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불문율은 예의와 상호존중이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승자는 패자를 무시하지 않고, 패자는 승리에 딴죽을 걸지 않는다. 크게 리드하고 있는 팀이 도루를 자제하는 것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패자를 놀리지 않는 일종의 신사도다.

4월 12일, 사직구장에서 롯데와 한화의 경기가 열렸다. 롯데가 15-1로 앞선 5회말, 한화 투수 이동걸의 3구가 황재균의 옆구리에 맞으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두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들었다. 큰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논란은 경기가 끝난 뒤 더 커졌다. 롯데 이종운 감독이 “누구든 우리 선수를 가해하면 가만 있지 않겠다”고 했고 “한화와는 10경기도 더 남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전포고’였다.

4월 1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대 한화 경기 중 5회말 한화 투수 이동걸의 투구가 롯데 황재균를 맞추면서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4월 12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대 한화 경기 중 5회말 한화 투수 이동걸의 투구가 롯데 황재균를 맞추면서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몰려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불문율을 어기면 위협구로 보복
인터넷을 타고 성난 민심이 몰아쳤다. ‘빈볼 사태’를 두고 이를 준엄하게 꾸짖는 언론들의 목소리도 컸다.

빈볼 사태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한국 야구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수준이 낮기 때문에 메이저리그가 전통으로 만들어 온 불문율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점수 차이가 몇 점이 나건 한 점이라도 더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다. 돈을 내고 온 팬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빈볼은 폭력이기 때문에 나쁘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프로야구가 폭력이 웬말이냐. 야구장 내 폭력은 뿌리 뽑아야 한다.’

야구에는 ‘불문율’이라는 게 있다. 오래된 고대 마법처럼 비밀스럽게 전수돼 오는 문서 같은 게 아니다. 영어로 코드(code)라고 말하는 불문율은 야구 규칙에 나와 있지 않지만 선수들이 서로를 위해 지키는 일종의 문화다. 이 코드를 어길 경우, 보복을 한다. 상대를 일부러 맞히는 위협구가 대표적이다.

불문율은 ‘서로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식의 타협이 아니다. 공정한 경쟁에 대한 ‘예의’와 ‘상호존중’에 대한 규정이다. 스포츠가 아니라 죽고 죽이는 전쟁에도 규칙이 있고 예의가 있게 마련이다. 투항하는 포로를 해치지 않는 것,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다치게 하지 않는 것은 전쟁 중 예의 문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죽을 때까지 전쟁이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승리를 위해 뭐든지 해도 좋다’는 게 ‘최선’이라면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 된다.

야구에서 불문율이 생긴 것은 그만큼 야구가 위험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작고 딱딱한 공을 150㎞가 넘도록 있는 힘껏 던지는 종목이다. 공격 측과 수비 측이 교차되는 지점은 좌우폭 1m 이내의 베이스 라인이다. 미국 프로풋볼처럼 넓은 공간을 서로 점유하는 싸움이 아니라 작은 폭의 길과 그 위에 베이스를 서로 점유하겠다고 다투는 종목이다. 베이스 위의 충돌 가능성이 높다.

무척 위험한 종목이다. 야구공은 타석에 있는 타자에게 던질 때보다 공을 쳐다보지 않고 달리는 주자를 향할 때 훨씬 위험하다. 베이스 위에서의 충돌은 선수 생명과 직결된다. 슬라이딩 때 다리를 들면 수비수들은 야구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 야구 규칙으로 일일이 규정할 수 없는 각종 위험한 상황들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호 존중의 불문율이다. 상대가 위험한 플레이를 하면, 위험한 방식으로 응징한다. 따라서 처음부터 위험한 플레이를 하지 말 것.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존중받지 못해
야구의 불문율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다. 존중(respect)의 문제다. 승자와 패자의 품격이다. 승자는 패자를 무시하지 않고, 패자는 승리에 딴죽을 걸지 않는다. 크게 리드하고 있는 팀이 도루를 자제하는 것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패자를 놀리지 않는 일종의 신사도다. 적은 점수 차이라 하더라도 노히트를 당하고 있는 팀이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이유로 기습번트를 노리지 않는 것은 후자다. 승자의 승리에, 기록에 딴죽을 걸지 않는 것이 패자의 품격이다.

로스 번스타인의 책 <불문율(the code)>에서 토드 켈리 전 미네소타 감독은 “불문율이란 열심히 플레이하되 상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것에 대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존중’을 강조하는 것은 야구라는 종목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 때문이다. ‘매일 열린다’는 점. 내일 또다시 야구를 해야 한다는 점. KBO리그 기준으로 두 팀은 모두 16번의 맞대결을 펼친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으면, 다음 경기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경기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따져보자. 한국프로야구는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나 통하는 불문율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일까. 동아일보 황규인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의 5회 이후 5점차 역전 허용 가능성을 분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5회까지 5점 이상 앞서 있는 팀의 승률은 97.9%, KBO리그에서의 승률은 98.4%로 오히려 KBO리그의 역전 허용 가능성이 적었다. 지난 시즌(2014시즌)만 따져도 MLB는 97.5%, KBO리그는 97.4%로 큰 차이가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불펜 투수들이 좋아서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야구라는 종목은 선수 개인 능력의 수준 차이는 있겠지만 그 개인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통계적인 결과물은 크게 다르지 않다. 메이저리그는 역전을 허용하지 않아서 큰 점수차로 앞섰을 때 도루를 안 해도 되지만, KBO리그는 몇 점이든 뒤집힐 수 있으므로 도루를 해야 한다는 전제는 틀렸다.

물론 불문율상 도루 허용의 구체적인 이닝과 점수 차이를 규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도루가 팬들을 위한 ‘최선의 플레이’인가 하는 점은 다시 따져야 할 문제다. 도루는 위험하다. 2루 베이스 위에서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플레이다. 이미 승부가 기울었다고 판단할 만한 상황에서 도루 시도는 단지 주자가 ‘아웃카운트 1개’라는 리스크만 안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송구를 받아야 하는 내야수의 부상 가능성을 갖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승부가 기운 농구에서 경기 시간 막판 ‘가비지 타임’이라고 불리는 때에 굳이 ‘페이스업 덩크’를 하지 않는 것과 큰 틀에서 맥락이 비슷하다. 상대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것.

빈볼에 대해 ‘동업자 정신이 사라진 행위’라고들 평가한다. 거꾸로다. 동업자 정신을 해쳤기 때문에, 경고를 위해 빈볼이 날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문율이랍시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플레이를 펼치는 것은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불문율에 대한 오해다. 불문율은 승부가 났을 때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소수점 셋쨋자리 숫자 하나에 목숨을 걸 수 있는 게 야구선수들이다. 점수 차이가 아무리 났더라도 마운드의 투수가 대충 던질 리 없고, 타석의 타자가 아무렇게나 방망이를 휘두를 리 없다. 다만, 승부가 기울었을 때 누군가 다칠 가능성이 높은 도루를 가능하면 하지 말자는 것뿐이다. 넉넉히 이기고 있는 팀이(그것도 원정팀이) 달아나는 홈런을 때리고 난 뒤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것도 불문율이다. 상대팀에 대한 예의일 뿐만 아니라 상대팀 팬들을 향한 예의다.

빈볼은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한 경고
폭력에 대한 신경질적인 거부감은 우리 사회가 가진 콤플렉스처럼 여겨진다. 빈볼은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한 경고다. 벤치 클리어링은 상대를 때리려고 나오는 게 아니다.(가끔 실제 몸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서로 자기 팀을 보호하기 위한 시위다. 프로스포츠에서 벤치의 선수들이 몸싸움 때 합류하는 것을 인정하는 유일한 종목이 야구인데, 이는 타자 혼자서 수비 9명과 몸싸움을 벌일 수 없으므로 ‘사람 수’를 맞춰야 정당한 몸싸움이 된다는 배려 때문이다.

벤치 클리어링은 야구에서 다반사다. 그런데 그 이유와 범위를 두고 논란이 격했다. 범위에 대한 고민들은 이해를 하지만 ‘승리’를 하겠다는데 ‘불문율’이 뭔 대수냐는 데 이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프로’가 무슨 ‘불문율’이냐는 주장에도 섬뜩함이 느껴진다.

세상이 야구를 그렇게 만들었다. 프로는 언제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승자는 언제나 패자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다고. 패자들은 1년 전 4월 그랬듯 ‘가만히 있으라’고. 권력의 승자들이 세상의 서민들에게 보여주는 무참한 무시와 복종의 강요가 야구에서도 그래야 한다는 것으로 보여, 봄날 꽃들이 무참하다. ‘꼽다고? 그럼 이기든지’는 야구가 아니다.

PS. 지난 4월 20일 캔자스시티 불펜 투수 켈빈 에레라는 오클랜드 내야수 브렛 로우리의 어깨를 향해 100마일짜리 빈볼을 던졌다. 이틀 전 로우리가 2루에서 거친 슬라이딩을 한 보복이었다. 이미 전날 요다노 벤추라가 한 차례 맞힌 바 있지만 계속해서 보복이 이뤄졌다. 에레라는 퇴장당하면서도 로우리를 향해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네 머리를 맞혀 버리려고 했다”면서 거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에레라는 5경기 출전정지, 벤추라는 벌금 징계를 받았다. 네드 요스트 감독과 캔자스시티 구단이 선수 관리 소홀의 이유로 징계를 받지는 않았다. 물론, 동업자 정신, 팬에 대한 예의, 폭력 불가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도 없었다.

<이용균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