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캠프 서형원·윤석열 캠프 박철희 대담
대통령선거를 앞둔 후보들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분야가 있다. 해야 한다는 ‘당위’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이 맞붙는 경우다. ‘민심이 곧 천심’인 후보 입장에선 해당 주제를 언급해 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 이에 원론 수준의 답변만 내놓거나 ‘침묵’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이러한 분야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한일관계’다.
과거사 문제로 촉발된 한일갈등은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이어졌다. 국민감정이 ‘반일’로 기운 상황에서 대선후보가 앞장서 ‘일본과 화해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자칫 ‘친일’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면 선거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유력 후보일수록 한일관계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의 침묵은 대선공약에 ‘미싱링크(잃어버린 고리)’를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
이재명·윤석열 두 유력 대선후보는 미중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의 대응책으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아시아의 역내 균형이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에 달려 있는 만큼 이는 ‘모범답안’일 수 있다. 다만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가 ‘한·미·일 삼각안보체제’ 형태라는 점에서 선결조건이 생긴다.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당위’의 문제를 안게 되는 것이다.
후보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모두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그럼에도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인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침묵하고 있다. 당장 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로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강제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는 새 정부의 첫 번째 외교현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일본군 ‘위안부’ 문제, 수출규제와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등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단순히 침묵으로 덮어둘 수 없는 사안들임에도 후보들의 명확한 입장과 전략은 알 수가 없다. 주간경향이 ‘외교일반’, ‘대북정책’에 이은 세 번째 정책대담 주제로 ‘대일정책’을 선정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지난 2월 8일 경향신문에서 연 대담에는 각 캠프를 대표해 서형원 외교특보단 공동단장(이재명 캠프), 박철희 정책총괄본부 외교분과위원(윤석열 캠프)이 참여했다. 공정성을 위해 사회는 양측이 모두 동의한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센터장이 맡았다. 질문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 이국언 근로정신대시민모임 대표 등의 의견을 반영해 구성했다.
사안이 민감한 만큼 이날 대담에서도 ‘구체적 전략은 밝힐 수 없다’, ‘신중하게 살펴보겠다’는 식의 모호한 답변은 나왔다. 하지만 명확히 확인된 부분도 있었다. 양 캠프 모두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국가 간 공식 합의로 인정한다는 점과 악화일로의 한일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5년,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박철희(이하 ‘박’) “한일관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급전직하로 나빠졌다.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관계다. 문재인 정부는 대일외교 기조를 투트랙 외교라고 했지만 과거사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중했다. 사실상 원트랙 외교를 했다. 심지어 정권 중반에 와서는 반일 기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측면도 있었다. 정권 후반에 와서야 한일관계의 방향 전환을 시도했지만 신뢰회복은 하지도 못한 채 일관성 없는 외교라는 비판만 야기했다. 현재 한일관계는 비정상이 일상화된 상태다. 정치, 외교, 경제, 사회, 문화 등이 모두 삐뚤어져 있다.”
서형원(이하 ‘서’) “정경분리를 기본으로 한 투트랙 외교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정부가 묵시적으로 동의해왔던 것이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때 이러한 원칙이 깨졌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 FTA 교섭이나 통화스왑 연장 등의 경제적 협력이 중단됐다. 문재인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실질협력이 가능한 부분을 분리해 극복하고자 했지만 국내 여론 등의 구조적 문제로 한계가 있었다.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만이 특별히 한일관계 개선을 방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 캠프는 한일관계에 대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
박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거사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과거사 문제가 중요하지만 한일 간의 모든 사안을 압도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둘째, 일본을 적대시하지 말아야 한다. 가치관이나 체제를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좋다. 셋째, 한반도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동아시아 및 국제 전략에서 일본과 함께할 영역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 넷째,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 “이 후보는 한일관계 개선을 중요한 외교과제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근본정신에 따라 일본이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기조를 재확인하고, 우리도 실용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계속해가면 지속적인 한일관계 발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선 한일 정상이 만나지 않는 비정상적 상황을 해소해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한일 간에 조속한 소통을 통해 신뢰 재구축에 나설 것이다. 또 양국 정부 간 협의채널뿐만 아니라 민간 정책 네트워크도 적극 활용할 것이다. 2025년 한일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수립을 구상 중이다.”
-이 후보가 말하는 투트랙 접근법은 기존 접근과 차별점이 있나.
서 “2018년 강제동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과거사 문제로 갈등전선이 확장됐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등 수출규제에 나섰고,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통보로 맞받았다. 차기 정부는 과거사 문제가 경제·안보 갈등으로까지 번진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투트랙 접근법은 불가피하다. 다만 이전 접근과는 달라야 한다. 종래의 투트랙은 과거사 문제를 방치하고, 실질협력을 통해 이득만 취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와 달리 이 후보의 투트랙은 과거사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도 진지하게 추진한다는 것이다. 즉 과거사 트랙과 실질협력 트랙을 ‘동시에’ 가동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신뢰관계를 다져갈 계획이다.”
-이 후보는 ‘일본이 역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반발하는 상황인데 투트랙이 가능한가.
서 “상황이 이렇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19년 8월,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다. 2년여가 지난 시점에서 보면, 외교적 갈등이나 정책 방향성과는 별개로 한일 기업들이 협력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민간부문에서도 한류와 일류와 같은 상호 문화에 대한 호감과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한일 신정부가 신뢰를 구축해 노력하면 투트랙 접근도 기능하리라고 본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먼저 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면 사실상 원트랙 아닌가.
서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는 것은 한일 양국 정부가 적용해온 기본개념이다. 과거를 묻어버리고 미래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과거를 직시하라는 것은 우리의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이미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다. 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바탕으로 과거사 문제 해결을 추진하고 미래지향 협력을 도모하자는 얘기다. 이를 원트랙이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윤 후보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한 당당한 외교’는 대일관계에서 어떻게 적용되나.
박 “이는 문재인 정부 대일정책과의 차별화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관계를 무책임하게 방치했다. 말로는 관계개선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간의 신뢰관계나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무너뜨린 게 많았다. 새롭게 구축한 건 없었다. 지금 한일관계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작위’에 가깝다. 이를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가 문제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일본을 적대시할 것이냐, 파트너로 볼 것이냐 여부다. 일본을 적대시만 해서는 관계개선을 할 수 없다. 과거사 문제를 놓고 갈등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양국이 민주주의, 법치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로서 파트너가 될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행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의 부작위 상태를 작위 상태로 돌려놓을 것이다.”
-구체적 전략이 무엇인가. 윤 후보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계승을 말하고 있는데.
박 “갈등의 포괄적 해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과거사 현안과 미래 협력의 경계선을 가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이 후보 측이 말하는 정경분리 역시 서로 연계된 문제들을 떼어놓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은 덜어내고 긍정적인 부분은 살려 나간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면 문제가 되는 모든 어젠다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두고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역시 포괄적 합의를 통해 도출했다.”
-포괄적 합의가 현실성이 있나.
박 “상호신뢰를 회복한 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보인다면 가능하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셔틀 외교의 복원이다. 지금은 양국 정상이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셔틀 외교를 중심으로 정상들이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확인하고, 이후 고위급 협상단을 구성해 ‘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협상해야 한다. 사안의 경중이나 전략적 우선순위를 고려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양국 정상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점차 국민교류도 확대해 나가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본과 신뢰를 구축하기 전에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당장 강제동원 문제로 국내 일본 기업의 자산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데.
서 “만약 현금화가 이뤄지면 한일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러한 단계로 가기 전에 한일 간에 대화·협의를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후보는 일본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진지하게 사죄하고 반성하면, 문제해결 방안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대위변제’ 등의 구체적인 해법들도 몇가지 나와 있다. 일본 측에서 완강히 거부한 것도 있고 한국이 국내정치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도 있다. 상호 수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일본도 참의원선거가 끝나면 본격적인 신정부 체제로 돌입할 것이고, 그때는 우리 역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해결을 위한 모멘텀은 충분하다고 본다.”
박 “하나의 정답을 내놓기 어려운 사안이다.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건 분명한 현실이다. 다만 한일관계가 더욱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할 책임은 행정부에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부작위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치열한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한다. 현 단계에서 협상 전략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이롭지 않다. 외교는 협상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원칙을 갖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되, 상황을 예단하지는 말아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현 정부는 완전한 파기도, 지속도 아닌 애매한 입장이다.
서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는 한일 정부 간 ‘공식합의’라고 분명히 밝힌 만큼 이를 존중한다. 다만 위안부 합의에서 핵심은 ‘일본 측의 진솔한 사죄와 반성’이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중심으로 합의를 보완하고 진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 화해·치유재단이 한일 간 협의 없이 해산되면서 사안이 복잡해진 측면은 분명히 있다. 일본 정부의 출연금 미집행분 50여억원과 우리 정부 예치금 100억원의 사용을 어떻게 할지 일본과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
박 “위안부 합의 당시 한국 정부는 피해자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고, 일본은 진정성 있는 사과에 인색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고, 한국 내에서도 상당한 이견이 있었음에도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문제는 이러한 결정 이후에 후속 조치를 한 것도 아니고, 재협상을 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들이 한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그분들의 명예와 존엄을 존중하는 형태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일본과 추가 협상을 할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다.”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두고 더 이상 협상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나.
서 “일본이 해당 문제로는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고 한 건 사실이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딜레마 상황이 될 것이다. 다만 정상들이 만나 신뢰를 구축한다면 해결 방안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일수록 양국 정상의 성향이 중요한데 역사적으로 교착 상태의 한일문제는 정부 교체 후 풀려나간 경우가 많았다.”
박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에 위안부 합의를 정부 간 합의로 인정할 것이냐에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합의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다가 뒤늦게 정부 간 합의로 인정했다. 만약 처음부터 정부 간 합의로 인정했다면 합의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즉 합의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틀 내에서 보완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식인데 이를 하지 않은 것이다. 과거사 이슈를 비판적 자세로 풀려다가 모든 문제가 과거사에 매몰된 상황을 자초했다. 과거사 문제부터 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자세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포괄적 협상을 통해 해결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해당 문제의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 회부를 요청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서 “국제사법재판소나 국제기구에 호소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국제기구가 어느 한쪽의 손을 들었을 때, 이를 양국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결과를 수용하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느냐 하는 측면이다. 판결 이후 한일관계의 추가 악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을 좀더 세밀하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현 단계에서 동의여부를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박 “이 문제는 제3국의 개입이나 국제기구의 판결을 기대하기보다 당사자인 한일 양국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 해결로 이어질 것인가,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 것인가, 해당 판결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성 회복에 도움이 되느냐 등을 좀더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최근 일본은 조선인 강제동원의 증거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 추천을 결정했다. 이 문제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서 “2015년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현장에 있었다. 당시 일본은 주요 관계국가에 고위인사를 파견해 설득했고, 우리 역시 장관이 나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그 결과 일본이 조선인 강제동원의 피해를 기린다는 약속을 했고 우리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는 선에서 타결이 됐다. 이번 사도광산 문제도 처음부터 우리와 사전 협의를 거쳤어야 하는데 일본이 국내정치적 요인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등재 신청을 했다. 일본은 과거 약속부터 충실히 이행한다는 자세를 보이고, 사도광산 문제도 조정해야 한다.”
박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은 무리수라고 본다. 유네스코 등재 원칙이 문화유산의 완전한 역사를 존중한다는 것인데 일본은 강제동원이 이뤄진 메이지시대 역사는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사도광산을 두고 이쪽은 에도시대, 이쪽은 메이지시대로 구분하는 게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직시하는 행보도 아니다. 일본은 군함도 때부터 강제동원 피해를 기린다고 했는데 지키지 않았다. 분명한 약속 위반이다. 이를 시정하는 조치부터 이행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를 두고 일본과 갈등이 이어지다 보니 대일관계 개선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서 “실제로 경제통계상 한일교역이나 경제협력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지역전략 측면에서 양국 간 이해관계가 달라진 면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국익을 추구해 가는 데 있어 여전히 중요한 이웃이다. 양국 경제도 상호의존적 관계로 통합돼 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대전환 시대에는 한일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의 필요성이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안보 측면에서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상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복원 등 조속한 신뢰회복 조치에 나서고 지소미아 문제도 안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포괄적·점진적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 등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정부가 가입에 긍정적 자세를 보였기 때문에 이 입장을 계승할 생각이다. 일본과는 공동이익을 도모할 분야가 많다.”
박 “지소미아는 한국을 위해 필요하다. 북한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미·일 협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맹을 맺을 것이냐 여부의 문제라면 이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외교안보 사안에 주권적 인식을 갖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결정해 나가겠다. CPTPP 문제는 5년 전에 진작 가입 신청을 했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 계속 미루다 중국이 가입한다고 하니 이제 와서 하겠다는 건데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자유무역협정도 마찬가지지만 개방적 통상 질서는 도움이 된다면 가입해야 한다.”
서 “2015년 당시 박근혜 정부는 한중 FTA를 적극 추진하면서도 한일 FTA 체결 및 TPP 가입 추진에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CPTPP 문제는 이전 정부에서부터 취해왔던 입장이지 문재인 정부가 시작한 게 아니다.”
-한일관계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나 외교부의 조직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나.
박 “외교 분야를 다룰 때 국내 정치상황을 너무 많이 고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외교는 지나치게 국내정치화돼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지시만 했지, 전문가나 실무진과 소통이 없었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교 전략을 대부분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했다. 양국 모두 청와대와 수상관저가 모든 사안을 장악하고 실무 부서에 실행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구조다.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부가 중심에 서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조직 개편보다는 인적자원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가며 실무 부서가 일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 나갈 생각이다.”
서 “외교안보 문제가 지나치게 국내정치화돼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각 부처가 고유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체제를 개편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은 전략소통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추진해야 한다. 외교부 역시 보다 자율적이고 유능한 외교정책 수립 및 수행 체제를 갖추도록 바꿔야 한다. 대일관계와 관련해서는 외교부의 국·과 단위가 너무 세분화돼 있다. 시스템적으로 사안을 종합적으로 보고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시적으로라도 민간 전문가들까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 등의 조직을 구성해 운용할 필요가 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