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구용역 발주… 국가 차원 노력 필요성 인정
부산 청년세대 조사에서 갈등 원인으로 ‘언론’ 최다 지목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청년세대 젠더갈등의 실태 파악에 나섰다. 젠더갈등의 현황 및 분석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국민통합위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사안을 정식 과제로 채택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국민통합위는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및 사업 등 대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속 1호 위원회다.
이와 별개로 청년층 젠더갈등의 주요 원인이 언론과 정치권에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언론 등이 남녀 간 인식 차이를 과장해 갈등으로 부풀리고 정치권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청년 남성들은 성평등 정책이 ‘기계적 평등’을 이뤄야 한다고 오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남녀 인식 차이를 좁히고 이런 차이가 갈등으로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젠더갈등 인식 여론조사
주간경향 취재결과, 국민통합위는 지난 9월 ‘청년층의 젠더갈등 현황 및 분석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용역을 발주해 업체 선정을 마쳤다. 국민통합위는 “우리 사회 젠더갈등은 국민 5명 중 3명 이상(63%)이 심각하다고 인식하며, 특히 청년세대(75%)에 있어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어 “첨예한 청년층의 젠더갈등은 점차 심화되고 있어 국가 차원의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젠더갈등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쟁점별 갈등을 완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라며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용역의 과업 내용에는 우선 청년층 젠더갈등과 관련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한 여론조사가 담겼다. 젠더갈등의 심각성 정도, 해결 과제 및 대안 방향 등이 여론조사 주제가 된다. 여론조사 결과를 정리·분석해 시사점을 도출하는 작업도 진행한다.
또 그간 언론보도 및 연구자료 등을 수집 분석한다. 젠더갈등을 주제로 한 정책 추진 경과, 이해관계자 요구사항 분석, 법·정책적 현황 및 문제점 분석 및 대안 검토 등도 이뤄진다. 원인 분석 및 대안 검토의 방법으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연구용역은 오는 12월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국민통합위는 연구결과를 검토해 청년층의 젠더갈등을 위원회의 정식 과제로 삼을지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과제로 선정되면 위원회 내 별도의 특별위원회 등을 꾸려 공론화 및 해결책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국민통합위 관계자는 “청년층 젠더갈등이 심하다 보니 여론조사 등을 통해 사전에 현황을 파악해보는 것”이라며 “아직 위원회의 과제로 채택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해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특별위원회 등에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용역은 기획분과 쪽에서 발주했다. 이 분과는 국민통합 어젠다를 기획·발굴하고 위원회의 운영을 총괄 기획·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기획분과에는 차인순 국회의정연수원 겸임교수가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그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낸 젠더 입법정책 전문가다. 이 때문에 청년층 젠더갈등 문제가 과제로 다뤄진다면, 차 교수가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이번 연구용역 발주 과정에 차 교수가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국민통합위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속 첫 번째 위원회로 지난 7월 27일 출범했다.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가 위원장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국민통합위원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출범식에서 “국민통합위는 담론 수준에 그쳤던 기존 위원회 방식을 탈피해 실용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문제해결형 위원회’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민간위원 24명과 정부 위원 8명이 위원회를 꾸렸다. 기획, 정치·지역, 경제·계층, 사회·문화 등 4개 전문 분과가 설치됐다. 국회의원 출신 최재천 변호사, 김민전 경희대 교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 윤정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석좌교수 등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위원회는 과제를 선정하면 특별위원회를 꾸려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앞서 지난 9월 ‘대·중소기업 상생 특별위원회’와 ‘장애인이동편의증진 특별위원회’를 각각 출범시켰다. 특위의 위원장은 분과 소속 위원이 맡고 민간 전문가 9명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언론·정치권이 젠더갈등 조장”
국민통합위의 연구용역과는 별개로 최근 유사한 주제의 연구보고서가 발간됐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지난 9월 28일 발표한 ‘부산지역 2030 청년세대 젠더인식 조사 및 대응 방안’이다. 정다운 연구위원(행정학 박사)과 옥소연 전문연구원이 지난 4월 부산에 거주하는 20·30대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20명을 상대로 초점집단면접조사 등을 벌인 결과가 담겼다.
우선 응답자 중 62.2%는 ‘젠더갈등이 심각하다(대체로 심각하다+매우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젠더갈등의 원인으로는 ‘언론 및 방송매체의 성별 갈등 조장’(27.9%)을 가장 많이 꼽았다. 초점집단면접조사에서도 참여자들은 ‘여초·남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벌어지는 성별 혐오 발언을 언론이 조회수를 위해 무분별하게 다룬다고 말했다. 이런 자극적인 요소로 인해 남녀의 인식의 차이가 젠더갈등으로 부풀려지고 혐오 댓글이 달리면서 갈등이 더욱 확장된다는 것이다. 또 58.8%가 페미니즘 관련 지식이나 정보를 신문·방송에서 얻는다고 응답했다. 언론보도가 젠더인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청년들은 정치권에서 ‘이대남’, ‘이대녀’ 프레임을 통해 갈등을 극대화한다고 인식했다. 언론 등에서 이슈화한 것을 정치권이 정치적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언론은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정치권은 실질적인 성평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정다운 연구위원은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언론 기사는 TV나 인터넷 포털 등을 통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접하는 구조인데다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내용은 한번쯤 팩트체크를 거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만큼 성평등 문화 확산과 인식 개선 등에 있어서 언론과 정치인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중요하다”고 했다.
젠더갈등과 관련한 언론보도 양상을 분석한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다. 젠더갈등을 키워드로 한 기사 건수는 2010년 22건에서 2018년 405건으로 18배 이상 증가했다. 2018년을 기점으로 급증했다. 특히 2021년에는 2647건, 2022년 1~5월에는 전년의 3분의 2 수준을 기록했다.
젠더갈등 관련 기사의 연관어를 살펴보면, ‘여가부(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양성평등, 청년들, 이대남, 이대녀, 남혐, 여혐, (정당의) 최고위원, 위원장의 단어들이 부각됐다. 보고서는 “젠더갈등이라는 단어가 정치적인 이슈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실제 지난 대통령선거 때부터 여가부 폐지를 둘러싼 젠더갈등을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다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1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지율이 급락했을 때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비속어 논란 등으로 인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당정은 지난 10월 3일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여가부 폐지의 구체적인 사안을 협의했다. 이어 행정안전부는 6일 여가부를 폐지하고 해당 기능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발표했다.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지난 10월 4일 성명을 내고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선 시기부터 근거도 내용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고, 대통령 지지율 24%라는 최저점을 찍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들었다”라고 비판했다.
성평등 정책 적극 홍보 필요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의 설문조사 결과 젠더갈등 발생 원인의 2·3위는 ‘어려서부터 학습된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24.9%), ‘가부장적 사회문화’(24.4%)로 집계됐다. 특히 여성 응답자들은 ‘가부장적 사회문화’(29.2%)와 ‘학습된 성별 고정관념’(29.1%)을 가장 큰 원인으로 거론했다. 정다운 연구위원은 “고정된 성역할을 어릴 때부터 교육받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 온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초점집단면접조사 결과 여성 참여자들은 가정생활에서 성차별을 경험한 사례가 많았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라 가사노동을 하거나, 대학이나 진로를 선택할 때 취업이 안정적인 학과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참여자도 있었다. 보고서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부터 성별분업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경험하게 되면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하고 성장 과정에서 스스로 고정관념의 틀에 가둬 한계를 짓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성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녀 청년 39.0%가 ‘교육을 통한 성차별 인식 개선’을 꼽았다. 청년층 젠더갈등 해소를 위해 필요한 요소로 26.3%가 ‘성평등 교육 및 인권교육 의무화’라고 답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제안했다. 또 평교사 및 교장·교감을 대상으로 한 성인지 교육, 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애주기별 성인지 교육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보고서는 “부산 청년들은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은 있으나 페미니즘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로 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성평등 정책 수립 배경 등을 시민에게 홍보하는 방안도 시민의식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설문조사에서 ‘현재 성평등 관련 정책들은 남성의 입장은 무시하고 여성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질문에 35.7%가 동의했는데, 특히 남성은 51.5%가 공감했다. 초점집단면접조사에서도 참여자들은 “충분한 설명 없이 좋은 정책이니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오히려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되고 좋은 취지와 내용으로 수립된 정책의 의미가 오인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보고서는 “많은 성평등 정책이 성별을 떠나 도움이 되는 정책인데도 내용이나 시행 배경을 잘 알지 못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몇몇에 의해 혐오적 표현에 노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조적 성차별 해소해야
보고서는 성평등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도 했다. 청년 남성은 디지털성범죄 n번방, 소라넷 사이트 폐지, 성매매 방지, 미투 운동,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등 젠더폭력과 관련한 이슈에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반면 성평등 정책과 관련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문항은 ‘경찰, 소방관, 군대 등 남성 비율이 높은 직종에서의 여성 비율 확대’(28.5%), ‘여성 우선 주차장’(25.1%), ‘양성평등 채용목표제’(22.6%), ‘고위직 공무원, 국회의원 등 여성 비율 확대’(19.3%) 등이었다. 보고서는 “이처럼 여성을 우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책을 두고는 남성의 반감이 높은 편”이라며 “기존에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남성들의 동의도 이끌어낼 수 있는 성평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점집단면접조사에선 남녀 간 의견 차이가 두드러졌다. 여성 참여자는 “성평등 정책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책이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대부분의 남성 참여자는 “현재 성평등 정책은 여성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반감을 주고 있으며, 지금처럼 여성 우대정책을 시행하려면 남성 우대정책도 같이 시행돼야 공정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이미 제도적으로 성평등 기반이 잘 갖춰져 있고 평등한 상태이므로 성평등 정책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나왔다.
보고서는 “성평등 정책 추진 시 대상자를 여성과 남성의 성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젠더에 기반을 둔 포괄적인 성평등 정책의 범주를 재설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며 “구조적인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성평등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다운 연구위원은 구조적 성차별의 예로 노동시장의 사례를 언급하며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성별 임금 격차, 유리천장 등이다. 정 연구위원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채용 과정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일한 직종에서 같은 직급으로 일하면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젠더폭력을 거론하며 “직장 내 위계에 의한 성희롱, 성폭력 및 괴롭힘 등은 가해자의 권력에 기인한 것으로 이 또한 불평등한 권력 구조, 즉 구조적 성차별의 문제라 할 수 있다”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평등한 조직문화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연구위원은 마지막으로 “부산지역 청년들은 공정함·동등함에 대해 남녀가 똑같은 기준을 적용받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라며 “남녀가 처한 상황적 고려 없이 똑같은 기준을 적용받는 것, 즉 기계적 평등만을 공정한 것이라고 오인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는 젠더인식 차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두고 “남녀 청년들이 젠더이슈와 관련된 의견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소통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라며 “정책적으로는 지역 차원에서 청년의 젠더인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에 대한 자료 축적을 위해 정기적인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