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 은행권, 해결사로 등판한 조용병

금융지주 회장 출신으론 처음…상생금융 방안 마련 시급

조용병 은행연합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이 지난 12월 1일 은행연합회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은행권은 이자장사로 손쉽게 돈을 번다는 비판을 받는다. 조 회장은 당국과 상생금융 규모를 조율하면서 은행권 입장도 대변해야 한다. 은행권에선 조 회장이 금융당국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단독 후보 추천과 만장일치 선출

조 회장은 역대 은행연합회장 14명 중 민간 출신으로는 5번째, 4대 금융지주 회장 출신으로는 첫 연합회장이다. 당초 은행연합회장 후보군에선 조 회장을 포함해 5명 정도가 경합을 벌였다. 박진회 전 한국씨티은행장, 손병환 전 NH금융지주 회장,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이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11월 16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와 이사회를 열어 조 회장을 단독 후보로 선임한 후 의결했다. 회의에는 시중은행과 특수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은행 등 은행장 11명이 참석했다. 조 회장은 이후 11월 27일 연합회 사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회추위는 당시 조 회장을 최종 후보로 낙점하면서 “조 후보자는 금융산업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탁월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은행산업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고 대내외 불확실성에 직면한 은행산업의 발전에 기여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회추위가 언급한 ‘현안’이자 시급한 과제는 ‘상생금융 방안 마련’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은행권은 ‘공공의 적’이자 성토의 대상이다. 은행들이 독과점 구조에서 고금리 이자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의 공통된 인식이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자발적인 사회공헌 확대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과 금융사 CEO들이 만난 11월 20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회사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 범위에서 코로나19 종료 이후 높아진 ‘이자 부담 증가분의 일정 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말했다.

일주일 후 11월 27일 또다시 열린 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상생금융 방안의 진척 상황을 점검한 후 내실 있는 지원책 마련을 추가 주문했다. 은행권에선 총 2조원대 규모의 상생금융 최종안을 연내 마련해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자 감면 폭을 늘리고 지원 대상을 저소득 청년과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현재 자영업자·소상공인의 7% 이상 고금리 사업자 대출을 5.5% 이하 저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소상공인 저금리 대환 대출의 경우 이자 감면 규모가 크지 않아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보험업계 역시 1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이자 부담 경감 등이 포함된 상생금융 방안이 현재 은행권의 가장 큰 현안이다. 조만간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개선해 나가야 하는 과제도 조 회장 앞에 놓여 있다. 한 은행권 인사는 “은행업은 국민 신뢰를 기반으로 이익을 거두는 산업이다. 최근 몇 년간 고금리로 국민은 힘들어하는데 은행권은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은행이 뭘 잘못한 것은 없지만 국민 여론은 ‘은행들이 이자장사로 떼돈을 벌고 있다’는 인식이 점점 고착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새로 취임한 조 회장이 풀어야 할 주요 현안이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왼쪽)이 지난 11월 27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뱅커스클럽에서 열린 금융위·금감원·은행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연합뉴스

“은행 입장 적극 대변 기대”

1957년 대전 출생인 조 회장은 1984년 신한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뉴욕지점장, 리테일부문장 부행장,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사장, 신한은행장을 거쳐 신한금융지주 회장(2017년 3월∼2023년 3월)을 지냈다.

지난해 12월 조 회장이 돌연 ‘용퇴’ 의사를 밝히기 전까진 금융권에선 당연히 조 회장이 3연임에 도전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한금융은 역대 최대 이익을 거뒀고, 3연임의 발목을 잡았던 자신의 부정채용 의혹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법리스크도 덜어냈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신한은행장 재임 시기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 관여하고 점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조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대외적인 이유는 지난해 11월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그러나 ‘장기 집권’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금융당국의 사퇴 압박에 결국 연임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조 회장은 당시 용퇴를 결단한 배경을 묻자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사모펀드 사태로) 우리 고객들이 피해를 많이 본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제재심에서 주의를 받았지만 누군가는 이런 것을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고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조 회장의 용퇴 결정 직후 “조 회장의 경우엔 3연임을 할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거꾸로 후배에게 기회를 주는 결정을 보면서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금융권에선 조 회장이 3연임을 중도 포기하면서 당국의 외압 의혹을 부인하는 등 비교적 당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장은 규제 권한을 갖고 있는 당국을 상대로 은행권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러기 위해선 당국과의 원만한 관계가 중요한데, 그런 측면에서 조 회장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은행권으로선 정치권과 당국의 압박이 큰 상황에서 관료 출신보다는 민간 출신 인사가 은행연합회장으로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장들이 힘 있고 연줄 있는 관료 출신 인사가 아닌 순수 민간 출신 지주 회장을 연합회장으로 뽑았다는 것은 관의 입장에서 은행들을 바라볼 게 아니라 은행 입장에서 관을 상대해 달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