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미국 소방관 직업만족도 최상위권

행복지수도 성직자 이어 2위로 나타나…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 사회적 인식 높아

2005년 1월 서울 지하철 온수역에서 전동차에 발생한 화재를 소방관들이 진압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토니 버크날은 출근하자마자 허탕을 쳤다. 화재신고가 접수되어 급하게 출동했지만 알고 보니 사소한 전기기구 오작동으로 자동 화재경보가 잘못 울린 것으로 드러났다. 소방서에 돌아온 것도 잠시, 또다시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해보니 이번에도 자동 화재경보 작동 오류였다. 그러나 언제 어떤 화재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올해 서른여덟 살인 토니는 8명의 부하 소방관을 지휘하고 있다. 잘못된 화재경보 이외에 그를 괴롭히는 건 또 있다. 요즘 영국 청소년 사이에는 보도 블록을 빼내거나 길가의 돌멩이를 집어서 소방관들에게 던지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며칠 전 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출동했을 때도 돌을 던지는 아이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5m 높이의 사다리에서 떨어져 발뒤꿈치가 망가지는 건 예사로운 부상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많지만 그는 여전히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짜릿한 흥분을 느낀다. 몇 년 전 화재 현장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설득해서 구출했을 때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러나 소방관 생활을 한 지 15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첫 출동에서 목격한 불에 탄 시체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야간근무나 주말근무는 밥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아내와 네 아이를 집에 두고 오전 8시에 출근했다.

급여도 한국보다 훨씬 많이 받아
지난 3월 15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실린 어느 영국 소방관에 관한 기사 중 일부다. 영국 울버햄프턴 소방서에 근무하는 토니 버크날이라는 인물을 통해 들여다본 영국 소방관의 일상은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때때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국 소방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닮은 점은 거기까지다. 평균적인 영국 소방관과 한국 소방관의 근무 조건이나 처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밤낮이 따로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토니의 공식적인 근무시간은 하루 평균 8시간이다. 주간 근무일 경우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야근조일 경우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일한다.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48시간이다.

한국의 경우, 소방공무원의 대부분이 2개조,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근무하고 퇴근한 다음 하루를 쉬고, 다음 날 출근해서 또 다시 24시간을 근무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일주일 근무시간이 84시간, 월 360시간에 달한다. 경찰의 경우 2004년부터 3교대 근무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소방공무원의 경우 일부 대도시의 구급대에서만 3교대 근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 소방관들은 주당 평균 48시간, 일본은 42시간, 프랑스는 52시간, 독일은 54시간을 근무한다.

급여 수준의 차이도 크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경우 훈련을 마치고 정식 소방관이 되면 연간 2만7500파운드를 받는다. 현재 환율로 계산하면 약 5700만 원이다. 팀장급인 토니는 연간 3만3000파운드, 우리 돈으로 6900만 원을 받는다. 미국 노동부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미국 소방관의 평균 임금은 2006년 5월 기준으로 연간 4만1190달러다. 환율을 달러당 1000원으로 계산해도 4000만 원이 넘는 액수다. 연방정부에 소속된 소방관들의 평균 임금은 4만1070달러, 주정부 소속 소방관들은 3만7000달러를 받는다.

반면 한국의 경우 소방공무원들의 연간 평균 임금은 2000만 원, 위험수당은 3만~5만 원 수준이다. 지난 8월 20일 은평구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세 소방관이 7월에 받은 화재진압 수당은 13만 원에 불과했다. 기본 위험 수당 5만 원과 진압 현장에 나가는 대원들이 받는 화재진압 수당 8만 원을 합친 액수다. 1인당 출동건수로 환산하면 화재 1건당 3600원을 받은 셈이다. 홍제동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2001년에는 위험수당이 2만 원에 불과했다. 인구 대비 소방관 수에서도 한국은 소방관 1인당 1900명으로, 프랑스 240명, 영국 820명, 일본 818명에 비해 과도한 업무 부담을 안고 있다.

한국 소방관 퇴직 후 평균수명 58.8세
과도한 업무 부담은 부상과 사망으로 이어진다. 한국에서는 2003년 7명, 2004년 8명, 2005년 6명, 2007년 7명의 소방관이 사망했다. 2008년에는 8월 기준으로 6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매년 300여 명 가까이 나오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2003년에는 367명이 공무 수행 중 부상했고, 2004년 35명, 2005년 297명, 2006년 304명, 2007년에는 286명이 다쳤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퇴직 후 평균 사망 연령이 58.8세로 경찰직(62.3), 공안직(61.6)에 비해서도 3~4년가량 더 짧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는 크게 떨어진다. 9월 16일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이 소방방재청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소방공무원 이직 및 퇴직 현황’에 따르면 총 1830명 중 372명(20.3%)이 임용 후 5년 안에 사표를 냈다. 같은 기간 서울시 교육공무원의 임용 5년 이내 퇴직률은 2.72%였다. 올해 3월 <세계일보>가 소방관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소방관은 10명 중 3명에 불과했고 10명 중 9명이 다른 일자리를 찾아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사정은 한국과 정반대다. 2006년 시카고 대학이 수행한 사회총조사(General Social Survey)에 따르면 미국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80%)는 성직자(87%)에 이어 2위였다. 물리치료사, 작가, 교사가 그 뒤를 이었다. 사회총조사를 책임진 시카고 대학의 톰 스미스 박사는 “가장 만족도가 높은 직업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거나 가르치거나 보호하는 직업, 또는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미국 소방관들은 삶에서 느끼는 행복지수에서도 성직자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삶 전체의 행복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미국 소방관들의 직업 만족도가 이처럼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생기는 자긍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방관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높아서기도 하다. 2005년 5월 23일자 <유에스에이 투데이>가 미국 내 직업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보도한 내용을 보면, 소방관(48%)은 과학자(52%)와 의사(52%) 다음으로 미국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과학자나 의사 다음으로 ‘잘 나가는 직업’에 속한다는 뜻이다. 큰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 소방관들의 용기와 희생정신에 대한 칭송으로 요란하다가도 정작 소방관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 사회와는 달라도 크게 다른 모습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