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명 뽑는 지방선거 ‘줄투표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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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보다 소속정당이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선택

서울시장이나 경기도지사와 같은 광역단체장만 뽑지 않는다. 시·도의회 의원, 구·시·군의회 의원에다 교육감·교육 의원도 뽑는다. 중앙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상 선거구 수 및 정수 현황자료에 따르면 시·도지사 17명, 구청장·시장·군수 226명, 시·도의회 의원 824명, 구·시·군의회 의원 2927명도 뽑는다. 여기에 전국 17개 시·도의 교육감과 교육의원 5명도 뽑는다.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선출될 지방자치 일꾼은 모두 4016명이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4월 4일 오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지방선거 선거제 개혁과 다당제 정치개혁 촉구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4월 4일 오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지방선거 선거제 개혁과 다당제 정치개혁 촉구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일단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의문. 당장 내가 사는 지역구에 어떤 인물이, 무엇을 하겠다고 나왔는지 꼼꼼히 찾아보고 투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물보다는 소속정당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따라 ‘줄투표’하는 것이 실제 주민자치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방선거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적은 것을 유권자에게 나무랄 수 없는 것이 현재의 환경이다.” 지난 3월 29일 거버넌스센터·주민주권자치분권혁신후보연대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자치분권2.0 지방선거 캠페인 토론회’에 참석한 김경희 경기도 의원의 말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 유권자들은 약 300페이지 분량의 공보물과 투표용지 7장을 받는다. 현실적으로 그걸 읽어보는 데만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선거는 사실상 유권자에게 줄투표를 강요하는 형식이다. 물론 나 역시 선거운동 상황이 되면 열심히 뛰지만,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전국동시 지방선거로 단체장과 의원을 뽑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예컨대 유럽의 경우 지방·지역마다 각자 다른 주기로 선거를 하기 때문에 공보물이 수백페이지까지 이르진 않는다는 것이다(이 총장은 “한국도 차제에 일상적으로 지방선거를 치르는 식으로 변경하는 걸 고민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전국 단위 동시선거, 대한민국이 유일

6·1 지방선거는 3·9 대선 석달 뒤 치러지는 선거다.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직후에 치러진다. 아무래도 대선의 연장선으로 치러질 선거가 될 공산이 크다. 기성 양대 정당이 다시 맞붙어 승패를 가르는 중앙정치가 규정하는 대회전(大會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좋은 후보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형용 거버넌스센터 이사장의 말이다. 3월 29일 국회토론회에 이어 ‘주민주권 거버넌스 후보 협약식’이 열렸다. 주민주권자치분권혁신후보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경희 의원이 이날 ‘거버넌스 협약’을 했다. 건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선거과정부터 중앙정치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수평적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시민사회와 협력·파트너십을 구축해 기성 구조에 균열을 내야 한다는 게 이 이사장의 논리다. 4월 5일 현재 20여명의 이번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협약에 동의해 협약서를 작성했다. 2018년도부터 ‘거버넌스 협약’의 형태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내걸었지만 아직 갈 길은 먼 셈이다.

“시의원이라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시정에 대한 견제와 감시다. 지금부터 라인업하면서 가면 견제나 감시가 되겠는가.” 4월 6일 통화한 박미정 광주광역시 의원의 말이다. 광주광역시는 현재 민주당 후보경선이 치열하다. 이용섭 현 시장에 맞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출마 선언을 했다. 재선을 노리는 현역 시의원들이 속속 양대 캠프에 집결하고 있다. 박 의원은 ‘시의원이 우선해야 할 일은 시장이 펼칠 시정(市政)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며 어느 쪽 캠프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시의원이 되기 전 박 의원의 프로필을 보면 ‘광주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였다. 어쩌다 정계에 입문하게 됐을까. “사회복지 전문가로 들어왔다. 더 거슬러 가면 20대 때 노조운동을 하다가 해고·구속·수배됐던 과거의 삶이 있다. 만학도로 공부해서 박사·교수가 됐지만 ‘아무리 변화를 추구해도 쉽게 되지 않는구나, 정치영역이 변한다면 좀더 빨리 변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다 사회복지는 행정과 정치영역의 로비를 통해 이뤄지는 실천학문이다. 현장활동가보다는 정치활동에 들어가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 의원이 된 뒤 ‘정치가 효율적인 도구’라는 점을 발견했다. “나는 정치영역에서 사회적 약자는 투표권이 없는 아동·청소년이라고 생각한다. 한사람의 의원이 어떤 관점으로 조례를 만들고 예산을 편성하느냐에 따라 선거권도 없고 가난하고 힘든 아이들의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질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시의원들이 정치에서 보람 느낄 때

그는 4월 8일 광주광역시 의회에서 통과된 아동청소년 교통요금 지원조례의 예를 들었다. 내년부터 광주광역시에서 버스를 탈 때 초등학생은 400원, 중고등학생은 500원을 내도록 교통요금을 인하하는 게 조례의 골자다. 버스회사나 조합, 시와 함께 끝까지 협상해 얻어낸 결과다. “의원이기 전에 세 아이를 키웠던 엄마의 입장에서 논의에 참여했다. 고3 학생의 경우 한달 교통비가 12만원에서 15만원이 든다. 아이들에게 이동권은 바꿔 말하면 교육권이고 안전권인데 부모가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내버스 준공영제에 1300억원이 들어간다. 이건 부모의 입장에선 일종의 이중과세다. 그래서 조례도 만들고 예산도 편성해 광주광역시 중고등학생 요금을 500원으로 동결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이 30억~40억원가량이다. 논의과정에서 반대의견도 많았다. 3년간 싸웠는데 광주시의 경우,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예산을 검토해보면 불용이나 반납·이월되는 예산이 더 많다. 행정이 제대로 집행을 안 했다는 말이 된다.” 그는 자신이 의원이기 이전에 “엄마이고 여성인 동시에 살림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린이와 가족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예산편성을 더 할 수 있었다”라며 “정치하길 잘했다고 보람을 느끼는 대목”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3월 29일 국회에서 거버넌스센터 주민주권자치분권혁신후보연대 주최로 자치분권 2.0 지방선거 캠페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거버넌스센터 제공

지난 3월 29일 국회에서 거버넌스센터 주민주권자치분권혁신후보연대 주최로 자치분권 2.0 지방선거 캠페인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거버넌스센터 제공

기자는 4년 전인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국회의원실 보좌관을 하다 서울 강동구에서 시의원에 도전해 당선된 김종무 서울시 의원 사례를 취재했다(주간경향 1283호, ‘깜깜이 지방권력’ 바꿀 수 있을까 기사 참조). 4년이 지난 지금, 김 의원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어떻게 평가할까. 일단 그가 밝힌 소회다. “국회 보좌관이나 지방의원이나 각자의 영역, 서로를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내 경우는 행정안전위원회를 했으니 지방자치와 관련한 내용은 잘 알고 있어야 하고, 또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방자치법은 잘 알지만 현실의 지방자치와는 ‘갭’이 크다는 걸 시의원을 하면서 느꼈다.” 국회 보좌관을 할 때 행안위 정책전문 보좌관을 했지만 지방의원의 처우나 보좌진, 시의회 시스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부적인 사항은 잘 몰랐다는 얘기다. “갭이 진짜 컸다. 시의원을 하기 전 알았더라면 국회에 있을 때 좀더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출신 국회의원도 국회에 가면 막상 그 시스템에 맞춰 일을 하게 되니 개선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다.”

시의원으로서 보람은 느끼고 있을까. 일단 지난 4년 동안의 시 의정활동을 보면 ‘경비실 휴게시설 설치 서울시 조례’, ‘서울시 저층 주거지 생활밀착형 SOC 공급 조례’ 등 꽤 반향을 일으킨 조례제정에 앞장섰다. “국회에서 정책보좌를 하면서 모시는 의원을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만드는 데서 희열을 느꼈다. 언론에 나온 보도를 보면서, ‘내가 이 이슈를 만든 것’이라고 대리만족을 했다면 시의원 활동을 하면서는 언론에서 관심도 거의 보이지 않는 판이지만 그 속에서도 작은 보람을 찾을 수 있었다.” 또 국회에 있을 때 지역 현안 민원은 들어와도 잘 풀기 어렵지만 굵직굵직한 민원을 많이 해결한 것도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론 지역민원이라는 게 지역주민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런 민원은 대부분 명분을 만들어줘야 해결이 되는데, 그런 점에서 지역민에게 도움을 많이 줬다는 데서 보람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그런 지역민 민원에 시달리니 너무 힘든 자리인데 언론도 거의 관심이 없는 일인지라 일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판별이 안 된다. 지역민도 민원이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시의원이 누군지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김 의원의 고향은 경북 안동이다. 14년 동안의 국회 입법 보좌관 생활을 청산하면서 가졌던 농담 반 진담 반의 ‘꿈’은 “고향 안동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해 민주당 깃발을 꽂아보는 것”이었다.

4년의 시의원 생활 뒤 목표가 바뀌었다. 시의원 활동경력을 바탕으로 강동구청장에 도전하는 일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목표를 수정했다. 시의원 재선 도전이다. 원래 대선에서 이겼다면 강동구청장에 도전해보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이번에는 재선 시의원으로 목표 방향을 틀었다. 아무리 시의원 활동을 잘했다고 평가받더라도 지난 대선에서 소속 정당(민주당)의 지역 득표율은 현실적으로 재선 도전에서 고려해야 할 객관조건이다. “지난 대선 때 서울시에서 민주당은 평균 5% 졌고, 강동구에서는 약 7% 차이였다. 평균보다 조금 더 진 셈인데 그래도 ‘강남 4구’로 넘어가지 않고 선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주민자치 이전에 심각한 공동체 붕괴”

이광재 사무총장은 “언론에서는 이번 지방선거가 대선의 연장선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왜 그렇다고 보는 걸까. “두가지 근거다. 하나는 한국 선거정치의 법칙처럼 거론되던 10년 주기설(10년을 주기로 진보·보수 정권이 권력교체가 되는 법칙이 있다는 설)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건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다. 둘째는 현 정부의 실정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부동산·일자리인데 여기에 대한 심판 여론이 지난 대선 때 이미 반영됐다고 본다. 특히 지방선거의 경우 정당에 대한 평가보다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6월 지방선거에선 정당심판론보다 인물경쟁론이 부각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지난 3월 29일에 열린 거버넌스 지방선거 토론회에서는 최근의 정치상황이 주민자치 강화보다 공동체 붕괴를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한 임승빈 명지대 교수(전 지방자치학회장)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대부분은 최근 몇차례의 국정선거와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톡과 같은 SNS공동체를 이뤘지 바로 이웃과는 모르고 지내지 않았나”며 그러면서 상대진영의 SNS공동체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정도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상의 SNS공동체가 ‘표상적 위기’를 낳으면서 실제의 지역사회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을 해소할 길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대중민주주의가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공화주의의 복원이며, 승자독식으로 대표되는 소선거구제가 아닌 대선거구제로의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임 교수는 주장했다.

토론의 좌장을 맡은 김영래 아주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한국에서 제대로 실현된 것은 1987년 이후, 그러니까 35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히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현행 공직선거법 하에서 6·1 지방선거를 치르기 때문에 당장 변경하기는 어렵겠지만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지방의원이나 국회의원 모두 지금과 같은 소선구제보다는 중대선거구를 도입하고 비례대표의 숫자를 늘리는 게 오히려 민의를 더 잘 반영하는 방향의 선거제도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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