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민의힘·반민주당만 합창하다 한계 드러내
11일. 만남부터 결별까지 걸린 시간이다. 막장 드라마 속 연인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개혁을 이끌겠다고 나선 이준석, 이낙연 두 정치인이 함께 만든 현실이다. 정치에서 ‘신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지만 이들은 ‘구태정치 타파’를 명분으로 모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과거 제3지대의 행태를 답습하며 자신들이 혐오한 정치를 그대로 재현했다. 명분, 능력 측면 모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제3지대 ‘빅텐트’가 초기에 찢어지며 정치적 계산은 복잡해졌다. 국민의힘, 민주당의 대안으로 개혁신당이 떠올랐지만 다시 선택지는 넓어졌다. 제3지대 통합이 만들 파급력을 기대한 입장에선 악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여전히 이준석 대표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개혁신당은 확장성의 한계만 드러냈다. 류호정 전 정의당 의원, 배복주 전 정의당 부대표 등이 대표하는 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준석 대표 주요 지지층이 요구하는 바와도 일치한다. 문제는 추후 이준석 개인 지지세력과 개혁신당에 합류한 나머지 세력 간 의견이 엇갈릴 경우다. 결별 사태가 재현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다. 총선까지 함께 가더라도 늘 불안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한계를 드러낸 것은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개혁신당에 들어갔다 나오며 확장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실제로 같은 민주당 출신인 ‘원칙과상식’에서 김종민 새로운미래 공동대표만 이낙연 대표를 따라나섰다. 이원욱, 조응천 의원은 이낙연 대표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동시에 이낙연 대표가 추구하는 정치도 더욱 불분명해졌다. 그는 개혁신당과의 결별을 발표하며 “진짜 ‘민주당’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대표 출신인 이준석 대표와 손잡은 지 11일 만이다. 혼란한 정체성은 기회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지향점이 분명치 않다면 정책 공약이라도 선점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제3지대에 모인 이들이 각자 당선 외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반국민의힘, 반민주당이 이들을 연결하는 사실상 유일한 고리다. 이마저도 당권을 놓고 양보와 타협이 불가능한 모습을 보이며 이들의 연대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였다. 한국 정치를 개혁한다며 요란하게 시작했지만 제3지대는 시작부터 시험대에 올랐다.
이들은 왜 만났고, 왜 헤어졌나
“부실한 통합 결정이 부끄러운 결말을 낳았다”, “참담한 마음으로 국민께 사과드린다.” 지난 2월 20일 결별을 두고 각각 이낙연, 이준석 대표가 남긴 말이다. 개혁신당은 크게 4개의 정치세력(개혁신당·새로운미래·새로운선택·원칙과상식)이 모여 구성했다. 이들은 기존에 몸담았던 정당이 다르고 정치적 지향에서 완전한 합의를 이룬 적도 없다. 이는 이낙연 대표의 “신당 통합은 정치개혁의 기반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크게 양보하며 통합을 서둘렀다”는 설명을 통해 추론해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화학적 결합보다 총선을 겨냥한 물리적 결합에 가까웠다는 의미다.
제3지대의 이러한 통합을 두고 평론가들은 ‘묻지마 통합’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능구 폴리뉴스 대표는 그 원인으로 세 가지 동기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발견되는 독특성이다. 제3지대에 관한 지지와 제3지대를 표방한 세력에 대한 지지가 일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여론조사에서 제3지대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20% 가까이 나왔지만 제3지대를 표방한 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1~3%에 그치는 식이다. 이러한 결과가 이들이 서둘러 묻지마 통합을 하게 한 첫 번째 동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두 거대 정당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움직임이다. 제3지대는 이들 정당의 공천 잡음을 배경으로 통합을 시작하려 했지만 각 정당의 ‘컷오프’ 통보가 예상보다 늦어졌다. 결국 현역 의원 영입 등의 정치적 선전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우선 통합부터 시행했다는 의미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시점이다.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설 명절 앞에 통합을 발표하려다 보니 ‘대화와 설득’ 보다 일단 ‘양보’를 전제로 통합을 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를 종합해 “많은 것을 덮어둔 생존권 차원의 통합”이라고 비판했다.
의도야 어떻든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보수·진보의 통합인 만큼 이들이 만들 시너지에 대한 기대는 컸다. 묻지마 졸속 통합이라고 해도 총선이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굳이 합의를 깨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결별을 선택했다. 왜 깨질 수밖에 없었느냐 역시 분석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앞서 주간경향은 1566호에서도 제3지대 통합 문제를 다뤘다. 당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인물, 전문가를 두루 만났는데 그중 유일하게 이준한 인천대 교수만 “개혁신당이 몇 주 사이에 깨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예측했다. 그에게 다시 왜 그렇게 확신했는지 물었다. 이 교수는 “깨진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합당한 것이 놀랍지 않냐”며 “자꾸 결별 사유로 배복주니, 류호정이니 노선이 다르니 하는 거창한 말들을 하는데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통합하기 전과 후의 결괏값이 달랐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의 예측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첫 번째는 이준석, 이낙연 두 대표 모두 당의 전권을 노리는 인물이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 이상 애초에 공존할 수 없다고 봤다. 두 번째는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개혁신당에는 유독 한국 정치에서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는 이들이 기존 정당에서 탈당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해하기 쉽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들의 이해관계를 초월할 정치적·이념적 지향점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오히려 최대한 빨리 정리된 것이 이들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빨리 깨진 것이 다행’이란 분석을 내놓은 것은 이 교수뿐만이 아니다. 새로운미래 측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낙연 대표 쪽은 자신들이 연배도 높고, 정치 생활을 더 오래 했으니 예우를 할 것이란 순진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며 “차라리 지금 나오는 것이 민주당 쪽 문제의 반사이익을 거둘 확률이 더 높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치는 사라지고, 정치공학만 남았다
결별사태로 인한 관심은 이제 ‘제3지대의 존재감이 사라지느냐’, ‘총선의 핵심 변수로 다시 떠오르느냐’에 맞춰진다. ‘통합’을 화두로 삼았던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이제 정치적·이념적 ‘차이’를 강조하며 재기를 도모하려 한다. 개혁신당은 합당 파기 바로 뒷날인 지난 2월 2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 전원이 당 상징색인 주황색 옷을 맞춰 입고 나왔다. 이준석 대표는 “최고위에서 우리의 지향점은 ‘진짜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목적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새로운미래와의 합당에 반발해 탈당한 당원들의 복당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광범위한 통합에서 기존 지지층을 지키는 전략으로의 선회했다. 이는 비례선거와 같은 전국단위 투표에서 안정적인 득표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치가 이준석 대표 개인의 정치적 기반을 결집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도로 ‘이준석 당’이란 의미다.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당대표일 때 상근부대변인을 맡았던 신인규 변호사는 “냉정하게 말해 지금 개혁신당에 남은 사람들은 제3지대 같은 대의보다 본인 선거에 필요한 이준석 영향력을 기대하는 것 아니냐”며 “이렇게 보면 윤석열, 이재명이라는 두 지도자가 당을 사유한 상황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욱 심각한 것은 애초에 이준석 대표는 문제를 관리하고 조정할 능력이 없음을 보여왔음에도 누구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라며 “이번 결별은 이준석 대표가 선거에서 벌어질 몇몇 전투는 승리할지 몰라도 결국 전쟁에서는 질 것이란 점을 예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 역시 “이제 개혁신당은 제3지대 통합정당이라기보다 이준석 당이라고 봐야 한다”며 “과연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이 결합이 유지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민주당 정체성을 언급하며 통합과는 멀어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는 민주당 내 공천 관련 잡음과 맞물리며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이재명표 혁신 공천’을 두고 ‘비이재명(비명) 학살 불공정 공천’이란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탈당하는 현역 의원도 나왔다.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20%를 받은 김영주 의원이 대표적이다. 통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추가 이탈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불만이 커질수록 부각되는 것은 그와 대척점에 선 이낙연 대표다. 김 대표는 “이제 새로운미래가 살길은 민주당 공천 내분이 어디까지 확대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이낙연 대표가 정통 민주당을 언급한 만큼 앉아서 죽느니 나가겠다는 사람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확장력이다. 민주당에서 컷오프된 현역 의원 몇몇의 합류로 독자적으로 존립 가능한 정당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경쟁력 있는 지역구 출마자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이탈자를 받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교수는 “민주당에서 컷오프된 사람들은 탈당해도 선거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라며 “차라리 당 내부에 머물며 선거가 끝난 뒤 이재명 책임론을 주장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가 개혁신당과 결국 다시 손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쪽 모두 지역구 출마자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만큼 비례선거는 각자 치르되, 지역구는 선거연대를 할 것이란 주장이다. 이준석 대표 역시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미래와 열린 입장을 가져갈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한 내부관계자는 “결별 과정에서 국민의힘, 민주당이 아닌 선택지를 요구하는 민심이 큰 만큼 지역구는 단일 후보, 비례는 각자 가는 방향으로 정리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아직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제3지대는 통합, 개혁 등을 외치며 시작했지만 이들의 미래는 정치공학, 선거전략에 달린 상황으로 변해 가고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