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돌발영상 기자가 받은 ‘돌발 수모’

정직-복직-대기발령-복직-정직 잇달은 징계 ‘이면의 진실’

2005년 5월29일 서울 용산 미8군 기지 앞에서 통일연대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미국의 대북선제공격 계획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2000여 명의 학생과 시위를 막는 젊은 전경들 사이의 몸싸움은 거칠었다. 그런데 이 시위 현장을 보여 주던 방송 카메라가 시위 현장이 아닌 시위를 구경하는 젊은 미군들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격한 몸싸움을 하는 시위대와 전경, 그 장면을 보면서 웃는 젊은 미군들의 모습이 대비됐다.

이 동영상은 YTN ‘돌발영상’에서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슬픈 우리 젊은 날’이다.
돌발영상은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화법이 어떤지를 보여 준 ‘급진전’과 재래시장을 방문한 이 대통령이 상인들의 하소연에 딴 소리를 하는 장면을 포착한 ‘살기 좋은 세상’도 인기를 끌었다. 쌍용차 노조를 경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테이저건, 고무탄총 등을 사용했다고 폭로한 ‘경찰의 진압장비들’도 주목받았다.

“회사 조치는 권력 비판했기 때문”
지난해 방송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청와대의 외압 의혹까지 불렀다. 천주교 사제단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인사들의 명단을 발표하기 1시간 전에 이동관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별 근거가 없다고 미리 해명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대다수의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침묵했을 때 돌발영상은 이 모든 과정을 보여 줬다. 시민들은 돌발영상을 본 후 청와대의 대응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이렇게 돌발영상은 사건의 이면에 어떤 진실이 담겨 있는지 날것 그래도 보여 주면서 풍자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YTN의 인지도를 높인 대표적인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시청자들은 돌발영상의 통쾌함에 박수를 쳤다. 2007년 12월에는 YTN에서 사원에게 주는 가장 큰 상인 YTN 대상이 돌발영상 제작진에게 돌아갔다. YTN이 돌발영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구본홍씨가 낙하산 논란 속에서 YTN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돌발영상은 폐지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고, 제작진은 해고·정직·인사 등으로 모두 흩어졌다.

특히 5년 동안 돌발영상을 만든 임장혁 팀장은 지난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은 이후 복직-대기발령-복직-정직 2개월 등 연달아 징계를 받고 있다. YTN 사측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계속 내보내는 돌발영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임 전 팀장은 현재 사회부로 발령을 받았고, 기자로 돌아왔지만 징계를 받아 일하지 못하고 있다.

임 기자는 사측의 집요한 징계에 대해 “지난해 정직 6개월을 받았을 때는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는 투쟁 과정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사측의 의도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서 “이후의 대기발령과 정직 2개월 조치에 대해 회사에서는 돌발영상을 직접적인 이유로 삼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돌발영상을 통해 권력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외부에서도 돌발영상이 ‘문제’가 됐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임 기자에게 정직 2개월 결정을 내린 인사위원회. 돌발영상 때문에 임 기자와 인사위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인사위원 한 명이 쌍용차 노조 진압 과정을 다룬 영상이 공정성을 잃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른 인사위원들도 돌발영상 내용에 대한 편파성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임 기자는 “요즘 돌발영상을 두고 벌어지는 공정성 논란은 정부에 대한 비판이 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언론 입장에서 국민의 삶에 누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느냐를 보고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대답했다. 임 기자가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8월까지 ‘상급자의 지시 위반’ ‘회사의 명예 실추’ ‘회사 질서 문란’ ‘사장 대행’ 등이었다.

이후 임 기자는 9월17일 배석규 YTN 사장 직무대행을 명예훼손 및 모욕죄로 고소했다. 그는 배 사장 직무대행이 확대간부 회의에서 돌발영상을 악의적으로 내보냈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자신이 몸담은 회사의 사장을 고소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임 기자는 돌발영상의 제작진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장의 발언을 듣고 너무나 억울했다. 5년 동안 돌발영상을 맡아 하면서 YTN 이미지나 재정적으로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돌발영상이 시청자로부터 받고 있는 믿음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장대행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불쑥 그런 말이 나왔고, 수위도 상당히 높았다. 돌발영상 제작진으로서 억울함이 풀릴 때까지 계속 갈 것이다.”

사장 직무대행을 명예훼손으로 고소
임 기자에게 있어 돌발영상은 기자생활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준 공간이다. 그가 돌발영상 제작진에 합류했을 때는 정치부 기자로서 양비론과 기계적인 균형에만 함몰된 비판의 목소리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고민했던 시기다. 당시 돌발영상은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제작하고 있었고, 주목을 받고 있었다. 임 기자는 “잘해도 본전”이라는 생각에 제의를 받아들였을 정도다. 그러나 임 기자는 5년 동안 돌발영상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많이 제기할 수 있었다. 정치부 기자 때 느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돌발영상 제작진은 보통 5, 6명으로 꾸려진다. 4, 5분짜리 돌발영상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 모두 하루에 5, 6시간씩 YTN의 모든 화면을 모니터한다. 사회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이 돌발영상 제작진의 안테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작가들은 어디에 내놔도 시사상식 하나만큼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정치권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는 기자가 보기에 용납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기자들도 정치 생리를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에게는 별 일이 아니어도 일반인이 보기에 충격적인 사건인 때가 많다. 그래서 돌발영상은 일반인의 시선에 맞추도록 노력한다.”

임 기자는 돌발영상을 떠났지만 돌발영상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크다. 돌발영상의 인수인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임으로 생각한 정 모 기자는 해고당했고, 또 다른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대기발령 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정직 2개월 징계가 끝나면 돌발영상 인수인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임 기자는 지난해 처음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과정에서 정직을 당했을 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또 다른 부당한 일들을 겪으면서 냉정해지고 있다.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단언했다.

“기자는 알게 모르게 사회의 기득권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취재를 당하는 입장에 서 보니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다. 왜 우리 이야기가 이렇게 나오지 않을까 라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서 다시 기자로 되돌아가면 취재원을 대하는 것이 달라질 것 같다. 억울한 사연을 알리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됐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