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까다롭게’ 정책기조 유지… 가계부채 관리 강화
“가계부채 관리 강화는 환영받기 어려운 인기 없는 정책입니다. 그러나 가계부채 위험 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10월 26일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을 브리핑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금융위원회가 내놓은 가계부채 대책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금융과 경제 불확실성이 더 크게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현시점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잡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
이번 대책의 골자는 “대출을 내줄 때 빌리는 사람의 상환 능력을 더 따져 보겠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대출을 까다롭게 하는 최근 정책 기조의 연장선상이다. 이를 통해 내년도 가계부채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근접한 4~5%대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 당국의 목표다.
상환 능력 더 철저히 따진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의 핵심을 요약하면 돈을 빌리는 사람이 실제 갚을 수 있는 수준까지만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를 “상환 능력 중심 대출 관행의 확고한 정착”으로 표현했다. 기존엔 담보 위주로 대출을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차주(빌리는 사람)를 단위로 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에 더 무게중심을 주겠다는 구상이 담겼다. DSR이란 소득 대비 갚아야 할 원리금 비율을 말한다. 현재 차주단위 DSR은 은행을 기준으로 40%다. ‘DSR 40%’라면 연소득 5000만원인 사람의 경우 1년 동안 갚아야 할 모든 대출의 원리금이 2000만원을 넘어설 수 없다.
현재 시행 중인 차주단위 DSR은 1단계로서, 1억원 초과하거나 규제지역 6억원 초과 주택에 대한 대출만 차주단위 DSR를 적용한다. 2단계는 2억원 초과 대출에 대해, 3단계는 1억원 초과 대출에 대해 DSR을 적용한다. 하지만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는 2단계와 3단계 시행 일정을 확 앞당겼다. 당초 내년 7월 시행 예정이었던 2단계는 내년 1월, 2023년 7월부터 시행하려던 3단계는 내년 7월에 조기 시행하는 것으로 바꾼 것이다. 예를 들어 내년 1월 기존 대출 총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이 추가 대출을 신청할 경우, DSR이 이미 40%를 초과한 상태거나, 추가 대출로 DSR이 40%를 넘어서게 되면 대출을 더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대출액이 2억원 이상인 차주는 전체의 13.2% 정도다. 따라서 취약·서민계층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려워졌다. 제2금융권 DSR 기준은 현재 60%인데, 이를 내년부터 50%(보험·카드사)까지 내리기로 했다. 캐피탈·저축은행 DSR 또한 90%에서 65%로 하향했다. 내년도 소득 수준이 올해와 같다면 빌릴 수 있는 금액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또 내년부터 차주단위 DSR를 산정할 때 카드론도 신규 포함하고, 마이너스통장은 실제 사용 금액이 아니라 한도금액을 기준으로 DSR을 산정하기로 해 전반적으로 대출 규모가 줄어들 전망이다.
소급 적용 없어… 예외는? 기존에 총대출액이 2억원을 넘어서는 경우는 초과분만큼을 반환해야 하느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금융당국은 “소급은 없다”고 못 박았다. 금융위는 “신규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부터 새로운 규제 방식이 적용된다”며 “기존의 대출에 소급 적용해 대출을 회수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또 차주단위 DSR 2단계 시행일 전에 분양돼 잔금 대출을 받으려고 할 때, 2단계 시행일인 내년 1월 이전까지 입주자 모집 공고가 있었다면 공고일 당시 규정을 적용해 총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더라도 차주단위 DSR을 적용하지 않는다. 단 내년 1월 이후의 신규 대출은 적용 대상이다.
전세보증금 대출은 DSR 적용에서 예외다. 금융위는 “전세대출 전면 중단 가능성에 대한 시장 우려가 높아 관리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서민금융상품(징검다리론, 대학생·청년 햇살론 등)과 300만원 이하 소액 신용대출, 주택연금, 정책대출 등도 DSR 산정 대상에서 제외됐다.
신용대출을 갱신할 때 기한을 연장하거나 금리·만기 조건만 변경하는 경우도 대상이 아니다. 신규 대출 건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단 기존 대출을 증액하는 경우는 신규 대출로 취급돼 DSR을 적용받는다. 아울러 이번 대책으로 신용대출 DSR 계산법이 만기를 ‘7년’으로 가정하던 것에서 ‘5년’으로 줄어들었다. 한해에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커지게 되므로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커지는 가계대출 우려 정부가 가계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가계부채가 규모가 너무 빨리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미국이 테이퍼링을 앞당길 것으로 보이면서 자칫 국내 금융 건전성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금융위는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를 위협할 최대 잠재위험 요인”이라고 밝혔다. 주요국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 변화를 보면, 2016년 말에서 2021년 6월 말 사이 한국은 87.3%에서 104.2%로 뛰었다. 같은 기간 일본(57.3→63.9%), 독일(52.9→57.8%), 미국(77.5→79.2%)에 비하면 증가폭이 크다. 전년 동기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9년(4.1%)에서 지난해 7.9%, 올해 2분기 10.3%로 갈수록 가팔라지고 있다.
금융위는 만기 일시상환이 아닌 분할상환 대출 구조가 확대되도록 유도하겠다고도 했다. 이렇게 되면 가계대출 총액을 줄이는 효과가 발생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과도한 부채를 가지고 자산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국내외적인 경제·금융 상황 변화 가능성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DSR 강화 시행시기를 앞당긴 것과 분할상환을 유도한다는 방향성은 고육지책인 동시에 지난 4월 대책보다는 진일보한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전세대출이 DSR 규제에서 제외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같은 결정이 ‘실수요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에 부합하려면 가계대출을 조이는 한편으로 복지 확대와 주거 정책도 연동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