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스위치 프로젝트

최약자에게 폭력이 왔을 때, 그 세상은 종말

작품 초반에 스위치가 던지는 “내가 죽으면 세계가 멸망해”라는 말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지만, 웹툰을 따라가다보면 이 세계멸망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명확해진다.

“내가 죽으면, 이 세계가 멸망해.”

넾 작가의 만화 <스위치 프로젝트>의 한 장면 / 케이툰

한 햄스터의 말이다. 햄스터가 말을 하는 것도 황당한데, 자신이 죽으면 멸망한다니 이 얼마나 뜬금없는 소리인가. 햄스터의 수명은 평균 2~3년이지만, 웹툰 <스위치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햄스터 ‘스위치’는 25년을 넘게 살았다. 스위치는 연경의 할머니인 강례와 함께 살다가, 강례가 죽은 뒤 연경의 집으로 건너왔다. 스위치라는 이름은 세계 멸망의 스위치라는 뜻으로 연경이 붙인 것이다. 스위치의 꿈은 ‘세계정복’이다. 왜 세계를 정복하고 싶으냐는 연경의 물음에 스위치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죽으면 이 세계가 멸망하니까, 멸망하지 않기 위해선 내가 어딜 가든 안전해야 하거든.”

연경이 햄스터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에 그를 데려온 건 아니다. 오히려 연경은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어떤 일을 겪어도 슬프거나 기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효율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해 회사에서 연경은 ‘소시오패스’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런 연경이 할머니의 집에서 햄스터를 거두어 온 건 할머니의 죽음에서 납득가지 않는 부분들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다.

흔히 ‘폭력은 아래쪽으로 향한다’고 말한다. 윗사람이 중간관리자를 혼내면, 또 중간관리자가 아랫사람을 혼내는 이른바 ‘내리갈굼’ 역시 아래쪽으로 향하는 폭력의 성정을 증명한다. <스위치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폭력의 서사가 주요하게 등장한다. 정직원 전환 심사를 앞둔 인턴 오아름은 늘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회사 일에 임하는데, 신 차장이 아름을 눈여겨보다가 자신의 영업용 접대 자리에 데려간다. 접대 자리에서 아름은 상대 회사 사장으로부터 성희롱당하지만 신 차장은 아름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접대 자리에서 있었던 성희롱 사건은 곧 회사 안의 추문으로 퍼져 아름은 공공연한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만다.

연경이 감정을 잃은 것도 아래로 쏟아지는 폭력 때문이다. 불합리한 사회 구조가 연경의 외삼촌을 실업자로 만들고, 좌절한 외삼촌이 연경 엄마 ‘윤희’와 연경에게 분노를 쏟고, 정서적으로 궁지에 몰린 윤희는 연경을 향해 독설을 일삼는다. 그 이후 연경은 가족이라고 해서 별다른 기대도, 정서적 의지도 하지 않고 무슨 일이든 효율과 합리를 앞세우는 사고방식 속에 갇혀 지내게 된다.

작품 초반에 스위치가 던지는 “내가 죽으면 세계가 멸망해”라는 말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지만, 웹툰을 따라가다보면 이 세계멸망설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명확해진다. 이는 사회의 구조 가장 아래에 위치한 햄스터에게까지 폭력이 내려왔을 때, 그 세상은 사실상 이미 죽어 있거나 곧 멸망하게 될 곳이라는 전언이다. 윤희가 연경에게 독설을 퍼부을 때 연경의 감정이 죽어버린 것처럼 어떤 세계는 폭력으로 인해 실제로 멸망한다.

만화로 본 세상

그러나 <스위치 프로젝트>는 세계가 멸망하는 스위치이기도 하지만, ‘보호가 없어도 모두가 스스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으로 재탄생하는 스위치를 뜻하기도 한다. 스위치가 연경에게 함께 세계정복을 하자고 부르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은 햄스터가 꿈꾸는 세계정복은 앞으로 어떤 이야기로 펼쳐질까. 귀추가 주목된다.

<조경숙 만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