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일어나면 여당에 불리·극적 타결 땐 유리
이번 총선도 4년 전처럼 ‘보건·의료’ 이슈가 여야의 승패를 좌우하게 될까. 지난 총선(2020년 21대 총선)은 ‘코로나19 사태’가 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당시 ‘해외입국 원천봉쇄’를 주장한 야당(미래통합당)과 정부의 방역 대응을 옹호한 여당(더불어민주당)이 맞붙었다. 유권자들은 1차 대유행을 막은 문재인 정부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그 결과 민주당이 압승했다.
4년 전 코로나19 이슈보다 영향 적어
공교롭게도 4년 뒤 올해 총선에서도 윤석열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 추진이라는 보건·의료 이슈가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일 내년도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는 안을 확정해 발표했고, 의대 교수들이 이에 항의해 집단 사직을 예고했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의·정이 정면충돌해 총선 막바지에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점차 커졌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이종섭 주호주대사(전 국방부 장관)와 황상무 전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의 리스크(위험)가 어느 정도 가라앉게 되면 ‘의료계 집단행동’이 가장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철현 정치평론가 역시 “의사 증원이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국민의힘에는 가장 큰 총선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여당으로서는 지난 2월 말·3월 초의 유리한 국면을 되살릴 수 있는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최근 국민의힘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선거 판세 속에서 “만일 의·정의 극적 타결이 이뤄지면 보수가 결집하고 중도 일부가 합류해 국민의힘이 제1당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김 평론가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의사 증원을) 밀어붙이고 여당에서는 정략적으로 거리 두기를 하는 모양새를 보인다”면서 “대통령실에서 소극적인 여당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진단했다. 엇갈린 처지로 인해 대통령실의 의대 입학 정원 증원 추진이 여당의 선거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유권자들에게 있어 대통령과 정당은 구분이 된다”면서 “(의사 증원 문제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 상승에는 이득이 될지는 몰라도 총선을 앞둔 여당과는 별개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야당인 민주당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정원 확대에는 찬성하면서도 의·정의 충분한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충돌이나 의료대란 같은 극한 대결을 피하자는 것이다. 홍 소장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면 양당 의견이 찬반으로 갈려야 하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어정쩡한 입장이 민주당 득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역설적으로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김포지역의 서울특별시 편입 문제처럼 민주당이 여당의 정책을 사실상 따라가는 모양새를 취하면 총선에 득인지 실인지 계산이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총선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가 큰 쟁점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양당의 입장이 대립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상대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 문제의 영향권은 4년 전 코로나19 이슈보다 넓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는 전 국민이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렸는데 의대 정원 확대 문제로 인한 의·정 갈등은 환자와 환자 가족 등으로 피해 범위가 제한적이다. 따라서 총선에 미치는 여파가 그렇게 크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홍 소장은 “코로나19는 외생변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사태지만, 의·정 대립은 정책 충돌로, 여러 가지 소통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인위적인 방식으로 해결될 여지가 많다는 점에서 총선에 파괴적인 이슈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계 집단행동 사태는 이종섭·황상무 사태와도 묘하게 맞물려 있다. 앞서 의사 증원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바람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됐다. 의대 정원 확대 방침 발표 이후 윤석열 정부의 국정 지지율은 20%대 하강 국면(갤럽 정기여론조사)에서 30%대(2월 3주차 조사)로 반등했다. 대통령 직무수행 긍정 평가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2월 4주차 조사)를 손꼽는 비율도 높아졌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런 가운데 이·황 사태가 벌어졌고, 선거국면에 두 사안은 복잡하게 얽혔다. 민주당 측 보건복지위 관계자는 “의사 증원 정책이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으나 검찰 정권의 강압적 추진이 오히려 역기능을 낳고 있다”고 평가했다. 의료계와의 소통 방식이 대화와 절충·협상이 아닌 수사기관의 수사 압박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은 검찰 정권의 국정 운영 방식이 두 사안에서 똑같이 일방적인 지시와 강행으로 나타나면서 부작용이 더 커졌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 일방적 추진에 피로감”
의료계의 저항과 진료 차질을 충분히 예상하고도 윤석열 정부가 대책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점은 비판받고 있다. 그 때문에 국민 건강에 대해 불안감만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안 대표는 “이번 사태는 대통령실과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당리당략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여당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안 대표는 또 “대통령실의 일방적 추진이 국민에게 피로감을 안기고, 오히려 의료계 현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렇게 막무가내식으로 해결하려는가라는 의문을 낳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의대 교수들이 집단으로 사직하게 되면, 한 달 이상 전공의의 이탈 공백으로 지친 병원에 의료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의료대란으로 인한 불똥이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정부뿐만 아니라 여권에도 쏟아질 수도 있다. 최병천 소장은 “‘의대 정원 극적 타결’은 국민의힘에 도움이 되고, 반대로 윤석열 정부와 의료계가 정면으로 맞붙어 의료대란이 일어나게 되면 국민의힘에 불리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