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처럼, 의원 배지 달아볼까

국회 보좌진 출신, 민주당 31명 통합당 15명 등 총 50여 명 총선 출마

지난해 방영된 JTBC의 드라마 <보좌관2-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서 이정재(장태준 역)는 대한당 소속 성진시 국회의원 역할을 맡았다. <보좌관> 시즌1에서 이정재는 보좌관이었는데, 시즌2에서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민주당 전상헌 예비후보, 통합당 김진권 예비후보, 정의당 이호성 예비후보(사진 왼쪽부터)

드라마 <보좌관> 속 이정재처럼 보좌관 생활을 하다 의원을 꿈꾸는 후보들이 이번 총선에서 대거 나섰다. 국회 내부에 보좌진들이 갖고 있는 명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에서 31명, 미래통합당에서는 15명이 각각 총선에 출마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예비후보까지 포함하면 50여 명의 보좌진 출신이 이번 총선에 나선 것으로 추산된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이들 앞에 놓인 정치 현실은 드라마처럼 낙관적이지 않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보좌진 출신들이 공천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자, 당 보좌진협의회(미보협)에서 3월 3일 건의문을 발표할 정도였다. 보좌진협의회는 “우리 보좌진들은 오랜 기간 동안 국회에서 다양한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온 준비된 인재들”이라면서 “우리 당 보좌진 출신들이 여당 후보와 치열하게 싸울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마련해 달라”고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에 건의했다.

보좌진 “우린 준비된 인재” 공천 건의

김진권 보좌관회장 협의회 의장(부산 서구·동구 예비후보)을 비롯한 예비후보도 함께 기자회견장에 나섰다. 김 의장은 건의문을 직접 낭독했다. 전화통화에서 김진권 예비후보는 “아직까지 우리 당에서 보좌진 출신이 한 명(3월 4일 현재)도 공천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3년 한나라당 보좌진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김 예비후보는 “보좌진은 입법 활동에서 경험이 많고 능력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에 혁신 공천이라는 기준에 부합할 뿐더러, 향후 대선의 최전선에서 뛸 역량도 충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예비후보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국회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다. 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법무법인 지평에서 근무했다. 김 예비후보가 출마한 부산 서구·동구 지역구는 2월 28일 추가공모 지역으로 발표됐다. 이날 미보협이 발표한 건의문에는 김 예비후보를 비롯해 보좌진 출신인 류길호(대구 북구갑)·남호균(대구 달서구병)·이영수(대전 유성구을)·허청회(경기 포천시·가평군)·김병욱(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권정욱(경북 안동시)·추대동(경북 구미을)·정희용(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예비후보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3월 3일까지의 공관위 분위기를 감안하면, 보좌진 출신 예비후보자가 공천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통합당의 한 인사는 “보좌관 출신 후보가 아직 당 후보로 공천받지 못한 것을 보면 공천관리위원회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면서 “보좌진은 단순히 보좌하는 인물로 볼 뿐이고, 외부 인사를 더 선호하는 시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통합당에 비해 민주당은 보좌진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역구 경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3월 3일 국회에서 미래통합당 보좌진협의회가 당 지도부와 공천관리위원회에 부탁하는 건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경북 경산에 출마한 전상헌 예비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후 민주당 후보로 공천을 받았다. 전 예비후보는 민주당으로서는 험지인 대구·경북에 출마한, 독특한 사례다. 전 예비후보는 2004년 17대 총선 때 민주당 이광재 의원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국회로 왔다. 7급 수행비서로 시작해 2년 뒤 비서관, 또 2년 뒤 보좌관으로 승진했다. 전 예비후보는 “이광재 전 의원 역시 수행비서부터 시작했다고 한다”면서 “자신에게 수행비서부터 시작해 일을 배우도록 했다”고 말했다. 전 예비후보는 국회에서 2013년까지 8년 11개월 동안 일했다. 전 예비후보는 “보좌관들은 정책·입법·정무를 두루 섭렵해 법률과 정책을 정치 현장에 접합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민주당에게는 험지지만 꼭 당선돼 ‘일 잘하는 국회의원’이란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이 지역의 선거활동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 예비후보는 “지역구 유권자들에게 지역 발전 정책을 알리는 것이 너무 힘들게 됐다”면서 “제대로 못 알리고 선거해야 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20대 국회 보좌진 출신 의원 모두 36명

전 예비후보 같은 보좌진 출신 후보들이 민주당에서는 하나둘씩 공천되고 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서울 강동구을), 김원이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전남 목포), 신영대 전 청와대 행정관(전북 군산), 김명기 전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강원 동해시·삼척시), 강득구 전 경기도의회 의장(경기 안양시 만안구), 최종윤 전 서울시 정무수석 비서관(경기 하남시), 조한기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충남 서산·태안) 등은 당내 공천을 따내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한 후 서울 구로을에 공천을 받은 윤건영 예비후보도 국회 보좌관으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보좌진 출신 후보 간의 진검승부도 있다. 장철민 예비후보(대전시 동구)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해 4·15총선에서 이장우 미래통합당 의원과 한판 승부를 붙게 된다. 이 의원 역시 보좌진 출신이어서 흥미로운 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에서는 보좌관 출신 예비후보가 거의 없다. 2004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이호성 예비후보(서울 구로갑)가 겨우 눈에 띌 뿐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10석을 진출시킨 17대 국회에서 이 예비후보는 4년 동안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이 예비후보는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가능성과 한계를 봤다”면서 “당시 국회의 권위주의 문화를 타파하는 데 진보정당이 큰 역할을 했지만, 교섭 단체가 되지 못함으로써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17대 국회를 마치고 이 예비후보는 서울 구로갑에서 지역 활동에 전념했다. 이 예비후보는 “지역에서는 1999년부터 활동했는데, 진보정당으로서는 지역구 돌파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예비후보로 나섰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도 출마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당선됐다. 이 예비후보는 “지역구에서 진보정당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기성정당 못지않게 계속 준비하면 언젠가 기회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7월, 20대 국회에서 의원들을 전수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모두 36명의 의원이 보좌진 생활을 거쳤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윤호중·조정식·기동민·이철희 의원 등 20명,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에서 김학용·이양수 의원 등 10명이었다. 기타 정당과 무소속이 6명이었다. 보좌진에서 의원이 되려는 예비후보들에게 보좌관 출신 의원들은 하나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