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보수로부터도 외면받는 이명박 정권

안병직 이사장·이상돈 교수·선진코리아국민연합 등 신랄한 비판

"초기에는 정권 교체의 여파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탓에 주춤했지만 지금은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의 한 사람인 소설가 복거일씨의 현 정부 1년에 대한 총평이다. 그는 “대통령의 판단은 훌륭했지만 추동력이 부족했을 뿐”이라면서 “경제정책에서도 큰 실책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근혜 대표와 관계를 개선하는 등 정치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주문했을 뿐, 현 정부에 대해 후한 점수를 매겼다.

‘10년 만에 좌파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 교체를 이루어낸’ 한국의 보수우파는 이처럼 현 정부에 대해 마냥 호의적이기만 할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명박 정부는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균열을 초래하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과연 집권여당이 쟁점 법안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쳤는지 알 수 없다. 쟁점 법안은 내용의 당(當) 부당(不當)을 떠나 많은 논의가 필요한데 말이다. 입법은 토목공사가 아니며, 국정은 건설업이 아니다.”

“대운하·수도권 규제완화 국민 기만”

이상돈 중앙대 교수. <이상돈 교수 제공>(왼쪽),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박민규 기자>

1월 5일 중앙대 이상돈 교수가 한나라당이 85개 법안의 직권상정을 시도하며 벌어진 국회 파행을 지켜보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절차의 민주적 정당성을 문제삼는 비판의 뾰족함이 진보 논객의 신랄한 말투를 닮았다. 이 교수는 <월간조선>이나 <독립신문> 같은 보수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노무현 정부의 국가보안법과 사학법 개정 시도가 잘못됐다고 보는 ‘보수우파’다. 그런 그가 지난해부터 홈페이지와 언론 기고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국정 운영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검찰의 PD수첩 수사에 대해서는 “도무지 그런 보도가 무슨 범죄를 구성하는지 아리송”하다고 꼬집었고,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는 두바이 정부의 천문학적 부채 규모를 지적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과 더불어 ‘세계적인 탁월한 CEO’라고 했던 두바이의 통치자의 허황된 돈 놀음에 세계가 속았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가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준거점으로 삼는 것은 정통 보수의 가치관이다. 그가 보기에 현 정부는 ‘점진적 변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정통 보수의 가치관에 역행한다. 그는 “이 정부가 성공할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실패가) 빨리 왔다”고 말했다. 이른 실패의 원인은 ‘오만함’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에는 반 노무현 정서가 크게 기여했다.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만하게 출발했다”면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낳은 주요 원인 중 하나도 대통령의 오만함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경제적 타당성이 전혀 없는 대운하를 이름까지 바꿔가며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4대 강 정비 사업으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건 역사적인 경험과 상반되는 주장”이라면서 “환경 영향 평가나 하천법의 규정을 어기고 있는 만큼 소송이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미국은 농업에 보조금을 주는 나라다. 그런 국가와 체결한 FTA를 어떻게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법대로’도 이 교수가 보기에는 정당성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은 형식적 법치주의에 불과하다. 다수결 만능주의에 함몰된 한나라당의 법안 강행 처리 시도가 일례다. 그는 “별다른 토론도 여론 청취도 없이 법률안을 무더기로 통과시키려는 시도는 그 자체가 민의를 수렴하라고 만들어놓은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것”이며 현행 민사소송법으로도 구제할 수 있는 시위 피해를 집단소송으로 대처하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법과 정의는 동전의 두 면과 같아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법치는 저항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리아국민연합이 작년 11월 보수 일간지에 낸 광고.

“실패 원인은 대통령의 오만함 때문”
이명박 정권의 좌충우돌은 한나라당 외곽의 뉴라이트 단체로까지 번졌다. 지난해 11월 친박 성향의 선진코리아국민연합은 조선·중앙·동아일보에 ‘보수가 도덕성을 잃으면 국가 기반이 무너진다’는 제목으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5단 광고를 실었다. 선진코리아국민연합은 광고를 통해 한반도 대운하와 수도권 규제 완화는 “국민 기만”이고 “MB노믹스의 실패는 세계 금융 위기와 무관하다”며 집권 보수세력을 맹렬히 비난했다. 이 광고가 나가자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총장은 “선진코리아국민연합은 좌파로 사상을 전향하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1998년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3대 소장을 지낸 이 단체 석종현 대표는 집권 보수세력의 문제는 “자기 반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라면서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기 위해서는 집권 세력이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그 요건”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의 대부’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가 통합의 정치에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 정부가 대미관계와 대북관계 등 외교관계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얻었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안 이사장은 “정부가 국민들의 이념적 분열을 수습하지 못하고 국민통합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사정책에서 “전문성은 둘째치고 인재 등용의 폭이 너무 좁아 국민 대표성이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능력보다는 도덕성에 문제가 있고 국민통합이 안 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에서 제기하는 ‘민주주의의 퇴행’ 문제에 대해 안병직 이사장은 “지금은 오히려 한국 민주주의는 과잉”이라면서 “광우병 파동이나 국회 점거는 민주주의의 파괴”라고 말했다. 석종현 대표는 “민주화의 훼손이 아니라 법치의 훼손”이라면서 “현 정국 상황을 민주화 성과와 결부시켜 퇴행 여부를 논하는 것은 주관적이고 이해타산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상돈 교수는 촛불집회가 휴지기에 들어갔던 지난해 7월 2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종의 ‘중우정치(衆愚政治)’라는 주장은 물론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쇠고기 협상이 과연 잘 한 것인가’, ‘한반도 운하는 건설해도 되는 것인가’를 묻고 싶다. 만일 이 두 개의 질문에 모두 긍정적으로 답변하지 못한다면,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의 대의민주주의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