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민주당, 추미애 딜레마 ‘항명과 소신 사이’

노동관계법 일방처리 파문 후 징계방침 확정 불구, 당내외 찬반양론 ‘팽팽’

민주당이 ‘추미애 징계’ 문제를 놓고 시끄럽다. 당 소속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이 당론과 달리 ‘노동조합법’과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한나라당 의원들과 일방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가운데)이 지난해 12월 30일 노조법을 처리하기 위한 환노위 전체회의를 강행하려 하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막고 있다. <우철훈 기자>

민주당 내홍의 핵심은 당론을 어긴 추 위원장에 대해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징계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전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현실론’이 자리 잡고 있다. 단일대오를 유지해도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에 맞서기가 벅찬 상황에서 ‘추미애 변수’가 돌출돼 민주당은 곤혹스런 분위기가 역력하다.

당 윤리위 “사실 확인 후 소명 듣기로”
민주당은 최근 원내대책회의를 열고 추 위원장에 대한 징계 방침을 확정했다. 당 윤리위원회는 이강래 원내대표가 청원한 추 위원장에 대한 징계 요청을 접수해 심의 중이다. 신낙균 당 윤리위원장은 “윤리위에서 먼저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추 위원장의 소명을 들을 것”이라면서 “지도부 주장이 사실이라면 징계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 일부 의원은 원내대표단 및 당 소속 환노위원, 민주노동당 등 다른 야당 의원들의 서명을 받아 국회 윤리위원회(위원장 이한구)에 제소했다.

민주당에 따르면 추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환노위 회의실에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봉쇄하고, 한나라당 의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그는 오후 1시 50분쯤 전체회의를 속개해 오전에 상정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대체토론을 진행한 뒤 표결에 부쳐 18분만인 오후 2시 8분쯤 가결을 선언했다. 당시 회의장에 있던 9명의 의원 가운데 표결에 참석하지 않는 추 위원장을 빼고 한나라당 의원 8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추 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경위 20여 명이 회의장 주변에 배치돼 야당 측 의원들의 진입을 막았다. 노동관계법은 결국 김형오 국회의장이 2010년 1월 1일 새벽에 직권상정, 본회에서 통과됐다.

이에 대해 사태의 당사자인 추 위원장은 “해당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면서 자신을 당내 정쟁의 희생물로 규정했다. 그는 당 지도부와 상의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 “당 대표, 원내 대표, 정책위의장 등과 상의했으나 답변을 들은 적이 없다”면서 “의원 총회에서 당의 대안을 촉구했지만 당은 ‘올 오어 낫싱(전부 아니면 전무)’식으로 오락가락하면서 끝내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상임위 통과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봉쇄했다는 비판에 대해 “민주당 환노위 위원들은 끝장토론을 거부하고 자발적으로 퇴장한 뒤 회의에 임하지 않았다”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출입도 봉쇄한 채 회의를 진행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민주당과 추 위원장의 지루한 ‘진실 게임’ 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추 위원장의 징계 수위가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윤리위가 선택할 수 있는 징계 수위는 ▲경고 ▲당직 자격정지 또는 당직 직위해제 ▲당원 자격정지 ▲제명 등 네 가지다.

“징계 땐 원내정당 자기부정 초래 우려”
헌법에는 국회의원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당사에서 의원이 당론을 어겨 징계를 받은 사례는 종종 있었다. 지난 1969년에는 ‘4·8 항명파동’으로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양순직·예춘호 의원이 제명됐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이 권오병 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내자 박정희 대통령이 공화당 김진만 원내총무를 통해 “부결시키라”고 지시했지만 일부 항명파로 인해 가결됐다. 1999년에는 한나라당 이미경·이수인 의원이 교원노조법과 해외파병안 반대당론을 어기고 찬성표를 던져 제명됐다.

추 위원장의 징계를 놓고 민주당 내에서는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당 지도부 등 주류 의원들은 한나라당과 예산안 투쟁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앞두고 당론에 반하는 단독 플레이를 한 것은 마땅히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비주류 등 일각에서는 현실론을 들어 추 위원장을 구제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회 의원 한 석이 아쉬운 상황에서 추 위원장을 제명하고, 이에 따른 여진이 계속 이어진다면 한나라당에만 좋은 일을 시킨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국회 환노위 소속 김재윤·김상희 의원과 당 노동특별위원장인 홍영표 의원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열고 추 위원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재윤 의원은 “박지원 정책위의장과 지난해 12월 30일 아침에 추 위원장에게 가서 당론을 제안했지만 추 위원장이 수용하지 않았고 상임위를 열었다”고 증언했다. 홍영표 의원은 “추 위원장이 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정부와 한나라당 논리만을 100% 수용하고 이를 불법적으로 날치기했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정세균 대표 등 격앙된 당 지도부와는 달리 박지원 정책위 의장은 “국회의원으로서, 상임위원장으로서 소신도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은 “당내 중진이자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소신을 갖고 중재안을 낸 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정치 전문가들도 추 위원장의 행동과 관련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정치컨설팅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추 위원장의 행동은 당론과 배치되는 적전 분열 행위로, 민주당은 이 일로 인해 정국 대응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면서 “우선 민주당부터 당 차원의 평가와 반성을 하고, 추 위원장 개인에 대한 신상필벌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에 원내 정당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는 민주당이 추 위원장을 징계하면 ‘정책 정당, 원내 정당’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는 견해도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현재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 정책 차이는 별로 없다”면서 “의원들이 교차투표 등 원내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선진 정치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노동관계법 개정안 처리 과정>

▲2009년 10월8일 = 한국노총, 노사정 6자 회의(노동부, 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총, 대한상의, 노사정위) 제안
▲10월29일 = 노사정 6자 첫 대표자회의
▲11월11~24일 = 실무회의 7회, 대표자회의 3회 개최
▲11월25일 = 4차 대표자회의 후 최종 결렬 선언
▲11월30일 = 한국노총 ‘복수노조 반대,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유예’제안 이어 민주노총 제외한 한나라당, 한국노총, 경총, 노동부 4자 회의 개최
▲12월2일 = 한국노총-경총 불참으로 노사정 4자 회의 결렬
▲12월3일 = 현대차그룹, 경총 탈퇴 선언
▲12월2~4일 = 노사정, 노사, 노정 간 수차례 실무회담 개최
▲12월4일 = 노사정 3자 대표자회의, 복수노조 2년6개월 유예 및 내년 7월부터 노조 전임자 ‘타임오프제’적용 합의안 마련
▲12월8일 = 한나라당, 노사정 합의안 토대로 노조법 개정안 국회 제출
▲12월14일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조법 공청회 개최
▲12월15~18일 =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경총ㆍ대한상의ㆍ한국노총ㆍ민주노총 입장 청취
▲12월17일 = 환노위 다자협의체 구성 합의
▲12월19일 = 경제5단체, 노사정 합의 존중 입장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전달
▲12월22일 = 노사정 ‘8인 연석회의’첫 회의서 28일까지 단일안 마련키로 합의
▲12월23일 = 환노위 법안심사소위 노조법 개정안 3건 심사 착수, 2차 연석회의
▲12월24일 = 3차 연석회의 및 환노위 2차 소위
▲12월26일 = 추 위원장 중재안 제시했으나 수용 안됨, 환노위 3차 소위 개최
▲12월27일 = 환노위 4차 소위
▲12월28일 = 환노위 차명진(한나라당) 소위원장과 민주당 김재윤 간사 합의 불발
▲12월29일 = 추 위원장ㆍ임태희 노동장관ㆍ차 소위원장 잠정 합의안 마련
▲12월30일 = 국회 환노위 노조법 개정안 통과
▲2010년 1월1일 = 국회 본회의 통과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