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신이시여! 생명을 구할 힘을 주소서~

소방관의 기도 (A.W.Smokey Lim)

제18회 서울소방활동 사진공모전 대상작. <서울소방재난본부 제공>

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저에게 언제나 만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저희 모든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지키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주소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맥없이 두 동강이 났을 때,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 나는 특전사 대원으로 구조활동에 투입됐다. 그곳에서 인명구조를 하고 있는 구조대원의 모습을 처음 봤다.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이 보람 있는 일로 보였다. 8년 6개월 동안의 군대 생활을 특전사 중사로 마친 후 내가 선택한 일은 자연스럽게 소방관이었다.

1996년 10월 4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특채 4기로 소방관이 됐다. 아내는 내 결정을 반대하지 않았다. 특전사보다 덜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경쟁률이 4 대 1 정도였는데, 얼마 전에 들어온 신입은 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다고 한다. 소방관이 되기도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예전에는 일이 힘들고 근무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만두는 후배도 많았는데, 지금은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운지 쉽게 그만두는 후배가 많이 줄었다.

야근조 때는 하루 3~4시간밖에 못 자
소방관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화재진압, 인명구조, 구급대원의 일을 한다. 내가 현재 맡은 일은 인명구조 역할이다. 화재나 사고가 났을 때 화재진압 요원의 도움을 받아 인명을 구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급박한 현장에 투입되면 화재진압 요원이 인명구조를 할 수도 있고, 인명구조대가 화재진압을 도울 수도 있다.

오늘은 분당 집에서 3시간 정도만 자고 출근했다. 강남소방서에 3교대 근무를 시범 실시했지만, 인력이 부족해 정상적인 3교대 근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번에 바뀐 근무시간표는 복잡하다. 주간·주간(2일), 야간·야간(2일), 휴일(2일)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근무 시간은 주간조의 경우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야간조는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다. 주간조로 일할 때는 덜 힘든데, 야간조로 일하면 아침 퇴근 후에 저녁 6시 출근을 맞추려면 3~4시간밖에 잠을 못 잔다. 오늘은 야간 근무 마지막 날이다. 내일 아침까지 일하면 이틀간의 휴식을 얻는다.

주간조와 교대하기 위해 사무실에 나왔는데, 시사주간지 기자가 나의 하루를 촬영한다고 기다리고 있다. 그 기자는 화재 현장 등 사진이 되는 사건이 터지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기자만 왔다 하면 출동이 많이 줄어든다”고 말했더니, 그 기자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저녁 6시부터 내일 아침 9시까지 어떤 일들이 생길까. 주간조에서 화재진압을 했다고 한다. 화재진압을 할 때 입은 방열복이 계단 난간에 걸려 있고, 출동할 때 사용한 산소통 등 화재진압 도구가 주차장 한 켠에 정리되어 있다. 우리 팀의 정봉채 소방장은 주간조가 화재진압 때 사용한 헬멧을 닦고 있다.

주간조와 교대 후 시설을 점검했다. 차 안에는 구조대가 사용하는 물건이 잘 정리되어 있다. 산소통, 화재진압복, 화재진압용 부츠, 그리고 문을 열 수 있는 도구 등이 실려 있다. 화재진압을 할 때 몸에 걸쳐야 하는 도구를 모두 합하면 30kg정도 된다. 30kg이나 되는 진압도구를 걸치고 고층 건물에 투입될 때는 정말 힘들다. 화재진압 때는 엘리베이터 이용을 금지하여 계단을 이용해서 건물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18:05 | 주간조가 화재진압 도구로 썼던 산소통과 진압복 등을 한쪽에 걸어놓았다.

18:14 | 정봉채 소방장이 주간조가 사용했던 헬멧을 닦고 있다.

18:30 | 정창식 소방교가 주간조와 교대 후 출동 차량의 시설을 점검 중이다.

20:00 | 야간조 근무 첫 출동. 차량에는 출동 현장을 찾을 수 있는 GPS가 설치되어 있다.

21:10 | 출동 후 사무실에 들어와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있는 정창식 소방교.

23:41 | 강남소방서 종합센터에서 사고 접수와 출동 명령을 내린다.

00:20 | 밤은 깊어가고, 셔터가 내려간 소방서 안에는 출동 명령을 기다리는 구조차량의 모습이 보인다.

07:10 |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출동을 받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대원.

08:10 | 주간조와 교대 시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출동한 현장은 20대 여성의 자살이었다.

08:40 | 화재현장 진압 후 물기를 말리느라 계단 난간에 걸어놓은 화재진압복.

09:00 | 야간조와 주간조의 교대 시간. 출동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소방차. (회살표방향순)

몸에 걸치는 화재진압장비만 30kg
사무실에 들어가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나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출동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출동명령 건수는 하루에 10여 건이 발생할 때도 있고, 5~6건의 출동 명령이 떨어질 때도 있다. 출동명령이 떨어지면 어떤 경우라도 나가야 하지만 허탈해지는 경우도 많다. 거리에 있는 휴지통에서 불이 났다고 신고하고, 한강에 너구리가 돌아다닌다고 잡아달라는 경우도 있다. 맨홀에 열쇠가 떨어졌다고 찾아달라고 하고, 문을 열어달라는 신고도 많다. 별의별 사건으로 출동할 때가 많다. 119 구조대원이 동물을 잡으러 다니고, 문을 열어줘야 하고, 쓰레기통 불을 꺼주는 일을 한다고 하면 웃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출동명령이 떨어져 사이렌을 울리고 도로를 질주해야 할 때, 절대 비켜주지 않는 차들을 보면 야속할 때도 많다.

교대 후 저녁 8시, 첫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촬영 나온 기자를 차에 태우니 긴장했다는 걸 느낀다. 사이렌을 켜고 출동 후 5분, 무전기로 “상황이 종결됐다”는 지시가 떨어졌다. 출동명령이 떨어진 후에는 사건 현장에 먼저 도착한 소방서가 일을 처리하는데, 다른 소방서 차량이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것. 차의 방향을 다시 소방서로 향했다. 함께 차량을 타고 갔던 기자는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왜 되돌아오느냐”고 묻는다.

출동 명령을 받을 때마다 두려움을 느낀다. 다치지는 않을까, 인명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등등 생각이 꼬리를 물지만 침착해지려고 한다. 현장에서 두려움에 떨면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대조동 참사 이후 우리 팀도 생사의 고비를 넘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지난 9월 초 새벽, 20층짜리 건물에서 화재가 났다. 발화 지점은 7층. 우리 팀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건물에 투입됐다. 화재진압 요원들은 사다리차를 이용해 외부에서 불을 끄고 있었고, 우리 팀은 병원이 있는 15층에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다 불이 난 7층에 우리가 갇혀버린 것. 뜨거운 열기와 연기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탈출할 통로도 찾지 못했다. 7층 바닥은 화재진압 요원이 뿌린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불 때문에 뜨거워진 것도 모르고, 탈출구를 찾으려고 바닥을 더듬는 순간 손에 화상을 입었다. 후배 역시 뜨거운 열기로 화상을 입고, 한 후배는 연기에 질식해 쓰러져버렸다. 45분 만에 불은 다행히 꺼졌고, 우리 팀원 3명은 중환자실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만일 그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후배는 이 사건 이후 꿈을 꿀 때마다 그때 장면이 나온다고 힘들어하고 있다.

화재 건물 7층에 갇혀 ‘생사의 기로’
소방관들은 이런 큰 사건을 겪으면 ‘외상후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직업병을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외국의 경우 소방서 내에 그런 상담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언제쯤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나 역시 직업병을 앓고 있다. 소방관으로 활동하면서 갈수록 소심해지는 것이다. 집에는 15살, 6살 아이가 있는데 조금만 위험한 행동을 해도 주의를 주곤 한다. 그리고 집을 나올 때마다 가스 점검하고, 화재나 사고가 날 만한 것들을 꼼꼼히 체크한다. 안전사고를 많이 보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다.

출동 명령은 새벽까지 3건이 떨어졌지만, 현장에 도착한 것은 한 건도 없다. 다른 소방서에서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조용하게 끝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팀원이 하나둘씩 대기실로 올라갔다. 모자란 잠을 자기 위해서다. 하지만 출동 명령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자동적으로 일어난다.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것이 야간조의 어려움이다.

새벽 4시 이후 출동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두웠던 거리가 조금씩 밝아지고, 버스가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나 싶었는데, 아침 7시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갇혀 있다고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건물의 전원이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더 놀란 표정이다.

“문 잠겼다”는 신고에 안 좋은 예감이…
소방서로 다시 되돌아온 8시쯤 또 한 건의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가족 한 명이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고, 문은 잠겨 있다는 것. 좋지 않은 예감이 든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경찰이 와 있다. 장비를 챙겨서 집에 들어갔다. 강제로 화장실 문을 여니, 예상했던 것처럼 20대 여성이 목을 매 자살한 것이다. 아마 유명 연예인의 자살수법을 그대로 모방한 모양이다. 우리의 임무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을 구한 것이어서 사람이 죽은 이후에는 철수해야 한다. 사진 촬영을 한다고 들어가려는 기자의 손을 잡고 나왔다. 기자는 자살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 때문에 놀란 듯하다.

사람을 구할 때는 보람을 느끼지만, 사람이 죽은 장면을 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더구나 화재 현장에서 불에 탄 사체를 들고 나와야 할 때, 그것도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사체를 메고 나올 때는 정말 통곡하고 싶다. 기자에게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가슴 한구석에 씁쓸한 기운이 돈다. 교대 1시간을 남겨두고 벌어진 사건이었다.

교대 시간을 앞두고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고 샤워를 했다. 그렇게 또 나의 하루 임무는 끝이 났다. 소방서를 나오는데, 소방서 한 켠에 걸려 있는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가 보였다. 이 시는 미국 캔자스 주에 있는 ‘위치타’ 소방서 소속의 ‘스모키 림(A. W. Smokey Lim)’이라는 소방관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불 속에 갇힌 어린이 세 명을 구하지 못한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이 시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시를 보면서 소방관의 일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주간조와 교대를 마치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으로 향했다.

순직 소방관 유족의 ‘꺼지지 않은 슬픔’
“죽음의 사선 넘나들면서 사명감 투철해져”

지난 8월 22일 서울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로 순진한 소방관의 유족들이 은평초등학교에서 열린 합동 영결식에서 통곡하고 있다. <경향신문>

2001년 3월 서대문구 홍제동의 한 가정집에서 불이나 불을 끄던 중 건물이 무너져 박동규·김기석·장석찬·박상옥·김철홍·박준우 6명의 소방관이 매몰돼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당한 소방관은 건물이 무너질 위험에도 불길 속에 누군가 남아 있을지 모른다며 들어갔고, 안타깝게도 불길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방관의 처우 개선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것이 현실. 유가족의 가슴에 생긴 생채기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2001년 홍제동 참사로 순직한 김철홍 소방장의 형 김재홍씨가 유가족의 지워지지 않는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다수 유가족은 인터뷰를 주저할 정도로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어하고 있다.

가족에게 김철홍 소방장은 어떤 분이었는지. 그리고 남은 가족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다들 그렇듯이, 사무치게 그립고 애틋한 동생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금슬이 좋아 자식이 많습니다. 아들 다섯에 딸 둘을 두셨는데, 그중 막내가 먼저 가게 돼서 형에게 제사상을 받게 됐네요. 아버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동생 순직 후 돌아가셨습니다. 세월이 약이라고 다들 가슴에 묻고 살고 있습니다. 동생은 미혼이었습니다.”

소방관은 사실 위험한 직업인데, 동생이 소방관이 된 계기가 있을까요.
“으레 하는 모범답안처럼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관이 됐다고 말해야 하나요. 처음부터 그런 투철한 사명감으로 소방관이 된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그냥 먹고살기 위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그러다 선택한 길이 소방관입니다. 우리네 소시민이 눈물도 많고 정도 많은지라 매일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다 보면 어느덧 투철한 사명감이 생기고 슈퍼맨이 되겠지요. 그놈의 인정 때문에.”

동생은 어떤 소방관이었습니까.
“생전에 가족들이 화재 현장에 들어가면 앞장서지 말라고 많이 얘기했는데…. 결국 홍제동 화재사고 시 선착대로 들어가서 변을 당하고 말았네요. 그놈의 성질 때문에.”

당시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상황은.
“한마디로 청천벽력이라고 할 수밖에요. 일요일 새벽 5시 30분에 걸려온 전화에 트레이닝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이미 동생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유가족협회를 만들었는데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얼마 동안 활동하다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합니다. 먹고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짬이 나질 않습니다. 다만, 사안이 생기면 그때그때 연락해서 의논하는 정도입니다.”

일반 시민에게 소방관의 유가족으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소방차나 구급차가 출동할 때 길 좀 비켜주세요.”

<정리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