 때문에 상시적으로 유지가 가능할지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이상현 추진위원장은 연합회가 일시적인 운동단체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특성화고 학생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가 되었으면 하는 뜻을 밝혔다. 그는 “연합회에 특성화고 졸업생이나 여러 전문가들이 멘토 활동을 하고 있다. 멘토단은 연합회 운영에 있어서 고등학생들 힘만으로는 실무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나 노동법, 인권에 대한 강의, 상담을 맡는다”며 “창립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사단법인을 세우고, 연합회가 지속될 수 있도록 지원을 할 것이다. 다만 연합회 활동이나 발표문에 들어갈 내용 등은 학생들이 스스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