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2공항 ‘급물살’ 산업논리로 ‘급발진’?

도민들 “환경·생태보호 대책 여전히 부실”…대안 검토 없이 졸속추진 우려

지난 정부에서 사실상 추진이 중단된 제주2공항 건설사업이 새해 들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1월 5일 환경부에 ‘제주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다시 제출하면서 재차 사업 추진에 나섰다. 국토부는 2019년 9월에도 본안을 환경부에 내고 협의를 시도했다. 환경부는 국토부에 수차례 사업지 주변 생태·환경 보호 대책 등 보완을 요구한 끝에 2021년 7월 본안을 최종 반려했다.

제주 제2공항 사업예정지로 확정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 전경. 강윤중 기자

18개월 만에 재추진되는 제주2공항 사업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모든 분야에서 ‘산업’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2공항 신설의 주된 이유는 포화상태인 현 제주국제공항(이하 제주공항)의 여객수요를 분산한다는 목적 외에도 ‘관광산업 육성’이라는 부가효과가 포함돼 있다. 산업을 강조하는 정부 기조에 맞춰 본안을 심의하는 환경부의 올해 대통령 업무보고 화두도 ‘녹색산업’이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제주도지사 재임 시절 제주2공항 건립 필요성을 강조했던 원희룡 장관이 이끌고 있다.

제주2공항 건설을 반대해온 제주도민 및 환경·시민단체 등은 이번에 제출된 본안을 놓고 여전히 ‘부실’ 의혹을 제기 중이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본안 협의 과정에서 제주도가 소외되고 있다”며 절차에 문제를 제기한다. 공항 건설사업은 필연적으로 많은 환경·생태 파괴 문제를 불러온다. 제주도는 국내 첫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하다. 정부가 반대 의견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채 사업을 추진할 경우 제주2공항은 ‘급물살’은커녕 ‘급발진’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포화상태 달한 제주공항, 해결책 필요

제주2공항 건설의 찬반 문제를 떠나 제주공항의 수용 능력이 한계에 도달해 있어 어떤 방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큰 이견이 없다. 제주공항은 일제강점기부터 운항을 시작해 1968년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으로 개항한 뒤 2003년 연간 이용객(출발 및 도착 기준) 1000만 시대를 맞았다. 이후 저비용항공사(LCC)의 등장, 국내외 관광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10년 만인 2013년에 2000만 이용객을 돌파했다. 3000만명을 넘기까진 단 6년이 걸렸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엔 3131만명이 제주공항을 이용해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2019년까지 여러 차례 확충공사를 마친 제주공항의 연간 최대 여객수용능력은 3170만명이다. 2019년을 기준으로 하면 여객수용률이 98.7%로 포화상태였다. 제주2공항 건립이 한때 탄력을 받았던 시점도 바로 2019년이었다. 코로나19 창궐로 관광수요가 위축되면서 제주공항 이용객은 2020년에 2100만명으로 1년새 1000만명 이상 줄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제주2공항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국토부가 제출한 본안도 환경부로부터 최종 반려되면서 제2공항 사업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가 싶었다.

제주공항의 이용객 감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빠른 백신 보급으로 2021년부터 ‘단계적 일상회복’이 시작되면서 제주공항도 예년의 북적임을 되찾았다. 2021년 이용객은 2580만명, 2022년 이용객은 2970만명을 각각 기록했다. 국토부가 새해 들어 본안을 다시 제출하고 제주2공항 사업에 불씨를 지핀 배경에는 이 같은 관광수요 회복도 있다.

항공 안전 측면에서도 활주로 혼잡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제주공항은 ‘X’자 형태로 교차된 동서방향 주활주로 1본(3120m)과 남북방향 보조활주로 1본(1910m) 등 2개의 활주로를 가지고 있다. 보조활주로는 이착륙 시 기술적 문제 등으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주활주로만 사용하다 보니 현재 관제시스템상 적정한 항공기 이착륙 수용 능력은 연간 17만2000편 수준이다. 이에 반해 공항 이용객이 가장 많았던 2019년에는 이착륙한 항공기가 17만5366편으로 적정 수용 능력을 넘어섰다. 항공기가 몰리는 주말 등 첨두(尖頭)시간대에는 약 1.67분당 1대(1시간당 36대)가 뜨고 내리기도 한다. 지난해 제주공항 이착륙 항공기는 16만9600여편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치를 회복했다.

“제2공항이 해법” vs “대안도 찾아봐야”

제주공항 포화문제의 해법을 놓고 정부와 반대 측 도민·환경단체 등의 의견은 엇갈린다. 정부는 제2공항 건립을 유일한 해법으로 본다. 반대 측에선 기존 공항 확충 등 다른 대안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15년 11월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 일대를 제주2공항 사업지로 확정했다. 2017년까지 이어진 사전타당성검토(사타)·예비타당성검토(예타)에서 연구용역 등을 통해 정부가 검토한 방안은 ▲기존 제주공항의 확장 ▲제2공항 건립 ▲대규모 신공항 신설 후 기존 공항 폐쇄 등 크게 세 가지다. 정치권에서 한때 대한항공 소유의 제주 정석비행장에 제2공항을 조성하는 방안도 거론했지만 항공기 공역이 제주공항과 겹치고, 조성과정에서 주변 오름의 절개 및 보상문제 등으로 지금은 논외 대상이 됐다.

제주공항 확장의 경우 여객청사만 늘려서는 해결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활주로의 신설 내지는 연장이 동반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주활주로를 하나 더 놓는 방법이지만 주활주로를 신설해도 향후 예상되는 수요(2055년 기준 여객 4100만명, 항공기 25만8000편)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이유 등으로 사업타당성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해안가를 일부 매립해 남북방향 보조활주로를 600m가량 연장한 뒤 이착륙용으로 쓰는 방안도 같은 이유로 제외됐다. 공항 북측 해안을 매립해 활주로와 주기장, 청사 등을 별도로 신축하는 방안은 막대한 예산(9조여원) 및 매립에 따른 광범위한 해양생태계 파괴 우려가 있어 부적절하다고 정부가 결론 내렸다.

대규모 신공항 건설은 약 693만㎡(210만평)의 부지에 주활주로 2본을 갖춘 통합공항을 조성한 뒤 제주공항을 폐쇄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7조원대로 예상되는 과다한 사업비, 대형 공항 건립에 따른 환경 훼손 문제에 더해 제주공항 폐쇄 시 구도심 지역경제 붕괴 우려 등을 제주도 측이 제기했다. 이에 신공항 건설을 염두에 둔 입지 검토 등은 별도로 진행되지 않았다.

남은 건 제주2공항 건설이다. 국토부는 “제주공항은 2019년에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었고, 항공기 안전사고 위험성도 상존하고 있다”며 “항공기 출발·도착 지연과 활주로·터미널 혼잡이 상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등 국민 불편이 초래되고 있어 제2공항 건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주2공항 건립에 반대하는 제주제2공항반대도민행동, 제2공항성산읍반대대책위원회 등은 정부가 다른 대안은 심도 있게 검토하지 않고 ‘제2공항 건립’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사업타당성검토 과정에서 정부가 ‘ADPi(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 보고서’를 고의로 삭제했다는 의혹을 2019년에 제기했다.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아 ADPi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현재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보조활주로를 주활주로와 교차로 병행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관제설비와 시스템 개선, 인력 증원 및 조종사 교육 등 19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는 전제에서다. 도민행동은 “보조활주로를 병행 사용할 경우 시간당 최대 60편의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연간 여객수용능력은 4560만명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ADPi는 전망했다”며 “이는 정부 목표치를 상회하는 수준임에도 사업타당성검토 과정에서 보고서가 삭제됐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자 국토부는 보고서를 공개한 뒤 “ADPi는 보조활주로 사용으로 인한 항공기 간 사고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어 대안으로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뒤늦게 보고서를 공개한 이유로 국토부는 “ADPi의 동의가 있어야 공개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해명에도 도민행동 등은 ADPi가 제시한 방안이 여전히 검토 가능한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도민행동 관계자는 “꼭 ADPi 보고서만 맞다는 게 아니라 여러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봐야 한다는 것”이라며 “왜 제2공항 건설만을 해답으로 정해놓고 서둘러 사업을 추진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대책 부실”…제주도 ‘패싱’ 논란도

국토부는 환경부에 다시 제출한 본안에서 과거 지적받은 환경·생태보호대책을 보강했다고 밝혔다. 사업 예정지 주변 철새도래지 등의 ‘조류와 서식지 보호’ 방안으로 국토부는 “공항으로부터 적정거리 지역에 대체서식지 등 우수한 조류서식 여건을 조성해 조류를 공항 경계 외로 유인하는 등 항공 안전과 조류 보호가 최대한 조화롭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제주 제2공항 사업예정지 주변인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신천리 해안가에 철새들이 모여 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제공

항공기 소음 영향 조사도 강화해 반영했고, 법정보호종인 맹꽁이에 대해선 “맹꽁이에게 영향을 최소화하는 포획·이주방안 등 안정적인 이주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항 건설로 인한 주변 숨골 및 지하수 영향 문제에 대해 국토부는 “보전 가능한 숨골은 최대한 보전하되 대체 저류지 확보와 주변 동식물 이주 등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제시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그러나 환경부에 제출한 본안, 혹은 관련 연구용역보고서를 공개해달라는 제주도와 시민단체 등의 요구에는 “협의가 끝나면 공개하겠다”며 거부했다.

시민단체들은 본안의 부실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김정도 제주환경연합 정책국장은 “사업 예정지에 멸종위기종만 수십 종에 달하는데 단기간에 지표조사를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라며 “4곳에 달하는 철새도래지도 이주시킨다는데 그런 기술이 있는지, 그게 한두 해에 가능한 일인지도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하천이 없는 성산지역 특성상 숨골은 물길 역할을 하고 있고, 그 자체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며 “아직 숨골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는데 성급하게 졸속추진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도 측도 반발하고 있다. 국토부가 본안을 재제출한 직후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성명을 내고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 보완 관련 연구용역 결과를 올해 안에 낱낱이 공개해달라”고 밝혔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연간 1500만 관광객이 찾는 제주도에 큰 영향을 주는 대형사업을 지금처럼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추진하는 건 옳지 않다”며 “정보가 있다면 공개해 도민들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본안의 법정협의기간은 40일이다. 보완이 필요할 경우 협의기간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이르면 2월 중에라도 결론이 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본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사업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후 과정에서 제주도가 주관해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등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있다”고 밝혔다. 가장 최근인 2021년 2월 실시한 제주2공항 관련 제주도민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는 ‘반대’가 47%로 ‘찬성’(44.1%)을 앞섰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