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격수 간 맞대결’ 유례없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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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이재명 잡으려 원희룡…민주, 윤희숙 상대하려 전현희

서울 중구·성동구갑 저격수 구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부터),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연합뉴스, 경향신문

서울 중구·성동구갑 저격수 구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부터),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연합뉴스, 경향신문

“국민의힘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잡기 위해 경제전문가인 윤희숙 전 의원을 ‘저격수’로 보냈는데, 굳이 ‘86 심판론’ 프레임에 말려들어 갈 이유가 있나요.”

서울 중구·성동구갑 공천 논란이 한창 지속하던 지난 2월 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 핵심 인사가 한 말이다. 친문과 86세대의 상징으로 떠오른 임 전 비서실장을 국민의힘 의도대로 윤 전 의원의 저격 대상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임 전 비서실장이 다른 지역구(서울 송파갑) 공천을 거부했고, 민주당은 저격수 윤 전 의원을 상대하기 위해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이라는 또 다른 저격수를 선택했다.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으로 의원직에서 물러난 윤 전 의원의 약점을 파고들기 위해, 당시 이 사실을 조사한 권익위의 수장을 데리고 온 것이다. 이런 저격수 간 맞대결 구도는 역대 선거를 봐도 유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 때문에 이 지역구는 이번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곳이 됐다. 어쩌면 민주당의 의도로 선거판은 정리됐으나, 경제 이슈와 농지법 위반 이슈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만만치가 않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국민의힘에서는 부동산이나 세금 이슈가 관심사인 한강벨트 지역구에 주로 경제전문가를 보낸다는 계획적인 전략이 있는 반면, 민주당은 단순히 윤 전 의원을 잡겠다는 의도만 보인다”며 저격수 간 대결을 분석했다. 게다가 전 전 위원장을 후보로 앉히는 과정에서 임 전 실장이 반발하면서 민주당의 지지를 오히려 소모하는 상황으로 변해버렸다. 2년 전 지방선거에서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3선에 성공할 정도로 민주당 우세 지역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승부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애초 국민의힘이 노린 영등포·동작·마포·용산·성동·광진 등 한강벨트 공략의 거점이 성동갑에 마련된 셈이 됐다. 엄 소장은 “중구·성동갑의 격전은 그동안 국민의힘 열세 지역이었던 동대문·강북·중랑 등 강북 동부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인천 계양을 ‘명·룡 대전’

인천 계양을 총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계양축구협회 시무식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계양을 총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이 지난달 계양축구협회 시무식에서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보다 먼저 ‘저격수 전략’을 구사한 국민의힘의 대표 저격수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본인이 이재명 대표의 선거구인 인천 계양을을 선택해 이른바 ‘명·룡 대전’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자신이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맞서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하겠다는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다. 공천 결과는 총선 승패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의 의도대로 가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텃밭의 불리를 딛고 원 전 장관이 이 대표의 지지율을 따라붙고 있다. 정치평론가들은 여전히 이 대표의 승리를 점치고 있지만, 공천 효과는 만만치 않다. 첫째는 중량감 있는 인사(원 후보)가 등장해 이 대표가 지역구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전국 지원 유세를 차단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는 국민의힘에 열세 지역이었던 인천 지역구에 난데없이 활기가 돌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공천 분란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텃밭인 부평을에 홍영표 의원이 컷오프·탈당 후 출마를 선언한 터라 인천 전 지역구가 격전지로 변해버렸다. 엄 소장은 “저격수가 반드시 상대방을 저격시켜야만 이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 전 장관이 해당 지역구를 격전지로 만들고, 인근 지역구에 영향을 주는 저격수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격수는 야구의 희생번트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저격수인 함운경 후보(민주화운동동지회장)가 번트를 대기 위해 나섰다. 역시 86세대 출신인 정청래 의원을 상대하기 위해 민주당 텃밭인 서울 마포을에 뛰어든 것이다. 큰 관심이 없었던 이 지역구가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함 회장) 대 건국대 학생운동권의 대결장으로 뜨거워졌다. 강북 서부 지역에 ‘불쏘시개’로 등장한 함 후보 때문에 마포·서대문·은평의 지형도 심상치 않다. 국민의힘에서는 이곳에 박진 전 외교부 장관(서대문을), 이용호 의원(서대문갑)을 재배치했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표현도 나왔지만 정치판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중진 인사를 배치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국민의힘 현역 재배치 3인방. 왼쪽부터 서병수·김태호·조해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경향신문

국민의힘 현역 재배치 3인방. 왼쪽부터 서병수·김태호·조해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경향신문

국민의힘은 이름이 널리 알려진 중진 의원을 민주당의 거점 지역에 재배치하는 전략을 썼다. 부산·경남(PK) 지역에서 그나마 힘들게 버티고 있는 민주당 현역 의원 지역구를 공략하기 위해 김태호 의원(김두관 의원 지역구인 경남 양산을)·서병수 의원(전재수 의원 지역구인 부산 북강서갑)·조해진 의원(김정호 의원 지역구인 김해을)에 재배치한 것이다. 김 의원은 경남도지사, 서 의원은 부산시장을 지낸 광역단체장 출신이다. 조 의원은 경남 밀양 등 지역구에서 3선을 한 중진이다. 이들 저격수의 배치는 지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낙동강벨트를 사수한 경남 3곳(양산을, 김해갑·김해을)과 부산 3곳(북·강서갑, 사하갑, 남을),울산 1곳(북구)을 겨냥했다. 엄 소장은 “이곳 지역에 중진 의원을 거의 논란 없이 안정적으로 공천함으로써 국민의힘은 PK에서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21대 총선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에서 공천 컷오프 불안감을 떠안고 있는 다선 의원들을 저격수로 민주당 수성 지역에 재배치함으로써 일석이조(선수(選數) 쌓기·PK 지역에서 민주당 기선 제압)의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반대로 지난 총선에서 경기 김포갑의 현역 의원이었던 김두관 전 장관을 경남 양산을에 배치해 낙동강벨트를 공략했던 민주당은 이번에는 국민의힘의 공격에 시달리는 신세가 됐다. 그나마 현역 의원이 있던 곳에서조차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최근 많이 떨어져 박빙의 지지율 차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TK)에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 현역을 이길 수 있는 명망인사를 한 명도 공천하지 못해, 국민의힘 전석 석권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 지역 민주당 인사는 “김부겸·홍희락 전 의원 같은 다선 의원이 한 명도 없어 민주당 깃발을 세울 틈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들은 PK 40석과 TK 25석 중 경북 경산의 국민의힘 성향 최경환(무소속) 후보와 부산·김해 등 몇 지역구만 경합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영남은 국민의힘 성향의 후보가, 호남은 민주당 성향의 후보가 석권하는 지역주의가 이번 총선에서 더 심해질 우려가 커졌다. 이상돈 전 의원은 “2016년 20대 총선처럼 TK 지역에서 김부겸 전 의원이, 호남에서 이정현 전 의원 등이 당선되면서 지역주의 청산에 희망을 줬는데, 그다음 선거부터는 일부러 저격수를 배치해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공천을 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이 처음부터 수원을 전략 지역으로 삼은 저격수 공략도 어느 정도 먹혀들어 가고 있다. 여당은 방문규 전 장관(김영진 의원 지역구인 수원병)과 이수정 교수(박광온 의원 지역구인 수원정/경선 후 김준혁 후보 공천)를 일찌감치 저격수로 보냈다. 방 전 장관은 산업자원부 장관을 불과 3개월 지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수원으로 내보내 ‘경제 프레임’을 짰다. 지난 총선에 압도적으로 밀렸던 수원 지역을 공략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경기 분당갑 맞대결 후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경향신문

경기 분당갑 맞대결 후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왼쪽)과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경향신문

민주당의 대표적인 저격수는 누가 뭐라 해도 3선 출신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다. 김태호·서병수 의원 같은 광역단체장 출신인 이 전 지사가 험지인 경기 분당갑에서 안철수 의원과 격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이 전 지사 측은 “서울 종로를 양보한 후 민주당에서 이곳에서 안 의원과 붙기를 권유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여전사 3인방’ 배치

이른바 ‘여전사 3인방’(추미애·전현희·이언주 전 의원)도 저격수 부류에 속한다. 전 전 권익위원장은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대신해 중구·성동갑에 배치됐다. 그나마 상대 당의 유명인을 겨냥한 ‘저격’이라는 의미를 지닌 공천이 됐다. 하지만 추미애(경기 하남갑 전략공천)·이언주(경기 용인정 경선) 전 의원은 서울의 국민의힘 유명인사를 상대로 한 지역구가 아니어서 사실상 여전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배치가 이뤄졌다. 정치평론가들은 여전사 3인방은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고, 윤석열 정부와 맞싸울 수 있는 저격수의 기능은 있으나, 중도층 확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의 저격수는 윤석열 정부를 비판할 인물”이라면서 “총선은 유권자와 국민을 상대로 선의의 경연을 벌이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시끄럽게 경쟁하는 무대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여전사 3인방.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왼쪽부터),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이언주 전 의원. 경향신문

민주당 여전사 3인방.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왼쪽부터),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 이언주 전 의원. 경향신문

지난 총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의 발을 묶기 위해 이수진 전 판사를 전략공천했던 민주당은 이번에는 이 지역구에 류삼영 전 총경을 전략공천했다. 경찰국 신설을 반대하며 전국 경찰서장회의를 이끈 류 전 총경을 나 의원의 저격수로 삼은 것이다. 민주당의 돋보이는 저격수로는 공영운 후보(경기 화성을)를 손꼽을 수 있다. 현대자동차 사장 출신인 공 후보는 반도체 연구원 출신인 한정민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뜨거운 3파전을 벌이게 됐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저격수 출마는 당에서 어떤 스토리를 짜서 내세우고, 그 스토리를 밑바탕으로 후보가 자기 PR을 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평론가들은 각 지역에서 중심축을 잡아야 할 인사들이 무엇보다 비명이라는 이유로 탈당한 점을 문제로 삼았다. 대전에서는 이상민 의원, 인천에서는 홍영표 의원, 충청에서 노영민 의원, 한강벨트에서 김영주 의원 등이 탈당 또는 낙천함에 따라 민주당 우세의 인근 지역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는 것이다. 이상민·김영주·홍영표 의원 같은 경우는 자당 인사가 탈당해 오히려 민주당 후보를 경쟁상대로 삼는 저격수가 돼버린 경우다. 김상일 평론가는 “저격수를 배치하려면 최소한 지역 구도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하는데 국민의힘에서 의도를 갖고 방 전 장관을 수원에 배치했던 전략적인 사례가 민주당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원래 저격수 공천은 일본어의 자객 공천에서 비롯됐다. ‘刺客’(しかく시캬쿠) 공천은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 민영화 반대파들을 몰아내기 위해 여성 관료·아나운서 등 정치 신인들을 대거 자객으로 공천하면서 유명해졌다. 이상돈 전 의원은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연고가 없는 곳에 ‘자객’을 보내는 경우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그 예를 좀체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특정인을 상대하기 위해 보내는 자객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격수 간 맞대결’ 유례없이 뜨겁다

자당 반대파 상대로 ‘자객 공천’?

민주당은 상대 당을 저격하는 저격수 공천이 아니라 자당 성향 반대파인 비명·친문 현역 의원들을 상대로 한 자객 공천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친명 후보들이 노영민(충북 청주시 상당구 이강일 후보 경선 승리)·박광온(경기 수원정 김준혁 후보 경선 승리)·윤영찬(경기 성남 중원구 이수진 비례의원 경선 승리)·강병원(서울 은평을 김우영 후보 경선 승리)·김한정(경기 남양주을 김병주 비례의원 경선 승리)·전혜숙(서울 광진구갑 이정헌 후보 경선 승리) 의원의 지역구에 각각 ‘자객’으로 달려들어 이들을 낙천시켰다. 민주당 지도부가 사주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자객 공천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경선 자체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보듯이 민주당은 공천 분란으로 지지율이 하락 추세였지만 어느 정도 밑바닥을 치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반해 뒤늦게 현역 의원이 탈락한 국민의힘은 공천 분란이 어느 정도의 파장을 일으킬지 아직 알 수 없다. 특히 지난해 ‘나경원 연판장’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던 비윤 초선들의 대거 탈락은 민주당의 ‘비명횡사’에 버금가는 충격파를 안겼다. 중진 현역들은 오히려 경선에서 살아와 혁신 공천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일었다. 김건희 특검법안 부결 이후 현역 의원을 탈락시킨 이른바 ‘건생구팽’ 갈등도 불거졌다.

평론가들은 총선은 아직도 마지막 30일에 승부가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벌써 국민의힘에서는 성완종 후보의 이토 히로부미 인재 발언 같은 친일 망언으로 뭔가 약간 해이해진 느낌이 있다”면서 “민주당이 선대위를 잘 구성해 총선에 임한다면 앞으로 지지율이 올라갈 기회만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상승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고, 국민의힘은 하강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단지 지금까지 우위를 확보해온 국민의힘이 계속 승산을 굳혀 나갈 것인지, 이전의 선거처럼 후보 막말 논란, 공천 분란 등으로 지지율을 갉아먹는 국면으로 갈지가 선거의 승패를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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