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단둥 ‘고속철’로 달린다면

일자리·기후·긴장 완화 한번에 잡을 ‘ETX’

대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박빙 승부로 예측되는 가운데 대선주자들은 승리를 위해 2030세대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다. 이번 대선 판도를 가를 수도 있는 다음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은 무엇일까?

영남권 4개 철도노선 중 하나인 동해선을 KTX-이음 고속열차가 달리고 있다. / 국가철도공단 제공

아마도 첫 번째는 그 어느 세대보다 취업준비로 고달픈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제는 거의 재앙 수준으로 다가온 기후변화 위기 대응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자리 창출과 기후변화 극복은 상쇄 관계(trade-off)라고 알려져 있다. 일자리를 늘리다 보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다 보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필자의 의견이지만 통일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통일문제는 젊은 세대에게는 거의 인기 없는 어젠다다. 하지만 통일문제는 미중 패권 다툼이 격화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의제가 아니다. 한반도 생존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서 한반도의 장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의제라고 생각한다.

서울서 4시간 45분이면 베이징 도착

그런데 이 세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신의 한수 같은 정책이 있다. 바로 동아시아 고속철도(ETX: East Asian Train Express)다. 2021년 현재 남한에는 1040㎞, 중국에는 3만9000㎞의 고속(화)철도가 운행 중이다. 그런데 만일 서울~개성~신의주~단둥까지 410㎞의 고속철도가 건설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런던역에서 유로스타에 오르면 파리역에 도착하듯, 서울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중국행 ETX에 탑승하면 불과 4시간 45분이면 베이징역에 도착할 수 있다. 이런 ETX가 개통된다면 서울~평양~신의주를 잇는 경의축은 세계적 투자가 짐 로저스가 예측한 대로 세계의 투자 핫플레이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ETX는 서울~평양~선양~창춘~베이징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연결해 배후인구 4억2500만명, 국내총생산(GDP) 6000조원의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고속철도 메갈로폴리스 경제권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외국 사람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다.

2017년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 관계자들을 만난 적 있다. 당시 유엔은 대북제재 중이고 남북 관계도 꽁꽁 얼어붙어 미래가 불투명했음에도 그들은 언젠가 서울~신의주에 고속철도가 놓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럴 경우 자기들도 투자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재정이 열악한데 무엇으로 공사 대금을 받아가겠냐”고 묻자 그들은 “역 주변 개발권이면 된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KTX 없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불과 17년 전 2004년 4월 1일 개통한 경부고속철도는 짧은 시간에 국토 공간 구조를 완전히 바꿔 놓았고, 이젠 그 KTX가 광역철도 GTX로 변신 중이다. 하지만 경부고속철도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 얼마나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걸 아는가? 경부고속철도가 언급되기 시작한 건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서 경부축에 새로운 철도시설을 권고했고, 이에 프랑스와 일본의 철도 전문가들이 와서 조사하고 돌아갔다. 자동차가 늘며 경부고속도로에 정체가 시작되던 1983년 다시 서울~부산 고속철도 타당성 조사를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경부고속철도가 국민의 입에 회자하기 시작한 건 1987년 12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채택하면서부터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1989년 7월 경부고속전철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다. 1990년 6월 서울~천안~대전~대구~경주~부산을 잇는 총연장 409㎞, 설계속도 시속 350㎞급 경부고속전철 노선이 발표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김영삼 문민정부를 지나는 동안 고속철도 부실공사 사건, 필요성 논쟁, 수요 과다 추정 논란까지 고속철도는 난파 위기에 몰렸다. 파선 위기에서 경부고속철도를 살려낸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의 용단으로 재추진된 경부고속철도는 결국 2004년 4월 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때 개통됐다. 개통 첫해 1980만명의 승객으로 시작한 경부고속철도는 연평균 11%씩 성장해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9418만명(KTX+SRT)을 돌파했다.

경부고속철도 얘기가 나왔을 때 “기초기술도 없고 국가재정도 충분하지 못한데 왜 졸속 추진하는가?”, “서울서 부산까지 겨우 400㎞밖에 안 되는 나라에 최고시속 350㎞급 고속철도가 무슨 필요 있냐?”, “이용객이 많아야 1년에 1500만명도 넘지 않고 운임이 30만원은 될 텐데 누가 타겠느냐?”는 등의 반대 여론이 많았다. 이때 포기를 했다면 지금도 우리나라는 고속철도가 없는 나라로 경부고속철도가 가져온 기술혁신은 먼 나라 얘기로 끝났을 것이다.

동아시아 개편할 혁명적 트리거

ETX 건설론도 마찬가지다. 북한에 고속철도를 건설해 남한~북한~중국을 연결하는 ETX를 놔야 한다고 얘기하면 “또 그 소리요?” 하면서 아예 들으려고도 않는다. 왜냐하면 ETX를 북한 기존 철도 개보수 정도의 이벤트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도 조심스럽다. 독자들로부터 ‘또 한명 몽상가 등장했네’란 빈정거림을 들을까봐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TX 얘기를 안 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사업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이다. ETX가 연결되면 필자의 계산으로는 남한이 50%의 지분을 소유할 시 생산효과 13조5000억원, 고용유발 효과 연인원 약 23만명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기존 항공기 여객을 고속철도 여객으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간 251만t의 CO₂ 배출량 감축(연 1000만명 기준)이 가능하다. 현재 각 캠프의 공약 중에 이 정도 메가톤급 공약이 몇개나 있을지 궁금하다.

KTX가 지난 17년간 대한민국의 공간을 개편하는 혁명적 트리거(trigger)였다면, ETX는 향후 50년 이상 동아시아를 개편할 혁명적 트리거가 될 것임이 자명하다. ETX가 견실하게 정착만 된다면 동북아에서만 매년 수천만명이 고속철도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ETX는 자연스럽게 북핵으로 긴장된 한반도에 이완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경제적 통일을 통해 평화로운 정치적 통일까지도 꿈꾸게 할 것이다. 국가 대계를 좌우하는 정책은 정권, 정파를 초월해 추진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ETX가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평화와 번영의 먹거리를 남겨줄 수 있는 사업임을 인식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대통령직속 ETX추진위원회’를 설치해 온갖 난제를 풀며 추진해야 한다.

미·중·러·일의 자국 우선주의 거센 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한반도에 통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동아시아에 세계 최고의 스마트 메갈로폴리스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북핵과 인구 절벽의 네크로폴리스 한반도를 만들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 몫이나 결과는 자손의 몫이 될 것이다.

<진장원 한국교통대학교 유라시아교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