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캉스’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일찍 찾아온 연휴 쉽게 다녀올 만한 국내외 관광지

올해 추석 연휴는 예년보다 비교적 짧은 4일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 한·일관계 악화로 그저 ‘먼 나라’로만 남은 상황에서 짧은 추석 연휴나마 알차게 여행으로 채우려는 ‘추캉스’ 여행객들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연휴기간이 짧은 데다 늦여름 기온이 남아있을 정도로 이르게 찾아온 명절 연휴라는 점, 일본 대신 국내로 눈을 돌리는 발길이 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헤매지 않고 결정을 내리기엔 좋을 수도 있다. 너무 먼 해외나 교통체증이 예상되는 곳들은 일찌감치 선택지에서 지워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의 예약 데이터와 추천을 바탕으로 추석 연휴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국내외 여행지를 정리했다.

강원도 삼척의 나릿골마을 전경. / 한국관광공사 제공

가성비 높은 국내 ‘마을여행’

비단 추석이 아니더라도 ‘호캉스(호텔+바캉스)’는 국내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를 넘어 대세로 자리잡았다.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여행기간이나마 깨끗하고 편안한 호텔에 자리를 잡고 쉬다가 여유있게 주변을 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까운 곳에 돌아보기 좋은 명소들과 맛집까지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다.

다만 추석 연휴 기간 동안의 국내 여행을 생각한다면 명절에 쉬는 곳은 없는지, 이왕이면 고향을 방문하고 오는 길에 들러 시간을 아낄 만한 곳은 없는지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기대만큼은 톡톡히 채워주는 ‘가성비’ 높은 선택지가 된다. 마침 한국관광공사에서도 올해 가을 여행주간의 주요 테마 중 하나로 ‘마을 여행’을 추천하고 있어 도시 또는 농·어촌 등 취향에 맞고 거리도 가까운 여행지를 쉽게 고를 수 있게 됐다.

강원도 삼척의 나릿골마을은 여행을 즐기는 일행의 취향이 각기 다르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볼거리를 갖춘 곳이다. 마을 자체는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은 어촌마을의 느낌이지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옹기종기 모인 집들의 원형은 그대로 보존하고 도보로 마을을 돌아보기 쉽게 정비했다. ‘감성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도시재생사업을 거친 나릿골바람길이나 해안골목길을 따라 걷다가 바다 쪽으로 내려가거나 마을 언덕 감성전망대로 올라가 바라보는 바다와 마을 풍경 모두 운치가 있다. 바다를 낀 절경을 더 보고 싶으면 가까운 장호항으로, 동굴 속 탐험을 하고 싶으면 환선굴로 이동하기도 쉽다. 장호항에서 해상케이블카를 타면 공중에서, 해양레일바이크를 타면 지상에서 바닷바람을 안고 가을철 동해의 바닷내음을 느낄 수 있다.

경북 성주 한개마을의 고택과 돌담길 풍경. / 한국관광공사 제공

최근 일고 있는 반일 기류를 타고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무렵의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전국 곳곳에 남은 근대문화유산의 자취를 만나고 싶다면 충남 논산의 강경근대문화마을을 들러도 좋겠다. 예부터 강경은 논산평야를 가로지른 논산천과 강경천이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어서 수로과 육로를 잇는 조선 양대 포구가 있었고 상권도 번성했던 곳이다. 그때의 번화함은 지금의 국내 최대 젓갈시장으로 이어지지만, 근대문화거리에 남은 문화유산들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구 한일은행과 구 강경노동조합, 강경성당 등은 물자가 모이는 도시여서 일찍 근대를 맞았던 강경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들이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고 하는 팔괘정과 강과 숲이 어우러진 논산팔경 중 하나인 옥녀봉도 자리잡고 있다.

근대 역사문화유산을 찾아서

전남 담양의 삼지내마을은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명절 연휴의 여유를 느리게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에 걸맞게 3.6㎞에 이르는 옛 한옥집 돌담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골목과 어우러진 고택들의 아름다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창평현문을 들어서 역시 허전한 듯 남아있는 남극루를 지나면 시작되는 삼지내마을은 수백 년 동안 허물어진 곳이 생길 때마다 하나하나 보수하며 오늘에 이른 돌담길처럼 느림의 미학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 담양 하면 떠오르는 대나무숲을 보고 싶다면 죽록원을, 숲과 집의 조화를 보고 싶다면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불리는 소쇄원을 방문하는 여행코스도 당일에 소화할 수 있다.

대전에서 가기에는 강경근대문화마을이, 광주에서 가기엔 삼지내마을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대구에서는 경북 성주 한개마을이 들르기 좋다. 큰 개울 또는 큰 나루라는 뜻의 ‘한개’라는 마을 이름처럼 600년이 훌쩍 넘는 마을의 역사와 함께 옛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한옥마을이다. 성산 이씨의 집성촌으로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전국의 7개 마을 중 한 곳이어서 특히 추석 분위기에 걸맞은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이곳 역시 조선시대 지어진 고택들과 집과 집 사이를 가르는 돌담길이 남아있어 도시에서는 맛보기 힘든 고향의 추억을 느끼게 해준다. 마을 안에는 여전히 종손들이 살고 있는 고택들과 월봉정, 서륜재 등 옛 모습이 그대로인 정자가 남아있고, 가까운 거리에 삼봉서당과 감응사·모선재와 세종대왕 왕자 태실이 있다. 태실은 세종의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1기를 합쳐 모두 19기로 조성돼 있다. 성주읍성 자리 부근에 남은 성밖숲으로 가면 수령이 500년까지 되는 왕버들 59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룬 풍경도 볼 수 있다.

추석 연휴 기간이 아니더라도 수도 서울은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여행지이기도 하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던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명절을 맞아 텅 빈 서울을 거니는 것도 나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특히 서울에도 군데군데 남아있는 마을의 모습을 찾아 추억 어린 골목길을 걸어보는 여행을 생각한다면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이 제격이다. 과거 한양도성 성곽 바로 아래에 있던 마을이어서 전형적인 달동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며 달동네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과 경사지고 좁은 골목, 알록달록한 지붕이 서울의 옛 모습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마을로 남았다. 조선시대 궁중에 바치는 메주를 만드는 일을 이 마을에서 했기 때문에 온 마을 사람들이 북적여서 북정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이곳은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자 만해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 시인 백석의 사연이 얽힌 요정 대원각에서 법정스님이 사찰로 탈바꿈시킨 길상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과 함께 국내 대표 여행지인 제주도에서도 역사의 흔적이 있는 마을을 찾을 수 있다. 제주 시내와 바로 접하고 있는 곤을마을은 원래 43호가 살고 있던 해안마을이었지만 제주 4·3 당시 토벌작전으로 주민들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불태워져 지금은 집터였음을 알 수 있는 올레와 돌담들만 남아있는 곳이다. 제주올레길 18코스 가운데 있어 올레길 답사를 하며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역사의 어두운 흔적을 되새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 가까운 곳에 제주 4·3평화공원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남긴 비행기 격납고와 탄약고 흔적을 볼 수 있는 알뜨르비행장이 있어 역사의 어두운 장면들을 되새기는 ‘다크투어’ 여행지로 방문하기에 손색이 없다.

베트남 다낭의 석양 / 다낭 관광청

일본 대체 여행지 어디가 좋을까

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떠날 예정이라면 올해는 다른 여행객들의 선택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겠다. 일본을 여행지로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대체 여행지로 갈 만한 곳이 한정적이라고 느낄 법하지만 직항으로 비행시간 4~5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여행지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휴양지에 가까운 분위기를 원하는지 또는 특색있는 도시 풍경과 즐길거리를 기대하는지에 따라 선택의 폭을 좁힌 뒤 비행시간과 거리, 여행지 내에서의 일정을 염두에 두고 지역을 선택하면 된다.

아시아권 최대 온라인 여행사 트립닷컴이 올 추석 연휴 기간 한국인 여행객의 항공·호텔 예약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인기 도시의 특성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항공과 호텔 모두 상위 10개 도시 안에 들어간 곳은 중국 상하이, 대만 타이베이, 태국 방콕, 베트남 다낭, 필리핀 세부가 포함됐다. 상하이와 타이베이는 비행시간이 짧고 직항편이 많은 대도시, 방콕은 연중 내내 인기가 많은 국제적인 여행 중심지, 다낭과 세부는 휴양지 성격이 강한 지역이어서 특색이 잘 드러났다. 트립닷컴 관계자는 “이번 추석은 예년보다 연휴가 짧아 상하이와 타이베이 등 중·단거리 여행지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하이는 추석 연휴 기간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일단 중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대도시이기 때문에 고층빌딩 숲이 보여주는 화려한 야경을 비롯해 특급호텔 등 ‘가성비’ 높은 숙소 환경, 이동에 편리한 대중교통 등 여행에 도움되는 점들이 많다. 근사한 도심 풍경을 보여주는 와이탄을 비롯해 상하이를 대표하는 정원으로 중국 전통의 멋을 감상할 수 있는 예원, 옛 프랑스 조계지여서 이색적인 유럽풍 건물이 남아있는 신천지(新天地)와 역시 유럽식 공원으로 만들어진 황푸공원 등이 꼭 들러야 할 관광지로 꼽힌다. 신천지 근처에는 상하이 임시정부가 자리잡고 있던 유적지가 남아있어 현 시국에 걸맞게 한국인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중국 본토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이는 두 도시 홍콩과 마카오 중 홍콩이 연이은 시위와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방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면서 반사적으로 마카오를 택하는 여행객들이 늘었다. 특히 과거에는 홍콩과 묶어서 여행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마카오는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1박 이상 머물러도 볼거리가 많은 여행지라는 것이 여행업계의 평가다. 특히 ‘호캉스’를 계획한 여행객이라면 홍콩보다 훨씬 싼 호텔 가격에, 다른 계열사 호텔이더라도 호텔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는 장점, 교통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호텔 무료 셔틀버스 등의 혜택을 미리 찾아보고 준비해서 가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여기에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마카오의 중국·포르투갈 퓨전 음식문화와 길거리 음식문화도 발달한 점은 여행객들을 끄는 매력이다.

중화권의 도시 중 타이베이 역시 대중교통이 잘 마련돼 있고 시내와 근교 모두 볼거리가 많다는 점 때문에 짧은 추석 연휴에도 충실히 이곳저곳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지로 꼽힌다. 특히 타이베이는 9월 중순에도 기온이 한국보다 높아 체력이 달린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그나마 힘이 남아있는 첫날에 시내 중심권을 도보로 여행한 뒤 다음날부터는 지하철과 버스로 시 외곽의 유명 관광지 단수이·베이터우 온천을 구경하고 고궁박물원과 스린 야시장을 본 뒤 시내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을 택하면 효과적이다. 셋째 날이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면 열차를 타는 동안 쉴 수 있게 핑시선 기차를 타고 근교로 나갔다가 시내로 돌아와도 좋고, 만일 4일 이상의 여행이 가능하다면 타이베이 시내에서 마사지나 쇼핑관광 등을 하며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다낭과 냐짱, 한국인에 인기 높아

베트남의 다낭과 냐짱은 두 도시 모두 휴양도시의 성격이 강해 각각의 특색과 장점을 살펴본 뒤 어느 곳으로 갈지 정하면 좋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베트남 국토의 중앙에 있는 다낭과 그보다 남쪽에 자리잡은 냐짱 모두 신선한 이미지에 고급 리조트가 자리잡은 휴양지라는 점이 비슷하다. 주요 여행사들의 예약 현황을 볼 때 직항편도 많은 다낭을 찾는 한국인이 더 많으므로, 방문한 여행지에서 온통 한국인 여행객들만 보이는 상황이 싫다면 냐짱을 택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동행하는 여행객의 연령대도 감안해야 하는 형편이라면 풍등 마을로 유명한 호이안 등 비교적 높은 연령대에서 선호도가 높은 유명 관광지에 가까운 쪽은 다낭, 놀이공원과 워터파크, 키즈카페처럼 어린아이들이 즐길 만한 시설이 이용하기 쉬운 쪽은 냐짱이다.

보라카이 해변의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길 수 있는 필리핀 칼리보와 바다의 석양 풍경으로 유명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도 휴양지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두 곳 모두 깨끗한 바다에서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청정한 자연환경이 공통적이어서 연휴를 이용해 큰맘 먹고 즐기려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끈다. 다만 필리핀 보라카이는 바다에 흘러든 해양쓰레기 때문에 오염되어 6개월 동안 폐쇄됐다가 바다가 깨끗해지면서 해변을 이용할 수 있게 돼 다시금 세계 각국에서 여행객들이 몰리는 형편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곳을 비교하면 젊은 여행객들이 즐길 시설이 많은 칼리보·보라카이와 안전한 치안에 저렴한 물가로 인원이 많은 가족들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휴양지인 코타키나발루의 장점을 보고 결정하면 좋겠다.

올해 추석이 9월 중순이라 예년보다 빠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기 여행지가 더운 날씨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극동 항구도시 블라디보스토크는 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라 불리는 이곳은 서울에서 2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고, 다른 아시아권 여행지와는 색다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게다가 물가가 저렴한 데다 작은 도시 규모로 여행 일정도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어 시간적·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는 장점도 손꼽힌다. 숙소는 블라디보스토크 여행의 중심지인 아르바트거리 인근으로 선택하면 주요 관광지인 혁명광장, 개선문, 해양공원 등의 명소를 도보 10분 이내로 이동이 가능하다. 해적 커피 등 국내에도 알려진 맛집과 러시아만의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는 상점들도 도심에 몰려 있기 때문에 식사와 쇼핑을 즐기기도 편리하다. 특히 식사로는 저렴한 물가와 항구도시라는 이점 덕에 해산물 요리를 국내보다 값싸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많아 식도락을 즐기기에도 좋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