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추적

‘이명박의 남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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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세중나모 기부금 전달모임에서 천신일 회장이 밝게 웃고 있다.

작년 11월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세중나모 기부금 전달모임에서 천신일 회장이 밝게 웃고 있다.

'거물(巨物)’.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이다. 어느 정권에서나 최고권력자와 사적인 인연은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수많은 ‘대통령의 지인’ 중에는 사실 다소 과대포장된 사람도 많다. 또 대통령과 아무리 가까워도 공식적인 직함을 갖다보면 수많은 견제와 질시가 뒤따르기 때문에 오히려 가까운 것이 ‘독(毒)’이 되기도 한다. 천신일 회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과 가깝다는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6·3동지회’ 멤버이며 고대 동기
‘대통령의 몇 안 되는 벗’이자 ‘막후 실력자’로 평가받는 천 회장은 누구고 그의 인맥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천 회장은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이 대통령과 같은 과는 아니지만(천 회장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이 대통령은 경영학과 졸업),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61학번 동기면서 둘 다 ‘6·3동지회’ 멤버이기도 하다. 천 회장과 이 대통령은 명절 때 가족들과 같이 식사를 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이 현대건설 회장 시절에는 같은 아파트에서 살기도 했다. 대선기간에는 고려대 교우회장을 맡아 고대 동문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었고, 지난해 대선 직전에는 이 대통령이 낸 특별당비 30억 원을 빌려준 것도 바로 천 회장이다.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여러 구설이 있었지만 고려대 교우회 행사에 참석했는데 이는 천 회장과 오랜 우정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천 회장은 또 여러 차례 선거에서 이 대통령을 물심 양면으로 도왔고 자신의 여행사 등을 통해 해외 출장 업무도 도맡아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화려한 배경 때문에 정권 출범 후 천 회장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과 맞먹는 ‘파워맨’으로 떠올랐고 4월 총선에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비례대표 0순위’로 거론되는가 하면 5월 치른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도 천 회장의 입김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천 회장은 또 이 대통령이 6억 원을 출연한 재단법인 지에스아이의 이사로 등재돼 있고 최근엔 이 대통령의 ‘재산헌납위원회’ 수장감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천 회장은 재계 실력자와도 끈끈한 인연을 갖고 있다. 그중 삼성과 포스코는 천 회장과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천 회장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그림자’라고 불릴 정도로 이 전 회장과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회장 당시 천 회장이 개인적인 궂은 일을 처리해주면서 각별한 사이가 됐고 지금의 세중그룹이 성장하는 데 든든한 배경이 됐다. 주력 계열사인 세중나모여행의 전체 매출 비중에서 삼성그룹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달할 정도로 삼성그룹사의 여행 물량 대부분을 도맡아하고 있다. 세중나모여행은 현재 서울 태평로 삼성타운의 삼성생명빌딩 19층을 본사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세중이 삼성그룹의 여행 물량을 독점하자 천 회장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인연을 잘 몰랐던 담당직원이 여행사를 교체하려다 이 회장에게 질책을 당했다는 일화도 있다.

세중나모여행은 현재 삼성그룹의 대부분 여행물량뿐 아니라 삼성중공업의 물류사업도 세중이 맡고 있다. 일각에선 삼성이 여행업에 나서지 않는 이유로 천 회장을 꼽을 정도다.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천 회장이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함께 한 인연으로 여행업에 나선 이후에는 삼성그룹사 여행 출장을 대부분 맡고 있다”면서 “이건희 회장과도 돈독한 사이로, 삼성그룹사뿐 아니라 CJ 등 관계사도 세중이 맡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천 회장은 삼성 이병철 선대회장의 3남인 이건희 전 회장과도 오랜 친구 사이로 알려졌다. 1943년생인 천 회장보다 한 살 많은 이건희 전 회장은 서울사대부고(13회 졸업) 시절 짧긴 하지만 레슬링 선수 생활도 했다. 이 전 회장은 2학년 말 선수 생활을 그만둘 때까지 방학 기간 합숙 훈련에 한 차례도 빠지지 않을 만큼 열심이었다. 천 회장도 1996년 이건희 전 레슬링협회장이 IOC위원이 되면서 레슬링협회장을 이어받을 정도로 레슬링에 애착을 가진 인물이다. 체육계에서는 “이건희 회장은 레슬링계의 정신적 지주고 천신일 회장은 행동대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천 회장은 문화재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다. 국내 유일의 세중돌박물관도 그런 애착이 있어 세웠다. 1970년대 말 백자와 목기 등의 문화재에 관심이 많던 천 회장은 우연히 인사동에 갔다가 한 골동상 주인과 일본인이 옛 석조물을 놓고 흥정하는 광경을 보고 우리 문화재가 일본을 빠져나간다는 생각에 그곳에 있던 석조물 27점을 모두 사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천 회장은 2000년 일본으로 밀반출됐던 국보급 석조문화재 70점을 자비로 환수해 왔고 2000년 7월에는 20여 년간 모아온 우리의 전통 석물 6000여 점으로 경기 용인에 18150㎡(5500평) 규모의 세중옛돌박물관을 개관했다.

삼성·포스코와 끈끈한 인연
천 회장은 풍수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회장은 삼성그룹 이병철 선대회장의 묘가 명당터긴 하지만 너무 가벼워 바람 잘 날이 없다며 자신의 돌박물관에서 좋은 돌을 가져다 이병철 회장 묘소 주면에 눌러놓았다는 후문도 있다. 그래서 삼성은 ‘바람은 불지만 안 날라간다’는 설이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렸다.

천 회장의 끈끈한 인연에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세중나모여행은 현재 포스코의 여행 물량과 물류 부분 상당수도 맡아 하고 있다. 천 회장과 박 회장의 인연은 천 회장이 30대 초반 1974년에 박태준 회장의 직간접적인 후원을 받으며 제철화학(동양제철화학 전신)을 설립하면서다. 박 회장과 인연의 끈을 맺어준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조카인 박재홍(민정당 국회의원 역임)씨다.

천 회장의 장인이 부도난 동양철관을 인수하면서 이 회사의 사장으로 천 회장의 고려대 동창인 박씨를 영입했는데, 그가 이후 천 회장을 박 전 회장에게 소개해줘 인연을 이어갔다.

천 회장은 이후 제철화학 공장 설계 및 설비를 국산화한 공로로 박정희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이는 재계에서 그의 입지를 굳히는 발판이 됐다.

천 회장은 제철화학을 4년간 운영하다 결국은 자금상의 한계로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에게 매각했지만 그래도 한때 포항제철과 생산량 증설 경쟁을 벌일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기도 한 회사로 평가받는다. 이후 천 회장은 1980년대 초까지 여러 회사를 인수 또는 설립한 후 매각했고 이후 여행업에 투신, 국내 최대 규모의 여행사 세중(현 세중나모)을 일궜고, 1980년대 중반에는 당시 설립 준비 중이던 포항공대에 학교 부지 일부(20만7900㎡)를 내놨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수백 억 원대에 달하는 규모였다. 천 회장은 이후에도 모교인 고려대는 물론 연세대 등과 함께 꾸준히 포항공대에 발전기금을 내놓고 있다.

천 회장은 최근 ‘노무현의 남자’로 수사중인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도 돈돈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박 회장이 인수한 휴켐스에 사외이사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 부산과 경남 밀양이 고향인 천 회장과 박 회장은 나이차는 2살 정도(박 회장은 1945년생) 나지만 동향 선후배로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박연차 회장은 천 회장이 레슬링협회장을 맡은 직후인 1997년부터 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인연으로 박 회장은 2006년 휴캠스를 인수하면서 천 회장에게 사외이사직을 제의했고 천 회장이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는 후문이다.

“공식 직함 갖지 않겠다” 공언
천 회장의 화려한 정재계 인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03년 세중게임월드 개장식 행사에는 당시 내로라하는 인물이 다 모였다. 당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대행, 어윤대 고려대학교 총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박정훈 IAEA 이사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등을 비롯해 100여 명의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재계 인사가 총출동한 것. 그리 크지 않은 한 기업의 매장 개장식에 이처럼 많은 정재계 실력자가 모이게 한 이 자리는 천 회장의 인맥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케 했다.

천 회장의 세중나모여행은 이제 세중정보기술·세중컨설팅·세중S&C·세중게임즈·세중디엠에스 등 전체 관계사 매출이 1000억 원대를 넘는 알토란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지속적 상승곡선의 사업 확장은 천 회장의 인맥이 상당부분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시선이다.

천 회장의 인맥이 너무 화려하다 보니 재계의 시샘도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세중은 5월 16일 석영자원 개발업체인 이너블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7만200주(지분율 40.1%)를 매입하며 계열사로 편입했다. 여기에 들인 돈은 12억 원가량. 그로부터 며칠 후 이너블루는 중국 칭하이(靑海)성 인민정부로부터 하이동(海東)지구 규석 광산을 50년간 채굴할 수 있는 권리를 따냈고 6월에 구체적인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막대한 이권이 걸린 광산 계약을 따낸 것. 계약 내용에 따르면, 이너블루는 50년 동안 평균 순도 98% 이상의 규석을 연간 6000t 채굴할 수 있다. 미화로 계산하면 대략 1년에 4억8000만 달러(10월 30일 기준환율로 환산하면 5760여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단돈 12억 원으로 이룬 성과치고는 엄청난 성과다.

천 회장은 이너블루 지분을 매입한 이후 중국과 계약이 이루어질 때쯤인 5월 27~30일 이 대통령의 방중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중국을 방문했다. 또한 태양광 관련 사업이 착착 진행되던 8월 말에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2030년까지 총 111조 원(정부 예산 35조 원) 투자 등을 골자로 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해 천 회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줬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운이 좋은 사업 진출인 셈이다.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정책 논란이 거세던 연초에는 ‘세중에듀테인먼트’를 설립해 교육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천 회장은 현 정부에서 어떠한 공식적인 직함을 갖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번듯한 직함이 없어도 천 회장의 실력은 빛을 바라지 않는다. 진짜 실력자는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무대 전면에 나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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