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딸기 1000원”···알리 공습에 유통가 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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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식품·CJ·삼성전자 제품까지 취급하며 이용률 고공행진

중국 플랫폼의 유통생태계 교란·불법·역차별 해소방안 시급

알리익스프레스가 지난해 인기 배우 마동석씨를 모델로 발탁해 TV광고를 시작했다. 알리익스프레스 제공.

알리익스프레스가 지난해 인기 배우 마동석씨를 모델로 발탁해 TV광고를 시작했다. 알리익스프레스 제공.

취업 후 서울 강남구에서 자취 중인 직장인 A씨(30)는 퇴근길에 유튜브로 ‘알리깡’(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에서 구매한 상품을 소개하는 동영상 콘텐츠)을 종종 챙겨본다. 이용자들이 직접 써보고 검증한 상품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그는 “알리익스프레스(알리)에서 청소용품과 수납장, 인테리어 소품 같은 소모품을 주로 산다”며 “배송이 5일가량 걸리고 간혹 흠집 등 하자 있는 상품이 오기도 하지만, 쿠팡에 비하면 가격이 절반 이하로 저렴해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소비자로서는 같은 중국제품을 도매로 구매해 비싸게 파는 국내 업체를 써야 할 이유가 없고, 일부 상품은 ‘0’이 하나 빠진 만큼 싸다”며 “마트나 백화점에서 파는 공산품도 상당수가 ‘메이드 인 차이나’인 만큼 중국산 생활용품을 쓰는 데 심리적 저항감이 없다”고 했다.

중국 직구 플랫폼 알리가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시작한 창립 기념 세일에서는 달걀·딸기 등의 신선식품을 1000원에 팔아 서버가 마비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최근에는 쿠팡과 납품단가로 1년여간 갈등을 빚던 CJ제일제당을 전격 입점시킨 데 이어 삼성전자도 끌어들여 화제가 됐다. 그 외 각 분야의 국내 유명 제조사들이 판로를 넓히기 위해 알리와 입점을 논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알리는 짝퉁 논란을 줄이고 국내 시장 점유율을 높여나갈 예정이다.

■ 알리 앱 이용자 쿠팡 이어 2위

유통업계는 격랑에 휩싸였다. 대형마트를 비롯한 이커머스 업체들은 앞다퉈 초저가 경쟁을 시작했다. 입점·판매 수수료 무료 정책을 내세우며 국내 판매자 확보에 나선 알리에 맞서 국내 업체들도 각종 판매자 우대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IT기업 알리바바그룹을 모회사로 두고 있는 알리는 2018년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해 배우 마동석씨를 모델로 발탁해 초저가·5일 무료배송 등을 내세우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같은 해 10월에는 한국상품 전문관 ‘케이베뉴’를 개설해 상품 영역도 가공·신선식품 등으로 꾸준히 늘리고 있다. 그 결과 국내 이용자도 급증했다. 앱 서비스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올해 2월 알리의 앱 월간 이용자는 81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0% 늘었다. 종합몰 이용자 순위에서도 11번가(736만명)를 제치고 2위에 올라 1위인 쿠팡(3010만명)과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지난해 7월 한국 서비스를 개시한 중국 이커머스 테무도 7개월 만에 581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며 종합몰 이용자 순위 4위에 안착했다. ‘C(China·중국)-커머스의 공습’이라는 말이 회자되는 이유다.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의 자회사인 테무는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 10~20대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알리와 테무 모두 직구 플랫폼으로 중국의 생산공장과 세계 각국의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앴다. 또 천문학적인 광고비와 쇼핑 보조금 등을 쏟아내며 원가 이하로 상품을 팔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테무가 광고비로 빅테크 기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쿠팡이 했던 것처럼 회원 유치와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출혈 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일정 부문 목표를 달성하면 수수료 인상 등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 알리·테무 역차별 논란···소상공인은 줄폐업

이들 업체는 해외 직접구매 방식이라 통관·관세 면제, KC 인증(전기용품 안전인증) 의무 면제 등의 혜택을 받는다. 국내 소비자가 알리를 통해 산 제품의 가격이 150달러(약 20만원)를 넘지 않으면 중국 판매자에게 관세가 붙지 않는다.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국내 판매자는 통관·부가세에 KC 인증까지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니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다. 알리는 전자상거래법과 표시광고법 등 각종 제재에서도 벗어나 있어 국내 업체들은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정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범정부 TF가 만들어졌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산업 육성을 위한 전담 조직을 꾸렸다. 이를 의식한 듯 알리는 향후 3년간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소상공인 판로 지원, 물류센터 구축 등을 한국 정부에 제시했다.

국내 업체들은 아무리 이윤을 낮춰도 중국과 가격 경쟁을 하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게다가 중국 플랫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해 세계 각국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국내 유통업계에서는 중국 플랫폼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기 시작하면 국내 플랫폼 업체와 소상공인 및 제조업체들이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알리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폐업하는 국내 중소 인터넷 통신판매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통신판매업체는 7만8580곳으로, 전년보다 37.3% 늘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는 2월까지 2만4035곳이 문을 닫았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 업체들의 불법과 역차별을 막아 국내 기업과 같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한국 진출을 막을 수 없는 만큼 국내 브랜드가 세계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제품·서비스 경쟁력을 높여 역직구(해외 직접 판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C-커머스 규제에 나섰다. 미국에서는 테무를 겨냥해 직구 상품에 대한 무관세 기준을 낮추는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 정부는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은 위구르족이나 소수민족의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나 이를 취급한 기업의 모든 제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법이다. 유럽연합(EU)은 플랫폼을 규제하는 디지털서비스법을 근거로 알리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알리가 가짜 의약품 등의 판매금지 약관을 어기고 미성년자의 음란물 접근 차단을 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독일에서는 테무가 판매하는 의류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나와 이를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향후 알리가 로켓배송을 시작하고 틱톡숍이 이커머스 사업을 국내에서도 시작하면 유통을 둘러싼 제조업, 물류, 소상공인 등에 구조적인 산업변화가 불가피하다”며 “유통 생태계 교란에 맞서 나무가 아닌 숲(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정책적 논의가 필요할 때”라고 당부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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