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미국 영리대학은 ‘맥도널드 대학’

전역에 산재한 캠퍼스서 동일한 ‘교육제품’ 판매 고수익 올려

피닉스 대학 캠퍼스.

도서관이 없는 대학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대학은 학자와 학생들의 학문공동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1976년에 설립된 미국 피닉스 대학은 미국 최대 규모의 사립대학이다. 학부생만 32만5000여 명으로, 명문 시카고 대학의 22배가 넘는다. 캠퍼스 숫자도 엄청나다. 200여 개의 학교 캠퍼스가 미국 39개주에 산재한다. 미국이 50개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춘 셈이다.

이 대학에는 서가와 열람실을 갖춘 도서관이 없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접속 시스템만이 있을 뿐이다. 도서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내 서점에서도 대학교재만 취급한다. 일부 교직원들은 학교를 캠퍼스라 하지 않고 아예 ‘아울렛’이라고 부른다. 설립자 존 스펄링은 1997년 <뉴요커>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대학의 목적은 사회를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드는 개혁과 관련이 없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이윤 창출을 목표로 하는, 이른바 영리목적 대학(for-profit university)이다. 피닉스 대학은 100여 개의 미국 영리목적 대학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구사하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기숙사·도서관·체육시설도 없어
영리목적 대학은 ‘대학’이 아니라 ‘기업’이다. 피닉스 대학 같은 영리 학교법인 3개를 포함해 교육 관련 7개 법인을 소유하고 있는 모기업인 아폴로 그룹은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린다. 아폴로 그룹의 수익은 주식 시장에 상장한 후 10년 사이에 50배 뛰었다. 1994년 상장 당시 490만달러이던 수익은 2004년 2억4700만달러로 급증했다. 아폴로 그룹의 주식은 2000~2003년에만 368% 상승했다. 투자자들은 환호했고, 아폴로 그룹 설립자 스펄링은 억만장자가 됐다.

기록적인 수익률 상승의 비결은 여느 기업과 다르지 않다. 비용은 최소화하고 매출은 최대화한다. 피닉스 대학은 기존 대학 시장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고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신 중등교육 과정을 마친 상태에서 학위를 필요로 하는 직장인들을 겨냥했다. 피닉스 대학 캠퍼스에는 기숙사, 학생회, 체육시설이 없다. 강의실은 기존 건물을 임차해 쓴다. 교수진을 꾸리는 데도 ‘쓸데없는 비용’을 낭비하지 않는다. 교수진의 95%는 시간강사이다. 미국 대학 평균인 47%의 두 배다. 강사들은 본업을 따로 갖고 있고, 주말과 야간에만 교수로 변신한다. 대학은 강사들에게 5주 또는 6주짜리 강의에 1000~1500달러를 지급한다.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수여한다는 점에서는 여느 대학과 다르지 않지만 강의는 경영학, 정보통신, 교육학 등 ‘실용 학문’ 중심으로 짜여 있다. 피닉스 대학에서 생리학이나 정치학을 전공할 수는 없다.

수강 과목을 짜는 것도 가르치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이번 학기에 어떤 강의를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는 ‘회사’가 결정한다. 강사들은 아폴로 그룹에 소속된 교수들이 짠 강의 일정을 온라인으로 전달받아 그대로 가르칠 뿐이다. 뉴욕 맥도널드 매장과 서울 맥도날드 매장의 메뉴가 다르지 않듯이 애틀랜타 캠퍼스의 강의와 시카고 캠퍼스의 강의는 동일하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200여 개 피닉스 대학 캠퍼스는 동일한 완제품을 판매하는 프랜차이즈 지점이나 마찬가지다. 피닉스 대학에 ‘맥도널드 대학(McUniversity)’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맥도널드 매장이 고객을 가려 받지 않듯이 피닉스 대학 또한 입학생 자격에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더 많은 학생을 받을수록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1세 이상의 고등학교 졸업장 소지자라면 큰 어려움 없이 입학할 수 있다. 대학 홍보에도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2002년 피닉스 대학은 학생 모집을 위한 홍보비로 3270만달러를 썼다. 등록금 이외에 강의자료 판매도 주요한 수입원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서점에서 필요한 교재를 사는 대신 대학이 자체적으로 미리 만들어 놓은 온라인 자료를 구매하도록 권유한다. 가격은 코스 하나에 평균 60달러 수준이다. 이 대학 학생들은 쉽게 입학하고 쉽게 포기한다. 피닉스 대학의 졸업률은 16%로, 비영리 대학 졸업률(약 50%)과 크게 차이가 난다.

이 같은 대학의 영리 추구는 영리목적 대학이라는 일부 극단적인 사례에서만 나타나는 것일까. 선택과 집중을 통한 이윤 추구라는 기업 논리가 침투하는 건 영리목적 대학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전통적인 명성을 지닌 비영리 법인 대학들도 시장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 대학들이 대기업 기부로 지은 신축 건물에 해당 기업의 이름을 붙이는 관행은 미국에서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미국에는 기업이 기부한 건물만 있는 게 아니라 ‘기업 교수직’도 있다. 미국 각 대학에 있는 기업 교수직을 몇 개만 나열하면 이렇다. 코카콜라 교수(애리조나 대학 및 조지아 대학 마케팅학과), 타코벨 교수(워싱턴 주립대학 호텔경영학과), 케이마트 교수(웨인주립대학 마케팅학과), 셰브론 교수(MIT 화공과), 버거킹 교수(마이애미 대학) 등. 모두 해당 기업의 후원을 받는 교수직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기업 교수직은 매사추세츠공대(MIT)에 69개, 스탠퍼드 대학에 22개가 각각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교수직에 제 기업 명칭을 붙이는 데 만족하지 않고 교수를 직접 임명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일리노이 대학 교수 캐리 넬슨이 1999년에 펴낸 <고등교육을 위한 악마의 사전>이란 책에 따르면 화물운송 및 택배회사인 UPS는 워싱턴 대학의 UPS 교수직을 자사 노무 관리 방식에 호의적인 논문을 쓴 교수에게 주기 위해 대학과 협상을 벌였다.

비영리 전통명문도 자본논리에 종속
대학에 대한 기업 후원이 증가하면서 대학 연구자들이 기업 논리에 종속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펜실베이니아 대학, 미시간 대학, 오하이오 주립대, 플로리다 주립대의 일부 경영학 교수들은 논문과 언론기고를 통해 담배광고와 흡연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담배 제조업체로부터 연구비를 후원받고 있었다.

이공계 대학의 경우 대학 연구실이 대기업의 상품 테스트 부서로 전락하는 현상도 일어났다. 신시내티 대학 정신의학부 연구실이 주로 하는 일은 제약회사 제품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예일 대학 정신의학부도 1997년에 한 대기업과 제휴해 임상실험실을 열었다. 미국 몇몇 대학의 농학부는 화학회사가 만든 제초제를 테스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손준종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2004년 ‘미국 고등교육의 기업화 과정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연구의 상업화가 과도하게 상업적 가치를 중시함으로써 연구비를 제공하는 기업의 이익에 따라 연구 결과가 왜곡되고 공개가 지연되는 부정적인 현상”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대학의 기업화 현상이 경고하는 한국 대학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최근 반년간지 <안과밖>에 대학의 기업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글을 기고한 김누리 중앙대 독문과 교수는 “한국 대학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업화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 대학이 선진 대학의 모델로 삼고 있는 것은 미국 대학인데, 미국 대학은 이미 장사판이 됐다”고 우려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