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트랜스젠더가 나오는 만화들(상)

트랜스젠더 재현 더 많아지길

김기홍 씨와 변희수 하사가 유명을 달리한 후, ‘만화평론가’로서 모종의 사명감을 갖게 됐다.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만화를 찾아 소개하고 싶었다. 이심전심인지, 박희정 선생이 <나단이라고 불러줘>(카트린 카스트로, 상어, 2020)로 훌륭한 글을 써주었다. 주변인들의 변화가 나단의 ‘그 자신다운 삶’을 가능하게 했음을 힘주어 말한 그 글에 더없이 공감했다. 죽음을 멈출 변화가 ‘지금 당장’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너무나 동의했다. 하지만 댓글은 참담했다. 트랜스젠더는 물론이고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조차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마치 트랜스젠더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듯이, 이 글은 그 말들에 대한 응답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는 적어도 만화 안에서 많지 않다.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만화 작품은 단 4편이다. <나단이라고 불러줘>를 비롯해 <내 이름은 샤이앤,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샤이엔, 꿈꾼문고, 2020),

만화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의 표지 / 길찾기 제공

<내 이름은 말랑, 나는 트랜스젠더입니다>(말랑, 꿈꾼문고, 2020), 그리고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코니시 마후유, 길찾기, 2017)까지. 여기에 로맨스 장르에서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배치한 <태주씨의 완벽한 결혼생활>(쿠키문·김효영, 비독점, 2017) 같은 작품이나, <이태원 클라쓰>(광진, 다음웹툰, 2016~2018)처럼 트랜스젠더가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작품을 포함한다 해도 단 10편이다.

내 눈길이 미치지 않은 작품들이 더 있겠으나, 웹툰과 만화책, 해외작품의 국내 출간작과 국내 작품을 통틀어 근 20년간 족히 1만종은 넘게 발표됐을 만화 가운데 10편 남짓이라면, 결코 많지 않다. 그래도 일단은 이 작품들로 서론 격의 이야기를 해보자.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갖는 의미로 거칠게 두가지를 들고 싶다. <나단이라고 불러줘>처럼 사회 내 존재로 트랜스젠더를 가시화하는 것이 첫 번째다. 트랜스젠더를 잘 모르거나 경험하지 않은 이들에게 간접적인 경험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첫 번째 의미의 주요대상이 비트랜스젠더라면, 두 번째 대상은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다. 트랜스젠더들이 성장 과정에서 성별 불쾌감(gender dysphoria)을 경험할 때, 주변에서 자신을 이해할 참조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고난 성별이 잘못되었다!>의 작가이자 주인공 코니시 마후유도 그랬다. 육체와 정신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이해하지는 못한 채로 성인이 됐다. 그가 22세에 이르러 처음 만난 트랜스젠더는 게임 속 인물이었다.

트랜스젠더 재현이 당사자들에게 미치는 효과는 정체감 제공으로 그치지 않는다. 내 트랜스젠더 친구는 이미 스스로를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로 변환된 <이태원 클라쓰>의 마현이(이주영 분)를 통해 보다 나은 정체감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 트랜스 여성은 성적 대상으로 재현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끼 부리지 않는’ 마현이 캐릭터가 더욱 반가웠다고 했다. 나를 닮은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지지받으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마치 나를 향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그것을 내 친구는 만화로부터 얻었다.

만화로 본 세상

서론은 여기까지다. 본론은 다음 칼럼에서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직접 펴낸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이어갈 것이다. 조용히 있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이들을 잃었다.

<조익상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