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의사’ 안 밝혀도 명예훼손 처벌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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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의사 반해 처벌 못 할 뿐, 침묵해도 기소 가능

대통령일 땐 국민 억압·수사 압박 모양새 탓 ‘침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제19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주재한 제19차 비상경제 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검찰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언론사와 기자 등을 수사하면서, 윤 대통령이 처벌과 관련한 어떠한 의사를 밝힐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이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내면 처벌할 수 없다. 반대로 윤 대통령이 처벌 의사를 밝히면 기소와 처벌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이 ‘처벌을 원한다, 원치 않는다’가 아닌 아무런 입장을 표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윤 대통령이 내심 처벌 의사를 가지고 있다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 과거 대통령들도 명예훼손 사건에서 대체로 처벌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침묵했다.

“피해자가 침묵하면 처벌해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9월 14일 이들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보도한 뉴스타파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은 이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두고 있다. 명예훼손 사건의 수사는 국민의힘의 고발에 따른 것이다. 뉴스타파 등이 지난 대통령선거 직전 ‘윤 대통령이 2011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장동 사업 관련 불법 대출 내용을 인지했는데도 수사를 무마했다’는 취지의 보도가 허위이고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게 고발 취지다.

이번 명예훼손 사건의 핵심 쟁점은 뉴스타파 등이 이런 의혹이 허위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했는지, 즉 ‘악의적으로 윤 대통령을 공격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러한 ‘비방 목적’이 없었다면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이 외에도 윤 대통령이 처벌과 관련한 의사를 밝힐지 주목된다.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여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죄를 물을 수 없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 자체를 할 수 없다. 기소 후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가 처벌 불원 의사를 나타내면, 법원은 공소기각 결정을 내리게 된다. 처벌 불원 의사는 1심 선고 이전에 밝혀야만 그 효력이 인정된다. 명예훼손죄는 친고죄가 아니어서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제3자의 고발로도 수사는 진행할 수 있다.

보통 수사기관은 명예훼손과 같은 반의사불벌죄 혐의를 수사할 때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를 파악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수사를 이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처벌 의사를 확인했는지 여부를 두고 지난 9월 14일 “법리를 검토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라며 “수사나 공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이 앞으로 처벌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소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대통령실 측이 지난 9월 5일 이번 사건을 두고 “이번 기회에 악습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밝힌 점을 검찰이 윤 대통령의 처벌 의사로 간주할 수도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피해자의 침묵은 처벌 여부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형사법 전문가인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본적으로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지, 처벌 의사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다”라며 “피해자가 침묵한다면 검찰은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아무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는 건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돼야”

과거 법원 판결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사생활 의혹을 제기했다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보수단체의 고발에 따라 수사가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은 처벌 여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가토 전 지국장 측은 재판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처벌 의사가 명확하지 않다”라며 기소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1심 법원은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거나, 처벌의 의사를 철회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소를 제기하거나 범인을 처벌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가토 전 지국장에게 비방의 목적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전광훈 목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도 법원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전 목사는 2019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을 향해 “간첩”, “공산화 시도” 등의 발언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마찬가지로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수사가 시작됐다. 전 목사는 1심 재판 중에 문 전 대통령이 처벌 의사를 두고 침묵하기 때문에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문 전 대통령이 2020년 8월 공식 행사 자리에서 언급한 ‘국민의 비판은 달게 받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처벌 불원 의사로 봐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반의사불벌죄는 친고죄가 아니라 공소제기를 위해서 반드시 피해자의 명시적인 처벌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또 문 전 대통령이 행사에서 한 발언을 ‘명시적인 처벌 불원’ 의사로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처벌 불원 의사는) 피해자의 진실한 의사가 명백하고 믿을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2001년 6월)를 근거로 들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는 간접적인 표현으론 부족하고 직접적이고 명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들이 현직에서 처벌 의사를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지위의 특성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명예훼손의 피의자 혹은 피고인은 대체로 언론이나 일반 개인이다. 대놓고 이들을 처벌해 달라고 밝힌다면 ‘주권자인 국민을 억압하는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갇힐 수 있다. 또 명시적인 처벌 의사는 수사기관에 강력한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기소 후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법원)를 압박하는 모양새로 비칠 우려도 있다. 여러 비판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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