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노갈등만 부추기는 청년고용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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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임금피크제·해고요건 완화 등 세대갈등 유발하는 노동개혁 추진

청년들의 어제와 오늘은 고용난으로 얼룩져 있다. 통계지표는 청년들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어두울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청년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청년고용 대책만 내놓고 있다.

올해 5월 서울시 노동권익센터는 서울시 청년(15~29세) 가운데 실질적으로 실업상태에 놓인 사람이 총 40만7000명, 청년 실질 실업률은 31.8%라고 발표했다. 공식 통계에서는 실업자로 잡히지 않는 주당 18시간 미만 노동자 등을 포함한 수치다. 서울 청년 3명 가운데 1명이 실질적으로 백수라는 소리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7월 27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 합동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7월 27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청년 고용절벽 해소를 위한 민·관 합동 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서울 청년 3명 중 1명 실질적 백수
공식적인 통계에서도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살펴볼 수 있다. 올해 1월, 서울시가 2014년 고용통계를 발표했다. 지난해 서울시의 전체 청년실업자는 2013년보다 1만7000명이 증가한 10만명으로, 200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청년실업률도 10.3%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조사한 전체 한국 청년의 실업률도 올해 6월 기준으로 10.2%다.

정부가 7월 27일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진단은 더욱 암울하다. 정부의 진단에 따르면 향후 3~4년간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이 한꺼번에 노동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20대 인구는 10만명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상당수는 대학진학률이 최정점에 달했던 2008~2009년 대학 입학생들이다. 갑자기 고학력 취업준비생들이 취업시장에 쏟아진다는 말이다. 청년들의 고용절벽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향후 3년간 2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고용정책의 대상이 될 청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정부의 청년고용대책은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연관이 깊다. 그래서 임금 피크제를 청년고용대책의 일환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기존 노동자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55세 이후로는 일정한 비율에 따라 임금이 점차 내려가는 게 임금 피크제다. 5개 청년단체들은 임금 피크제가 도입돼야 청년고용이 늘어난다며 임금피크제 청년본부를 결성하기도 했다.

노·노갈등만 부추기는 청년고용 대책

임금피크제 청년본부에 소속된 청년들도 정부의 청년고용정책을 완전히 지지하지는 않았다. 신보라 청년을여는미래 대표는 “정부의 고용대책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전체적인 청년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모자란다”고 말했다.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대청련) 대표도 “청년고용대책의 의도 자체에 대해서는 환영한다. 하지만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동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처럼 정부의 청년정책에 비판적인 단체는 아예 “대책 없는 고용대책”이라고 혹평했다.

정부의 청년고용 종합대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종합대책의 맨 마지막 장에 정부가 늘리겠다는 ‘일자리’ 숫자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정확히는 일자리가 아닌 ‘일자리 기회’가 20만개 늘어나는 것이다. 신규채용은 3년간 7만5000명이다. 나머지는 청년인턴, 직업훈련 등이다. 서울시 노동권익센터의 실질 청년 실업률이 현실에 가깝다면, 정부의 대책으로 새롭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청년은 채 20%도 되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 배정된 청년고용 관련 예산에서도 직접 고용과 연결되는 예산 비율은 높지 않았다. 정부는 2015년 추가경정예산에 반영된 고용노동부 예산에서 2479억원이 추가로 청년고용 예산으로 편성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직종훈련 945억원, 일학습병행 204억원 등 청년들이 원하는 전일제 일자리와는 거리가 먼 대책이나 창업지원대책(420억원)에 더 많은 예산이 배정돼 있었다.

‘일자리’와 가장 관련이 있는 예산 항목은 취업성공패키지다. 하지만 취업성공패키지는 청년이 아니라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50% 이하인 저소득층은 연령과 무관하게 지원할 수 있다. 실제 취업성공패키지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례를 보면, 20대의 취업 성공담도 많지만 30대 후반이나 40대 이상의 후기도 있다.

취업성공패키지를 제외하면 고용과 관계된 항목은 해외취업지원이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꿈과 열정을 지닌 청년들이 마음껏 활약합니다’라는 제목 아래 청년 관련 공약들을 발표했다. 공약의 주내용은 2014년까지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고, 기숙사비를 인하하겠다는 등 대학생 관련 내용이었다. 청년고용과 관련 있는 공약은 케이무브(K-move)로 대표되는 해외취업 공약이 거의 전부였다.

청년유니온 “대책없는 고용대책” 혹평
정부는 종합대책을 통해 해외취업으로 3년간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부의 해외취업 지원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은 이미 나왔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2014년 1월부터 8월까지 정부가 1인당 약 2800만원의 예산을 써 645명의 해외취업을 도왔다고 발표했다. 반면 2013년 기준 해외취업자의 평균 연봉은 약 1988만원이었다. 국감 당시 김 의원은 “예산만 낭비하는 K무브 사업의 전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해외취업 지원에 책정된 고용노동부 예산은 추경을 포함해 총 379억원이다.

남는 것은 7만5000개의 신규 일자리뿐이다. 그 핵심은 임금피크제를 통해 창출할 일자리 3만개다. 애초 임금피크제는 청년고용과 관계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에서 임금피크제는 ‘고용안정과 일자리 지키기’ 방안이었다. 만 60세 정년을 법제화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던 것이 어느새 청년고용을 위한 정책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래도 임금피크제 청년본부 인사들은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신보라 대표는 “정년연장만 의무화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청년 신규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임금피크제가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신규채용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줄어든 인건비를 고용으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청년대학생연합 회원들이 지난 5월 28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 청년대학생연합 회원들이 지난 5월 28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앞에서 민주노총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의 선거용 아젠다” 비판도
문유진 복지국가 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단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을 촉진한다는 인과관계가 명확히 있는지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임금피크제의 주된 대상은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정규직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일자리의 양이 과연 청년고용을 증가시킬 만큼 많은지 회의적이다. 정해진 파이를 가지고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갈등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청년유니온의 분석에 따르면 첫 직장을 1년 이하 계약직으로 시작하는 20대 비율이 2008년 11.2%에서 2013년 21.2%로 증가했다. 청년유니온은 “주변부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려 ‘괜찮은 일자리’의 폭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괜찮은 일자리란 국제노동기구(ILO)가 사용하는 개념이다. ILO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인 내용은 나라별·상황별로 다르지만 노동시간과 내용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법과 단체교섭 등 제도적으로 보장된 일자리를 말한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10%의 상위 일자리가 아니라 90%의 일자리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년유니온은 자신들의 청년고용대책 해법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고용보험 강화, 노동감독 강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제시하고 있다. 김성일 청년좌파 대표도 “점점 노동시간이 줄어들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장기적으로 노동시간을 하루 6시간까지 줄이는 일자리 나누기 방안이나 기본소득을 도입해 삶이 불안정한 사람들의 소득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근 대청련 대표는 현 정부의 시선과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는 “노동계에서 ‘해고는 살인’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은 그보다 더한 고통을 받고 있다”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득권’을 해체해야 청년들의 고용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청련은 올해 초부터 민주노총 앞에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 대표는 “청년들이 눈만 높아졌다는 말이 많지만 어느 정도 정당한 경쟁을 한 뒤에 눈을 낮추든가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노조가 이중삼중의 보호막을 쳐둔 상태에서 청년들에게 눈만 낮추라고 소리치는 꼴”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대갈등을 유발하는 정부의 노동개혁에서 정치적인 의도를 읽는 이도 있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용으로 이 어젠다(노동개혁)를 꺼낼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소장은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은 한국 상황에서 노동개혁을 빌미로 소수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립시켜 사회적 긴장을 유발시키면 보수성향 지지층이 결집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이 소장은 “노동개혁에 대한 이견 때문에 야권연대도 삐걱거리게 되면 여권이 얻는 선거 이득도 크다”고 분석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임금 피크제처럼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노동개혁 방안의 최대 피해자는 주변부 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몫을 줄이면 신규고용이 창출될 것이라는 ‘낙수효과’ 개혁안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전체 노동자의 우산 역할을 한다. 임금피크제나 해고요건 완화는 사실 청년노동자 등 주변부에게는 절실한 과제는 아니지만 양대 노총이 무너지면 우산의 바깥쪽에 있는 주변부 노동자들은 더 빠르게 무너지기 때문에 반대한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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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오늘을 생각한다
전 총리 한덕수씨에게 드리는 질문
관료 출신으로 경제와 통상의 요직을 두루 거쳐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고,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사퇴해 공직에서 물러난 자연인 한덕수씨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을 묻는다. 2007년 첫 총리 지명 당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2002~2003년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재직 시절 외환은행 매각 사태(론스타 게이트) 연루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사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첫 총리직과 주미대사를 역임하고 공직에서 물러난 뒤 2012년부터 3년간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며 받은 급여 19억5000만원과 퇴직금 4억원, 2017년부터 5년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고문으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18억원, 2021년 3월부터 1년간 에스오일 사외이사로 재직하며 받은 보수 8000만원 등 퇴직 전관 자격으로 총합 42억3000만원의 재산을 불린 일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지금도 그대로인가? 이처럼 전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다 다시 윤석열 정부의 총리 제안을 수락해 공직으로 복귀한 것 역시 관료로서 부적절한 처신이 아니냐는 문제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